일본어에서 영어로 옮겨간 ‘언어 식민주의’… 한국어 ‘하류 언어’ 취급

2015.02.27 21:13 입력 2015.03.01 12:45 수정
김여란 기자

(7) 언어 - 언어에 남은 식민권력

▲ 일제 때 ‘국어=일본어’ 제국주의 인식 그대로
한국어 ‘국어’로 불러
초·중·고 교과서도 1970년에야 한글로 바뀌어

▲ 신문·공문서 한글 사용은 1980년대 후반에야 확산
가장 과학적 언어라면서 일상에서는 열등 언어 취급
“우리말로 새로운 말 만들기 포기하지 말아야”

우리는 한글을 ‘국어’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정식 교과목 이름도 ‘국어’다. 그러나 자신이 쓰는 언어를 ‘국어’라고 부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등 몇 곳뿐이다. 언어와 국가를 등치시키는 ‘국어’라는 표현에서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식된 제국주의적 인식이 숨어 있다.

‘국어’라는 말은 1911년 발표된 일제의 제1차 조선교육령에서 처음 등장한다. 물론 여기서 국어는 일본어를 뜻한다. 이때부터 조선어는 ‘한국어’로 격하된다. 교과목도 ‘조선어 및 한문 독본’으로 한문과 통합됐다. 식민 치하 내내 ‘국어’는 일본어였다. 1945년 해방 이후 ‘국어’는 일본어 대신 한글을 가리키게 됐지만 그 명칭은 그대로 이어져 왔다.

일본이 언어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서양식 근대화 개념이 일제를 거쳐 우리에게 무비판적으로 이식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40년 일제강점기 영암서공립심상소학교 교실 수업 장면. 1938년 일제 3차 조선교육령이 시행되면서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는 게 사실상 금지됐다. | 독자 제공

1940년 일제강점기 영암서공립심상소학교 교실 수업 장면. 1938년 일제 3차 조선교육령이 시행되면서 학교에서 우리말을 쓰는 게 사실상 금지됐다. | 독자 제공

토익·토플 하면 떠오르는 서울 종로 2가 영어학원 골목길을 지나는 젊은이들. 일제시대 일본어가 출세의 관문이었다면 해방 70년이 지난 현재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영어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필수 과목이 됐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토익·토플 하면 떠오르는 서울 종로 2가 영어학원 골목길을 지나는 젊은이들. 일제시대 일본어가 출세의 관문이었다면 해방 70년이 지난 현재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영어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필수 과목이 됐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고려대 일어일문과 이한섭 명예교수(65)는 지난해 <일본에서 온 우리말 사전>을 통해 1880년대 개화기 이후 일본에서 우리말에 들어 온 어휘 3624개를 찾아 정리했다. 이 교수는 “학술 용어, 정부와 사법부, 검찰에 관계되는 법률 용어 중 대다수는 일본어 어휘”라며 “일본어에서 유래한 한자어는 사실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했다. ‘대통령’, ‘민주주의’, ‘과학’, ‘철학’, ‘시민’ 등 익숙한 서양 근대식 용어 대부분이 일본어로부터 차용한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정부 차원의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근대식 용어를 스스로 만들어낸 반면 우리는 일본이 만든 용어나 개념을 번역해 쓰는 데 급급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일본에서 온 말 중 일부가 한국인의 정신세계나 사고방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라 본다”며 “일본 제국주의 시절 황국신민화 교육이나 일본식 법률이 일상에 뿌리내린 것은 결국 언어를 통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쟁, 군사 관련 용어는 우리 일상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에서 정신대로 끌려 갔던 피해자를 ‘위안부’로 부르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남성에게 성적으로 위안을 준다’는 의미는 일본 입장에서 만든 언어인데 무비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일제 통치 시대의 모습이 언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됐고, 이후 우리가 곧바로 전쟁을 겪은 만큼 이 같은 용어를 쭉 이어 쓰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위 ‘삐라’도 영어의 ‘bill’을 일본 사람들이 부르는 말이다. 일상언어에서도 오랫동안 쓰이던 말이지만 일본어에서 왔다고 해서 ‘전단(傳單)’으로 고쳤다. 그러나 전단 또한 1920년대 중국 군벌 시대 때 만들어진 전쟁 용어로 적군의 사기를 꺾기 위해 심리전에 쓰인 선전물을 부르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종이 쪽지’로 순화하자고 하지만 언론에서 쓰지 않으면서 일상어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미 익숙하게 쓰고 있는 언어를 식민통치시절 들어 왔다는 이유로 쓰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습관화된 우리의 ‘언어 식민주의’를 되돌아볼 필요는 있다는 점에 대체로 동의한다.

해방 후 곧바로 국어 정책이 제대로 수립되지 못한 건 당시 정치적 환경과 연관된다. 8월15일 일제가 항복 선언을 했지만 미군정 당국은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에게 자리를 이탈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때부터 친일 인사들이 1948년 한국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미군정이 만든 조선교육심의회에서 한글 정책을 맡게 됐다. 미군정 초기 행정 권한이 일본인에서 친일파 조선인들로 이양된 셈이니 제대로 된 한글 정책이 만들어질 리 만무했다. 해방 후 제대로 된 한글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데도 오랜 시일이 걸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 일제 치하에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기도 했던 외솔 최현배가 한글 정책을 맡게 됐지만 한계가 있었다. 정책의 핵심은 예를 들어 동사를 ‘움직씨’, 형용사를 ‘그림씨’라는 식으로 한자어를 한글로 바꾸는 식이었다. 언어에서 일제의 정신적 잔재를 없애는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른 작업이었다. 학계에서도 일본어나 한자어로 된 말을 쓰지 않는 데 동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글·한자 병행 교과서’, ‘한글전용 교과서’가 학교마다 다르게 보급됐다.

이 교수는 해방 후 언어 속 식민권력이 철저하게 청산되지 못한 것은 당시 조선인들의 의식수준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크게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일제치하 모든 사람들이 독립을 바라고 새로운 세계를 갈구하던 차에 해방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해방 전후 모습을 다룬 문헌들에는 1945년 광복일 당시 일왕이 항복방송을 할 때 조선총독부 사무실 앞에서 조선인들이 슬퍼하며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다는 장면이 나온다. 일제시대 권력과 직결되는 다리였던 일본어는 해방 후에도 여전히 출세를 지향하는 이들이나 식자층에게 유용한 언어일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한글·한자 혼용과 한글 전용 사이에는 격렬한 논쟁이 여러 차례 일었다. 1970년 초·중·고 교과서가 한글 전용으로 바뀌고 1980년대 후반부터 신문과 공문서에서도 한글이 주를 이루게 됐다. 그러나 정부나 학계에서도 일본어에서 유래한 한자어, 일본말로 받아들인 서양의 개념을 우리 식대로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우리가 일본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새로운 개념을 우리 식으로 받아들이는 데 무능해졌다는 것이다.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51)는 “새로 들어온 개념을 우리말로 만들면 어색하게 여긴다”며 “한자나 영어 아니면 제대로 된 개념어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편견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제시대 언어를 그대로 썼듯이 외래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고 우리말로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현저하게 퇴화해온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이어져온 말은 어쩔 수 없더라도, 쏟아져 들어오는 새로운 말도 한자식이나 영어로 조어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휩싸인 게 현재 우리 ‘어문생활’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한글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이는 이중적 태도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드물게 과학적인 언어라는 자긍심을 갖고 살지만 동시에 중요한 개념을 표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일상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윤대석 명지대 국문과 교수는 논문 <1940년을 전후한 조선의 언어 상황과 문학자>에서 “일제식민 시절 공용어였던 일본어의 특권은 ‘일본어=근대·문명, 조선어=전근대·야만이라는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시켰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식민지 시절 일본어가 누리던 이 같은 특권은 해방 후에도 지금까지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고급언어’로서 일본어가 차지했던 자리가 ‘영어’나 ‘일본에서 온 한자어’로 채워진 채 여전히 한글은 ‘열등 언어’로 인식되고 있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한수영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식민화된 주체가 겪어야 할 혼란과 내상들>에 관한 연구를 통해 지식인들의 ‘트라우마’를 색다른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독백’을 통해 드러내 보였다.

“나는 일본의 식민주의에 의해 식민화된 주체이면서, 해방 이후에는 그러한 주체임을 부정해야 하는 ‘민족주의의 당위’ 앞에 억압당하고 (연이어) 영어로 구축된 새로운 식민주의의 광풍 앞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있다.”

“일본어의 세계에서 영어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손쉬운 이행이다. 그 ‘이행’의 과정에 작동하는 기제는 망각과 반복되는 식민주의적 모방의 욕망이다.” (한수영 <전후소설에서의 식민화된 주체와 언어적 타자> 중)

해방 이후 식민화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공론의 장으로 나오기보다 없던 일처럼 위장되면서 언어에 남아 있는 일제 식민잔재의 청산은 더욱 힘든 과제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회적으로 고민하고 만들려고 애써 본 적 없는 언어가 우리 학계와 경제·정치·사법의 바탕이 되고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언어 식민주의’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대표는 “우리말로 개념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찾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며 “그것이 우리 생활과 학술의 수준을 높이고 언어 민주주의를 통해 ‘알 권리’를 보장하는 데 훨씬 유용하다”고 밝혔다.

최근의 언어 식민주의는 소위 ‘영어 식민주의’로도 부를 수 있다. 각 사회의 정보 공유와 알 권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 가장 적극적으로 자국어를 보호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 문화공보부 ‘프랑스어와 프랑스어 언어들 총국’ 책임자 베네딕트 마디니에는 2013년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했다.

그는 ‘유럽 각 대학에서도 영어를 써야만 과학자들끼리 소통이 가능하고 국제적 최신 성과도 접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기초 학문은 더 이상 자국어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고발했다. 그는 “별도의 매개 수단 없이 과학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일반 대중들의 지식 접근을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결국 개별 언어는 기능성을 잃고, 오늘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해방 70년이 지난 현재 일본어와 영어 패권주의에 둘러싸인 한국의 위기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광복 70주년 기획 - 우리는 과연 해방됐는가]일본어에서 영어로 옮겨간 ‘언어 식민주의’… 한국어 ‘하류 언어’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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