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

2015.03.16 21:52 입력 2015.03.16 21:57 수정
글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김아람 사진작가

뇌의 활동이 바로 마음… 창의성으로 ‘마음의 진화’ 이뤄야

현실의 숱한 실패와 불합리, 이성의 힘으로 풀 수 있어

인간의 마음은 문학, 예술, 종교, 심리학, 사회학, 뇌과학, 인지과학 등 여러 분야의 탐구 대상이다. 물질의 풍요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공허, 타인과의 갈등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병폐가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발전된 과학이 인간의 마음까지 규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한편에선 종교와 힐링 담론, 치유 산업이 주목을 받기도 한다. 인간의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돼 있는 내 마음의 작동을 이해한다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기획시리즈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은 지난해 연재된 ‘문명, 그 길을 묻다’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연재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 세계적 석학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본, 시장, 화석에너지가 주도하는 현대 문명의 대안을 모색했다면, 이번 연재는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법으로부터 새로운 문명의 길을 찾는다. 지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들이 왜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치·경제적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물음도 들어 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44)가 세계적인 ‘마음’ 전문가들을 차례로 찾아간다.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 ‘마음’ 전문가들과의 대화](1)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

▲ 내 안에 수많은 자아 존재
연인·가족·친구·타인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

▲ 종교나 명상에서 전하는
‘진정한 자아’ 쫓다 보면
자기기만에 빠져 나를 속여

▲ 왕정·독재는 ‘침팬지 유산’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는
계급사회 해로움 막는 시도

▲ 인간 본성 변하지 않더라도
법률 등 개선 장치 개발로
현재의 삶 더 나아질 수 있어

연이은 폭설로 하버드대 건물의 지붕마다 얼어붙은 눈이 햇살을 반사하며 빛을 뿜었다. 맑은 마음이 상대의 어둠까지 거둬들이듯 하늘 가까운 공간은 밝음이 더했다. 지난 2월18일 오후 2시 약속시간 정각에 스티븐 핑커 박사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이름 모를 어떤 이의 뇌를 보여주었다. 액체 속에 담겨 있었다. 양손을 모아쥔 크기의 그 누런 뇌는 해마다 심리학개론을 듣는 모든 학생들과도 인사를 나눈다고 한다. 마음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는 핑커 교수의 정성이다.

안희경(이하 안) = 마음은 어디 있나요?

스티븐 핑커(이하 핑커) = 마음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 답이 있다면, 뇌가 맞을 겁니다. 마음은 뇌의 활동이죠.

안 = 한국의 선가(禪家)에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이가 유명한 노스님께 찾아가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호소하였습니다. 스님은 ‘네 마음을 보여다오. 그럼 내가 고쳐줄게’ 했죠. 이 이야기가 오랫동안 내려온 것은 실체 없는 마음에 끌려다닌다는 공감을 얻기 때문일 텐데요. 선생님의 마음에 대한 정의는 이보다 훨씬 물질적입니다.

핑커 = 뇌의 활동이 마음인 거죠. (유리관의 뇌를 가리키며) 예를 들면 여기 놓인 뇌는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죽었으니까요. 아무 활동이 없기 때문이죠.

안 = 저는 마음은 경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화가 나거나 연민이 생기거나 미움이 일어날 때, 거기엔 그 상대를 비추는 온갖 제 경험이 있었습니다. 경험 속엔 책, 드라마, 문화가 다 포함되고요.

핑커 =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그 이유 역시 당신의 뇌 속에서 활동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경험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할 때도 뇌 속에서는 축적된 경험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활동이 일어나고 있죠. 그것이 마음입니다. 만약 뇌에 물리적으로 변화를 준다면 다른 경험을 하게 돼요. 뇌 어딘가를 다치면 마음도 매우 다르게 움직일 수 있고, 대상을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앞에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개념이 들어오지 않는 거죠.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된 인쇄물을 읽는 것처럼요. 어떤 사람은 뇌 손상으로 연필, 빗, 책, 샌드위치 같은 단어를 쓰기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경험이 달라진 겁니다. 전두엽이 손상된 어떤 이는 샤워실에서 몇 시간씩 있어요. 스스로 생각할 수 없어서 그럽니다. ‘아! 내가 여기 10분 있었구나, 이제 나가야지’ 같은 생각. 뇌의 모든 부분은 그곳이 손상되면 경험을 바꾸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경험도 뇌의 활동에 의존하는 거죠. 감정도 그렇고요. 팩실이나 졸로프 같은 항우울제를 먹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분이 화학성분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안 = 만약 아무런 손상이 없는 건강한 뇌를 갖고 있다면, 행복해질까요?

핑커 = 완전히 그렇지는 않죠. 건강한 뇌를 갖고 있지만 불행감의 기준점에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경우 다른 사람들이 기뻐할 일도 몇 분 만에 바로 비참하게 느낍니다. 행복의 수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의 뇌가 건강하다고 해도 서로 다르게 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미한 차이의 회로들이죠.

안 = 우리 마음은 누가 조절하나요.

핑커 = 스스로 조절합니다. 마음은 뇌의 서로 다른 부분들이 항상 소통하는 시스템이거든요. 어느 한 부분이 전체를 책임지지 않습니다. 우두머리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다른 부분들이 서로를 조절해요. 덥다, 불편하다, 신발이 너무 꽉 낀다, 이런 것을 소통하며 자기를 관리하는 겁니다. 초조해서 땅콩을 계속 집어 먹고 있는데, 문득 뇌의 어느 부분에선가 알아차리죠.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 나 지금 다이어트 중인데.’ 땅콩이 먹음직스럽긴 한데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뒤따라오죠. 그럼 뇌의 다른 부분에서는 이에 대한 책임을 실행합니다. 이렇게 항상 마음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서 대화가 이뤄져요. 모두가 견제하고 겨루면서 조절하는 거죠.

[문명, 인간이 만드는 길 - ‘마음’ 전문가들과의 대화](1)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

안 = 종교지도자나 사상가들은 우리에게 내 안에서 울리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는 진정한 ‘나’가 있다고 하죠. 실제 명상이나 기도 또는 자연을 응시하다 보면 여러 층위의 자기 몰입에 들어가게 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결과를 얻기도 합니다.

핑커 =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제 생각과 같을 거예요. 우리 안에 ‘진정한 자아’가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를 너무나 자주 속이게 됩니다. 몰입하면서 원인이나 근거를 찾고 바로 우리가 진정한 자아라고 여기는 그것을 쫓아가면서 자기 기만에 빠질 수 있어요.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거죠. 우리의 영혼 저 깊은 곳의 ‘진정한 자아(true self)’란 없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한 묶음의 수많은 다른 자아들(a bunch of selves)’이 있죠. 서로 다른 자아들이 서로 다른 모습을 서로 다른 상대에게 드러내고 있어요. 연인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또 낯선 이들에게, 때에 따라 달리 보이죠. 우리가 스스로에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그 자아조차도 일종의 시스템입니다.

안 = 과학자들 역시 자아에 대해 연구합니다. 여러 논문들이 나와 있고요.

핑커 = 자아를 연구하는 일은 매우 매력적이죠. 중요한 연구이지요.

안 = 과학적인 연구와 철학적인 연구는 무엇이 다른가요?

핑커 = 만약 철학에 과학으로 얻은 정보가 있다면 이는 과학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자아를 보다 분류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함께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요. 달라이 라마는 대단한 과학 팬이죠. 과학은 우리 인식의 한계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과대평가하는지 보여줍니다. 50% 넘는 사람들이 운전 실력, 지적 능력 등 자신에 대해 가능한 한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한다고 나와요.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명확하게 대상을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아닌 경우가 다반사죠. 과학은 직관적인 추론이 일어났을 때 되새겨 보라고 조언합니다. 실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과학은 수만가지 진실을 말합니다.

안 = 인류 역사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길은 한 갈래로 상승해왔고, 앞으로도 서로 보완해 가리라고 봅니다. 선생님은 진화심리학자로서 우리 마음은 아주 오래전에 디자인됐다고 하셨는데, 그럼 고고학에 대해 더 많이 안다면 현재 우리의 마음, 또 세상을 훨씬 잘 읽어낼 수 있다는 뜻인가요?

핑커 = 과거에 대해 더 알게 된다면 현재에 대해 보다 현명해질 수 있겠죠. 어린아이들은 읽기에 서툰 반면, 성인들은 독해능력이 높습니다. 이는 읽기가 아주 최근의 인간 역사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예이기도 해요. 인간의 뇌가 아직 읽기에 맞춰지지 않은 거죠. 말하기에는 적응되어 있습니다. 말 배우러 학교에 가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읽으려면 최소 몇 년은 학교에 가야 합니다. 또 다른 예로 입맛을 들 수 있습니다. 왜 몸에 좋지 않다는 그 많은 설탕과 소금, 지방을 섭취할까요? 입맛이 기아에 허덕이던 시절에 맞게 적응돼 있어서 그래요. 우리가 설탕이나 지방을 소비하도록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일은 기근에 대비하는 거죠. 비만을 염려하는 나라들에서는 결코 기근 따위는 오지 않을 텐데도 그런 습성이 남아 있는 것은 우리 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맞춰져 있다는 예가 됩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들이 거미와 뱀을 무서워하죠. 운전하면서 문자 보내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으면서요. 위험으로 치면 운전하면서 문자 보낼 때 간이 졸아드는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대신 거미가 나타나면 등을 움츠립니다. 네, 그 옛날에는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그런 감각이 자리잡지 못한 거죠. 우리는 정부 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법원도 없고 경찰도 없었어요. 그래서 복수하려는 폭력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거죠. 분쟁을 조정하는 방법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불건전할 수 있는 방법인데도 사람들은 아직까지 무시당했다고 여기면 싸우려듭니다. 이것도 또 다른 예죠.

안 = 오늘날 세상은 매일매일이 경쟁입니다. 세계화로 인해 일하는 사람들의 경쟁상대는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값싼 임금노동자들이 된 거죠. 신자유주의는 개인들이 이를 스스로 뚫고 나가도록 ‘각자도생’이라는 해결책을 강요합니다. 규제도 풀고 공공재도 민영화하고요. 진화심리학자로서 이런 경쟁이 인간의 본성에 맞다고 여기나요? 프린스턴 대학의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협력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핑커 = 협력에는 두 가지 다른 면이 있습니다. 내가 뭔가를 팔려고 당신에게 제안하고, 당신이 만족해서 저한테 산다면 우리는 협력하는 거죠.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같은 물건을 좀 더 싸게 팔려고 하면, 나는 그와 경쟁하는 거예요. 경쟁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이죠. 그러니까 실제로 내가 최저 가격으로 주려고 다른 사람과 경쟁한다고 해서 이것이 당신과 협력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닌 거죠. 어떤 사람들은 이타적이거나 자기원칙이 있고 사려깊고, 어떤 사람들은 나태하거나 시스템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합니다. 모두를 위한 하나의 답은 없죠. 이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는 참 복잡한 질문이에요. 생물학자에게 인간의 몸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묻는 것과 같아요. 한 문장으로 된 답을 얻지 못할 겁니다. 몸에는 신장이 있고 피부와 혈액과 뼈들이 있죠. 그럼 몸은 단단한가요, 물렁한가요? 어떤 부분은 단단하고 어떤 부분은 물렁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기적인가요, 너그러운가요? 라고 물으면 이는 나쁜 질문입니다. 인간은 복잡하니까요. 앞에 대립하는 부족이 나타나면 이기적이 되고, 거기서 자기 아이가 막 달려나오면 그때는 또 너그러워지거든요. 협력이 인간의 본성이냐, 경쟁이 인간의 본성이냐 물을 수 없습니다. 둘 다 답이 될 수 있어요.

진화 경로에서 인간의 사촌인 침팬지는 철저히 힘에 지배되는 서열사회를 유지한다. 군주제나 독재는 침팬지의 유산이 과장된 경우로 볼 수 있다. 진화론이 처음 나왔을 때 반대파들은 종종 찰스 다윈을 침팬지나 원숭이로 묘사한 풍자 삽화를 그렸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진화 경로에서 인간의 사촌인 침팬지는 철저히 힘에 지배되는 서열사회를 유지한다. 군주제나 독재는 침팬지의 유산이 과장된 경우로 볼 수 있다. 진화론이 처음 나왔을 때 반대파들은 종종 찰스 다윈을 침팬지나 원숭이로 묘사한 풍자 삽화를 그렸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안 = 그렇다면 다윈주의를 내세우며 인간은 본래 정글의 법칙에 맞게 경쟁하며 자신의 먹을 것을 쟁취해 왔기에 규제를 풀어 자유시장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회진화론적 경제논리도 나쁜 질문, 나쁜 해석이 되는 거네요. 인간의 사촌이라는 침팬지 역시 서열사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계급사회죠. 그들의 마음이 우리 인간에게도 본성으로 남아 있겠죠.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지금까지 좀 더 평등한 세계를 지향해 왔습니다. 역사적인 저항이 있어왔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열사회가 심화되고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경제 통계들이 쏟아집니다. 사회적인 동물의 본성으로 이런 서열을 보다 변화시키고 개선할 수 있을까요?

핑커 = 침팬지들도 계급사회이며 결코 고치지 못했어요. 좋아하는 암놈이 있으면 그 옆에 있는 수놈을 쓰러뜨리고 차지하는 ‘알파 포지션’입니다.

안 = 우두머리 지위를 얻는 거죠. 힘으로만 변화가 가능하기에 매우 스트레스가 높은 구조입니다.

핑커 = 네, 스트레스가 많죠. 인간인 우리가 그래도 나은 부분은 침팬지보다는 영리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계급이 양산하는 해로움을 줄이는 기관을 만들 수 있어요. 민주주의처럼요. 군주제나 독재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침팬지의 유산이 과장된 경우이고,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매우 좋지 않은 침팬지 경향성을 막는 시도였습니다. 이는 알파가 되어 너무 오래 있는 것 또는 알파로서의 지위를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이죠.

안 = 민주적인 마음을 확산시킨다면, 먼 훗날 평화주의로 우리의 마음도 진화할까요?

핑커 = 다윈의 진화론이 갖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는 진화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이런 종류의 진화는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려야 자리 잡을 수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이는 어떤 형질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형질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많이 생존 자손을 퍼뜨릴 때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저는 독재나 군주제를 지지하는 사람들보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유전자를 바꿀 정도로 오래 우리 역사에 존재해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의 진화는 다윈주의가 문자 그대로 말하는 유전적 차원보다는 문화적 차원으로 대체되는 진화와 흡사한 내용으로 표현된 건데요. 그런 의미에서라면 인간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행복을 증진시키는 많은 구조를 창조해 왔잖아요. 인간적 본성을 갖고 있음에도 법정 시스템을 만들었죠. 이는 사람을 감정으로 처단하는 대신에 법과 경찰, 제3의 기관에 의해 판정하는 게 더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아직 변화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를 개선하는 사회적인 기구나 장치를 창조할 겁니다. 더 나은 삶을 만들 거예요.

안 = 지금의 우리 마음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핑커 = 그럼요. 우리가 털 없는 맨살이라고 놀리는 대신 옷을 만들었고, 생물학적인 한계를 명석함과 독창성으로 극복해 왔잖습니까.

안 =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뇌의 작용, 마음에 대해 많이 알게 됨으로써 전보다 더 행복하신지 묻고 싶습니다.

핑커 = 조금은 더 지혜로워진 것 같아요. 과학을 알면 정신적인 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내가 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요. 통찰이 나오죠. 음악 감상하는 방식과 같아요. 집중할수록 초보자들보다 음악의 미묘하고 복잡한 부분에 다가가겠죠. 미술사에 대해서 알면, 그림을 보며 훨씬 깊고 풍부한 경험을 하는 것처럼요. 생물학을 알고 숲에 가면 더 많은 정보를 감지합니다. 왜 새들이 이 시간에 보이는지, 왜 이런 표시를 하는지 등이오. 마음의 과학에 대해 잘 안다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면면에 대해 깊게 여러 면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정치, 경제, 역사와 연관을 맺게 돼요. 왜 사람들은 전쟁을 할까?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 정부 형태일까? 돈을 공유해야 할까?…. 모든 정치적인 문제들은 궁극에는 인간 본성에 관한 문제로 수렴되기 때문입니다.

핑커 교수는 인간에게는 본성적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창의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현재의 문명이 이를 보여준다. 그 능력이 있기에 오늘날 현실의 숱한 실패와 불합리 또한 인간의 이성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제는 힘의 불균형 속에서도 약자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다양성의 보장이다. 핑커 교수는 자신이 택한 과학적인 길만이 유일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마음의 작동을 살피는 그의 의도 역시 합리성을 추구하는 한 가지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티븐 핑커(왼쪽)·안희경

스티븐 핑커(왼쪽)·안희경

▲ 스티븐 핑커
인간의 마음·언어 연구…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에 선정돼


1954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출생한 스티븐 핑커는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1982~2003)를 거쳐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언어, 본성에 관한 연구와 저술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로 꼽힌다. 시각 인지와언어 심리학 연구로 미국 심리학협회(1984·1986), 미국 국립과학학술원(1993), 영국 왕립연구소(2004), 인지뇌과학협회(2010), 국제신경정신병학회(2013) 등이 주는 상을 받았으며,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인 자신의 저술들에 대해 핑커는 언어 3부작과 마음 3부작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언어에 관해서는 ‘언어는 생물학적 적응’이라는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언어의 모든 측면을 개괄한 <언어 본능>(1994)을 시작으로 언어와 마음의 본질을 조명한 <단어와 규칙>(1999)을 냈다. 마음에 관해서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1997)에 이어 인간 본성에 관한 아이디어와 도덕적·감정적·정치적 색채를 탐구한 <빈 서판>(2002)을 썼다. 그리고 단어로 우리의 생각과 주변 세상을 들여다본 <생각거리>(2006)를 발표함으로써 언어 3부작과 마음 3부작을 동시에 마무리했다.

2011년에는 시대와 지역, 인종, 문화, 문명을 넘나드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토대로 인간 사회에서 발생한 폭력을 분석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출판, 학자이자 저술가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 안희경(44·재미 저널리스트)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8년 동안 불교방송 PD로 일하며 시사·교양·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한국방송대상 교양 우수작품상(1998), 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 우수작품상(2000)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최근에는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과 불안에 휩싸이는 삶의 조건들을 조명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대담집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2013),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2014)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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