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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이 땅에서 연애하며 일하고 싶다

2015.03.30 20:56
김성진 |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의 ‘농담’에 청년들의 근심이 더하고 있다. 중동 진출과 관련해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해보라”는 말 때문이다. 대통령의 ‘농담’에는 농담 같지 않은 몇 가지 ‘어둡고도 위험한 진실’이 담겨 있다.

[기고]청년은 이 땅에서 연애하며 일하고 싶다

우선 대한민국 청년들이 유사 이래 최고로 어려운 상황인데 정부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에 무능력하다는 것이다. 2013년 12월 정부가 청년 맞춤형 일자리 대책을 발표할 당시 청년실업률은 7%대였지만, 최근 11.1%로 늘어났다.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놓았지만 1년 반도 안돼 실업률이 3% 이상 늘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을 기록한 것이다. 일자리를 잡아도 비정규직에 저임금이다. 돈이 없으니,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고, 심지어 연애조차도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20대 청년이 고시촌 방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통장 잔고는 5000원이었다.

두 번째는 청년들이 국내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고 사는 데 정부가 별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 수준을 높이면 청년실업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정반대다. 기간제와 파견노동자의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고 한다. 정규직이 아닌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을 대폭 확대하겠다고 한다. 반값 등록금을 하겠다고 했지만, 대학생들의 1인당 평균 학자금 대출은 1477만원에 달하고, 10명 중 7명 이상이 등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년들은 경제문제에 짓눌려 정치는 먼 나라 얘기가 되었다.

세 번째는 청년들의 해외 유출이 국가발전의 기본 원칙에 반하는 발상이라는 점이다.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즉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은 찾아오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가발전의 기본 원리는 나라 안에 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고, 외국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살고 싶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청년들은 생산의 주체이자, 기성세대의 노후 복지를 감당할 유일한 자산이다. 청년들이 행복하지 못하고, 쪼들리다가 재생산마저 포기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능력)을 자랑하는 청년들이 이 땅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해외로 빠져나가면, 우리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인도와 멕시코의 핵심인재들이 대거 미국으로 빠져나간 결과 이들 나라의 질적 성장이 지체되고 있음을 보라. 득중득국(得衆得國), 국민을 얻고 모아야 나라가 산다. 능력 있는 청년들이 한국에서 자리잡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돈이 아닌 인간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편하게 생각하는 환경 속에서 즐겁게 일하고 싶어한다. 청년들도 태어난 이 땅에서 우리말로 의사소통하며 퇴근해서 연애도 하고, 저녁식사 뒤 산책도 하고 싶어한다. 말이 좋아 해외 진출이지, 그 나라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돈을 위해 행복을 바꾸는 것이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삶이다. 연인과 부부가 돈 때문에 생이별해서 사는 것을 정부가 조장해서는 안된다. 70년대 중동 건설 붐 때도 가정 파탄이 큰 사회문제였다. 처녀 총각이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서 즐겁게 일하고 퇴근한 다음 연애도 하고 함께 살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박 대통령에게 ‘농담’이 시대착오임을 알려 주기 위해서라도 청년들이 정치적 선택과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멀리 열사의 땅에서 외로이 노동을 팔아 돈을 벌며 살 것인가, 아니면 연애부터 결혼, 출산, 2세 교육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행복하고 충만하도록 일하며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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