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의 귀환

2015.03.30 21:03 입력 2015.03.30 21:11 수정
한윤정 선임기자

개념·설치미술에 밀리다가 사실적 재현·상상적 표현의 회화 속성이 새삼 주목받아

국내서도 잇단 회화전 열려… 향수와 가능성 동시에 자극

개념을 바탕으로 한 뉴미디어와 대규모 설치작업이 중심을 이루던 미술계에 회화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독일의 베를린미술관 등 4개 기관의 순회전(2013년)을 비롯해 영국 테이트 브리튼 미술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이 근래 대규모 회화전을 마련했다. 디지털 시대의 맥락 없는 이미지 세례의 한편에서 사실적 재현과 상상적 표현이 가능한 회화의 속성이 새삼 주목받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볼만한 회화전이 잇따르면서 향수와 가능성을 동시에 자극하고 있다.

관객들이 ‘그림/그림자-오늘의 회화’ 전시장에서 세르반 사부의 작품(왼쪽)과 리송송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플라토 제공

관객들이 ‘그림/그림자-오늘의 회화’ 전시장에서 세르반 사부의 작품(왼쪽)과 리송송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플라토 제공

삼성미술관 플라토(서울 세종로)에 마련된 ‘그림/그림자-오늘의 회화’전(6월7일까지)은 주목받는 국내외 차세대 작가들을 통해 현대미술에서 회화의 의미를 재조명한다. 셰르반 사부(루마니아), 리송송(중국), 헤르난 바스(미국), 질리안 카네기(영국), 박진아(한국) 등 12명이 35점을 출품했다. 1970년 이후 출생한 작가들의 회화에서는 정보사회의 영향으로 모든 시대가 공존하는 무시간성,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인용 등이 두드러진다.

셰르반 사부는 루마니아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포토샵으로 변형한 뒤 회화로 완성한다. 오래된 사진처럼 빛 바랜 톤은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데, 사람에 비해 거대하게 표현된 건축물은 지금도 루마니아 사회를 맴도는 실패한 공산주의 유토피아의 모습을 연상시킴으로써 비판을 수행한다. 리송송은 크기가 다른 알루미늄 패널에 다양한 미디어에서 수집한 정치·역사적 이미지를 넣어 콜라주했다. 그에게 과거란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잊어야 하는 것이며, 이 같은 양가성을 강조와 삭제, 선명하거나 흐릿한 이미지로 표현한다. 전영백 홍익대 교수는 “회화는 저자성(저자의 의도)이 강해 현대미술에서 독자성(관객의 해석)을 앞세운 개념미술과 설치미술에 밀려났다”면서 “그러나 최근 조명받는 회화는 구상과 추상을 망라해 훨씬 개방적이며 관객과 적극 소통하려는 욕망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갤러리 현대(서울 사간동)가 설립 45주년 기념전으로 마련한 ‘한국추상화전’(4월22일까지)은 한국 추상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귀한 전시다. 이응노, 남관, 김환기, 유영국, 곽인식 등 추상미술 1세대와 요즘 미술시장에서 단색화로 각광받는 이우환,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 하종현, 김기린 등 2세대 작가 18인의 작품 60점이 나왔다. 한묵, 이성자, 류경채 등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가들도 망라됐다.

1970년 박명자 회장이 설립한 갤러리 현대는 한국 현대미술을 알리고 선도하겠다는 계획 아래 1972년 남관 개인전을 시작으로 추상작가들의 전시회를 지속적으로 열어 왔다. 이번 출품 작가들은 모두 갤러리 현대를 거친 작가들로 상당수는 이미 작고했다. 컬렉터들의 도움으로 1960~1970년대부터 최근작까지 선보여 작가 개인의 변화과정은 물론 미술사의 흐름도 느낄 수 있다.

원로 미술사학자 송미숙씨는 “작가 개개인의 고유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추상미술은 자연과 세상을 대하는 시각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서구 추상미술이 자연을 재현의 대상으로 국한시켜 배제한 데 비해 한국 추상미술은 자연을 심적 풍경의 소재, 우주의 리듬과 기의 세계로 끌어들였다”고 말했다.

마크 로스코의 ‘Untitled’(무제),<br />1970년. | 카바나콘텐츠 제공

마크 로스코의 ‘Untitled’(무제),
1970년. | 카바나콘텐츠 제공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추상표현주의 작가 ‘마크 로스코전’(6월28일까지)은 이미 입소문을 타고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로스코 그림이 지난해 크리스티 경매에서 8416만달러(약 850억원)의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데다 스티브 잡스가 타계 전 붙들고 명상하던 작품이라는 점, 한국에 온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유화 50점의 작품가액이 2조5000억원으로 국내 전시사상 최대라는 점 등이 화제를 불렀다. 30년(1940~1970년)의 창작기를 망라한 작품들은 단순한 화면에 색채의 느낌만으로 희로애락을 전달하면서 관객과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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