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는 왜, IS 아닌 ‘이란과 전쟁’을 택했나

2015.03.30 21:43 입력 2015.03.30 22:35 수정

예멘 투입 아랍연합군 창설

믿었던 미도 이란과 ‘밀월’

‘중동 패권’ 안 뺏기려 분투

예멘을 무대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확산일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10개국이 예멘을 공습하고 있는 가운데 아랍연맹은 29일 예멘 내전 대응을 위한 아랍연합군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긴박한 움직임의 중심에는 사우디가 있다. 사우디가 예멘에 개입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예멘 정국 안정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아랍 내 맹주국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크다.

사우디가 예멘에 개입하고 아랍국가들이 연합군을 창설해 대응하기로 한 것은 이란에 “더 이상 아랍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된다. 살만 국왕은 지난 28일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아랍연맹 회의에서 “후티 무장세력이 외세를 끌어들여 지역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상 이란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사우디는 왜, IS 아닌 ‘이란과 전쟁’을 택했나

최근 수년간 이란의 역내 영향력은 계속 커져 적대관계인 수니파 아랍국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이란은 테러와의 전쟁 이후 이라크와 시리아 정권,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잇는 시아파 벨트를 공고히 했다.

믿었던 미국은 이란과 화해무드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소탕작전에서 사실상 이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데다 핵협상 타결 분위기마저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반군 후티가 사우디의 뒷마당에서 정권을 잡기에 이르자 중동 전역의 ‘이란화’에 위기감을 느껴온 수니 아랍국들이 반격하고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핵협상을 워싱턴의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아랍국들이 독자적으로 안보 강화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멘의 지정학적인 중요성도 사우디의 불안을 부추겼다. 예멘은 수에즈 운하로 통하는 홍해 입구를 끼고 있다. 만약 후티 반군을 빌미로 IS나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가 예멘에서 기승을 부리면 해적이 창궐하고 있는 홍해 입구와 아덴만 일대가 지금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바닷길은 사우디와 아랍국들이 수출하는 원유의 주요 수송로다. 이뿐만 아니라 예멘에 배치된 전략미사일은 아덴만의 모든 선박을 공격할 수 있다. 사우디는 예멘이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이 활개치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전철을 밟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던 셈이다.

국내용으로는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전 국왕 사후 왕정을 강화하고 후계구도를 확고히 하려는 새 국왕 살만의 포석이기도 하다. 살만 국왕은 압둘라가 사망하자마자 IS와의 전쟁 대신 이란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수니파 맹주국’으로서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특히 예멘 작전을 주도하는 사람은 살만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국방장관이다. 무함마드는 살만 즉위 후 34세의 나이로 깜짝 발탁돼, 복잡한 사우디의 후계구도에서 차기 왕권에 한걸음 다가갔다.

하지만 이란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가운데서도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치체제를 갖췄고, 주변 아랍국들보다 강력한 시민사회를 갖고 있는 나라다. 그에 비해 사우디 등 친미 아랍국들은 전근대적인 봉건국가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이란이 주변 수니파 국가들에 ‘아랍의 봄’과 같은 상황을 부추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친미 아랍국들과 동맹관계이면서도 일정 거리를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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