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어벤져스 서울

2015.04.26 16:24 입력 2015.04.27 08:21 수정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 “‘우리’만 알아보는 서울
낯익어서 더 낯설어
‘정서’가 없는 공간은
단순 촬영장소일 뿐”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2015년 어벤져스 서울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김승옥, <무진기행>)

사춘기 시절 이 문장을 읽고 난 후 난 언제나 무진에 가고 싶어 했다. 안개가 밤사이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감싸고 있는 곳, 여귀가 뿜어내놓은 입김처럼 그렇게 암담한 장막 속에 은닉된 곳, 그런 곳이 바로 무진이다. 하지만, 무진은 지도에 표기된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속에 자리 잡은 문학적 공간이자 그래서 소설을 통해서만 도착할 수 있는 어떤 정서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설을 읽어야만 그곳은 열린다.

그러므로 더더욱 애틋하다. 언제나 그렇듯, 무진은 오염되지 않고, 훼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무진기행>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영화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한국에서 이미 작년부터 화제가 되었다. <어벤져스2> 일부가 한국에서 촬영된 덕분이다. 반포 세빛둥둥섬, 문래동 철강대로, 마포대교, 상암동 월드컵대로 등이 영화 촬영지로 예고되었다.

2014년 3월 촬영팀이 입국하자 마포대교를 통제하는 등 부산을 떨었다. 이 부산함에는 꼭 그렇듯이 경제적 이익에 대한 예측도 뒤따랐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어벤져스>의 한국 촬영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62만명 증가하고, 약 876억원의 소비지출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촬영 당시 한국스태프 120명 이상을 고용해 약 100억원 이상의 제작비를 한국에서 쓰게 될 것이라고도 발표했다.

한국 촬영에 대한 기대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 제고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이익의 창출이다. 한국 배우 수현이 출연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 기대가 반복되었다. 여기엔 이웃 나라 중국과의 비교도 한몫했다. <아이언맨3>의 판빙빙이나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이빙빙에 비해 수현이 얼마나 더 많이 나오느냐가 한국 관객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영화에 과연 한국이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가에 대한 관심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영화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한 장면.

영화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한 장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등장하는 한국은 꼭 한국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서울은 그저 울트론과 어벤져스팀이 싸우는 무대에 불과하다. 떡볶이, 치킨과 같은 한글과 서울이라는 자막이 그곳이 한국이라는 것을 겨우 알려줄 뿐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한국어를 잘 알고, 서울의 이미지를 기다리는 한국인에게 더 잘 보일 것은 분명하다. 그곳이 서울, 한국임이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울이라는 공간이 영화에 특별한 정서적 환기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다만, 액션이 발생하는 장소, 무대일 뿐이다.

마포대교나 상암, 문래동 뒷골목이 영화 속에 나올 때엔 과연 저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서울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에서 멋진 야경으로 촬영되었던 대교 나들목은 건조한 개발도상국가의 시멘트 빛으로 재현된다. 키치한 분위기의 <피에타> 속 뒷골목과 달리 어벤져스팀이 활약하는 한국의 뒷골목은 베이징이나 홍콩의 뒷골목이라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어벤져스팀과 대화를 나누는 수현의 형편도 다르지 않다. 돌출적이며 어색하다.

<어벤져스2>에 그려진 대한민국 서울은 ‘우리’만 알아보는 서울에 가깝다. 가족을 길에서 우연히 만날 때 드는 생경함처럼 그렇게 <어벤져스> 속의 한국은 낯익어서 더 낯설다. 어쩌면, 한국 관객들은 <어벤져스>를 통해 할리우드 제작진의 시선에 대한민국 서울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확인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건 우리가 기대했던 ‘서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영화 속에 그려진 서울은 영화를 보고 난 후 가보고 싶어지는 곳은 아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가보고 싶은 서울의 모습은 어벤져스 속 어디에도 없다.

영화 <킹콩>을 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궁금해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등장해서가 아니다. 킹콩이 앤에게 보여주었던 사랑, 그 정서가 바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대한 호기심의 근거이다.

<로마의 휴일>이 로마를 세계 관광의 중심으로 만들어 준 까닭도 단순히 촬영에 있지 않다. <로마의 휴일>은 로마라는 장소에서 경험할 듯한 정서의 판타지를 만들어 냈다. 순수하고도 우연한 만남, 우정, 사랑과 같은 정서적 환상들이 로마를 그럴듯한 곳으로 그려냈다. <서편제>의 청산도, <겨울 연가>의 남이섬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어떤 정서를 찾기 위해 그곳에 가고 싶어 한다. 마치, 존재하지도 않지만 늘 가보고 싶은 무진처럼, 문제는 장소 자체가 아니라 공간이 주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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