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용 식탁

2015.04.26 21:04 입력 2015.04.26 21:29 수정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 4인용 식탁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세 개의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사이.

우리는 짝이 맞지 않는다.
가능성이 많으니까 자꾸 멍이 들고 있다.

무엇을 생략해야만 우리는
허기를 느낄 수 있을까.

우리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면
어떤 종류의 사람처럼 보일까.

이웃집의 요리 냄새가 우리의 식탁으로 흘러든다.

우리는 손이 떨린다.
우리는 젓가락으로
열심히 밥을 먹어야 하는데.

- 신해욱(1974~)

[경향시선 - 미래에서 온 詩]4인용 식탁

△ 도무지 밝힐 수 없는 나를 밝히는 불가능한 행위가 시일 때가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서 얼마나 초과되었는가. 나는 공동체 속에서 얼마나 각각이 될 수 있는지 서로 간의 차이를 전시시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식탁에 모여 있는 우리는 대체 몇 명이었을까. 구성원이 넷이라면 세 개의 젓가락은 넘치고, 둘이라면 한 벌이 남게 된다. 아니 주어진 젓가락 세 개라는 것은 어쩌면 짝이 맞는 한 벌과 짝이 맞지 않는 한 개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넘치거나 모자라서 문제가 되는 사태인 것인데, 이게 왜 문제인지도 명쾌하지가 않다. 그러니까 ‘주어진 것’에 대한 불만이나 ‘주어진다는 것’에 대한 억압 같은 것들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오히려 보여지지 않는 중의적 정황 배치들 때문에 가능성이 생기고, 그 생략이나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허기진 상태나 멍이 든 상처 부위들을 진술하고 있다. 물론 그곳이 어디인지 영영 모르게 될 곳이겠지만, 결국 우리의 위치를 설정하게 되는 근거는 저 바깥 때문이다.

‘이웃집’이라는 타자들 때문에 우리가 생기고, 나를 소거한 당신들 때문에 ‘나’라는 현상이 겨우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시에서 여백이란 것도 감추도록 작동하는 전략이나 여유가 아니라 감출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알 수 없을 때까지 나를 묻는다. 알 수 없는 빈 곳, 그 미지 때문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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