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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강진

1주일 전, 학자 50여명 ‘대재앙’ 경고했지만… 결국 ‘비극’ 못 막아

2015.04.26 22:02 입력 2015.04.26 22:35 수정

인도판, 해마다 45㎜씩 유라시아판을 밀며 북진

‘세계 최빈국’ 네팔 정부 내진 대책 엄두도 못 내

“(불과 며칠 전) 저는 지진이 일어난 곳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곳에 조만간 큰 위험이 닥쳐오리란 것을 이미 예감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제임스 잭슨은 AP통신에 25일 이렇게 말했다.

잭슨을 비롯한 세계 50여명의 과학자들이 네팔 카트만두에 모인 것은 1주일 전이었다. 이 가난한 인구밀집 지역에 큰 지진이 강타할 경우 일어날 참사에 대한 대비를 촉구하기 위한 회의였다. 한 달 전에는 빈곤지역 참사 대비를 돕는 미국의 비영리기관 ‘지오해저드스’가 “카트만두 거주민들은 심각한 지진의 위험 속에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우려했던 ‘악몽’은 너무 일찍 현실이 돼버렸다. 카트만두 참사는 모두가 예상했지만, 아무도 막지 못한 비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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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 산맥을 품은 네팔은 세계 최대 지진 위험지대 중 하나다. 히말라야 산맥 자체가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지각이 솟구쳐 생긴 지진의 산물이다. 인도판은 5000만년 전부터 끊임없이 북쪽으로 이동해왔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인도판이 매년 45㎜씩 유라시아판을 밀어내며 북진하고 있다고 본다. 중국 남서부 티베트부터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을 거쳐 카스피해까지 이르는 히말라야 지역은 두 지각판이 만나는 지진대에 있다.

이 때문에 남아시아 지역에서 지진은 일상화돼 있다. 매년 규모 4~5의 지진이 반복된다. 네팔에 존재하는 활성단층만 최소 92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1934년에는 규모 8.0의 강진이 카트만두 동부를 강타해 1만600여명의 사망자를 냈고, 1988년에도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해 1500여명이 숨졌다. 이미 전문가들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때 네팔이 다음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6일까지 여진이 이어지면서 주변국에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네팔의 지진파가 퍼지면서 주변 지역에 지진을 촉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으로 방출된 에너지는 2008년 8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중국 쓰촨 대지진의 1.4배 규모에 달했다. 로저 빌럼 미국 콜로라도대학 지질과학 교수는 이번 지진이 “카트만두시 전체를 남쪽으로 3m 이동시켰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지구 최대의 위험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네팔인들이라고 모를 리 없다. 단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건물 내진설계가 잘돼 있는 일본은 규모 7.5의 강진에도 끄떡없지만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인 네팔은 대비책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1996년부터 10여년간 이어진 내전도 대책을 세우기 어렵게 한 요인이었다. 2011년부터 국제단체인 ‘네팔 위험대책 컨소시엄(NRCC)’의 도움으로 내진 강화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번 참사를 막지는 못했다.

대지진 위험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카트만두로 계속 몰려들고 있다. 현재 카트만두 일대의 인구는 250만명이 넘는다. 히말라야 산맥 아래 농민들은 늘 산사태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이들을 모두 강제이주시키기도 어렵다.

지진 전문가 케이트 라빌리우스는 “우리는 지금 인프라가 취약한 빈곤국에 대지진이 일어날 경우 어떤 참사가 빚어지는지 목도하고 있다”면서 “내륙으로 둘러싸인 네팔의 유일한 국제공항이나 도로가 파괴될 경우 국제구호팀의 접근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우기는 또 다른 위험을 안겨다 줄 것으로 보인다. 재건이 더뎌질 경우 지진과 산사태로 계곡이 막히면서 불어난 물이 홍수를 일으킬 우려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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