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야당의 ‘황교안 싸움’

2015.05.28 21:19 입력 2015.05.28 21:22 수정

[양권모칼럼]대통령과 야당의 ‘황교안 싸움’

한 달여 국무총리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연이은 ‘총리 잔혹사’ 덕에 이제 총리 유고 상태가 지속되어도 국민은 불편해하거나, 새삼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사실 온전히 ‘책임총리제’를 시행하지 않는 한, 대통령제 아래서 총리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실세 장관보다 비좁다. 그럼에도 정부 출범 때나 정치적 고빗길에 총리 인선을 주목하는 것은 그 자체가 갖는 정치적 함의 때문이다. 총리로 선택되는 인물을 통해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향후 국정운영의 기조가 발현되는 까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총리 후보로 지명한 것은 국정운영의 틀을 정치개혁으로 치장한 ‘공안 정치’, 정치·사회 전반의 전방위 사정으로 잡아가겠다는 선포나 진배없다. 청와대는 대놓고 “과거부터 지속되어온 부정비리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개혁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명 배경을 적시했다.

실제 ‘황교안 카드’에서 경제활성화, 남북관계, 민생, 국민통합 같은 국가과제를 떠올릴 수는 없다. 경제도약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정치·사회 개혁, 부패 사정이 필요하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칼’을 가리기 위한 군색한 포장에 불과하다. 결국은 ‘공안 정치’와 사정 드라이브를 통해 정치적 반대자를 옥죄어 임기 후반기 권력누수를 막아보겠다는 포석이다. 그래서 ‘황교안 총리’에서 선명히 어른거리는 것은 집권 전반기 ‘공안 통치’를 기획·연출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그림자다.

황교안 총리 지명은 대결의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신호다. 야당이 임기 중에 두 번이나 해임건의안을 냈던 법무부 장관을 곧장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야당에는 치욕스러운 도발이다. 야당이 자다가 들어도 벌떡 일어날 인사를 앞세우면서 4대 구조개혁 등 국정과제 해결에서 야당의 협조와 대화를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박 대통령은 ‘황교안 카드’를 꺼내면서 통합, 소통의 정치를 완전히 접었다. 이제 이념 갈등을 조장하고 진영 간 대립을 파열시킬, 법만을 앞세운 ‘공안 정치’만 펄럭일 판국이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누구보다도 능력 있고 도덕성에 있어서도 국민들한테 손가락질받지 않는 그런 인재를 찾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호언했다. ‘그 원칙’이 최고로 적용되어야 할 총리 인선에 ‘비리 완구백화점’ 소리를 들은 이완구 의원에 이어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뽑아들었다.

황 후보자의 도덕성 의혹과 자질 하자들은 역대 낙마한 총리 후보자들이 억울하게 보이게 만들 정도다. 16개월 동안 16억원을 벌어들인 고액 수임료는 이명박 정부 때 전관예우로 자진사퇴한 정동기 감사원장 지명자보다 많은 액수다. 황 후보자는 최근 10년간 365만명 중에서 4명만 해당된 91만분의 1 확률의 희귀한 ‘만성 두드러기’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자식들에 대한 편법 증여와 증여세 탈루, 아파트 투기, 상습 과태료 체납, ‘삼성X파일’ 수사에서 떡값검사 봐주기 등 의혹의 가짓수부터 남다르다. 여기에 정교일치를 내면화한 듯한 종교 편향, 4·19혁명을 ‘혼란’으로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규정하는 헌법정신 부정, 냉전적 국가보안법 찬양 등은 내각을 통할할 국무총리로서의 적합성에 근본적 의문을 낳게 한다. 황 후보자를 두고 “빨갱이를 입에 달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극렬 기독교인들의 고급 버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낙마한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의혹들은 황 후보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문제는 야당의 실력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의 강력한 반대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황교안 총리’를 들이밀었다. 새정치연합은 ‘저지’를 외치고 있지만, 미덥지가 않다. 야당은 그간 선거에서만 쪽팔리는 패배를 당해온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독주와 실정에 맞서 ‘이기는 싸움’을 벌여본 적이 별로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자격 미달의 총리 지명자 3명을 낙마시킨 것도 야당의 실력으로 이뤄낸 게 아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으로 기록될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준에서 사실상 공범 역할을 한 새정치연합이다.

야당이 이번에도 ‘제2의 김기춘’, ‘대결 정치’의 자객으로 나선 황 후보자를 막아내지 못할 경우,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과 ‘공안 정치’에 속절없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된다. 박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걸고 나선 ‘황교안 싸움’에서 또 무력하게 물러선다면, 야당의 존재 이유부터 질문받게 될 것이다. “여당과 싸울 때는 비실비실하고, 밥그릇을 놓고 자기들 끼리끼리 싸울 때만 쩌는 전투력을 발휘”하는 야당은 지지층에게도 환멸을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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