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 되어서도 잊혀진 ‘저항정신’ 일깨운 프랑스 영웅들

2015.05.28 21:55 입력 2015.05.29 00:24 수정

레지스탕스 4인의 관 팡테옹에 영구히 안장

2명은 여성 ‘차별 포용’

27일 프랑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파리 시내를 통과한 네 개의 관이 프랑스 국립묘지인 ‘팡테옹’ 앞에 도착했다. 팡테옹은 파리에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성당으로 빅토르 위고, 볼테르, 루소, 에밀 졸라, 앙드레 말로 등 프랑스를 빛낸 위인과 영웅이 묻혀 있다. 예복을 차려입은 군인들이 프랑스 국기로 덮인 관들을 엄숙한 분위기 속에 운반했다.

그러나 관 속에 들어 있는 것은 흙뿐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맞서 싸운 레지스탕스 4명이 팡테옹에 안치되는 영광을 얻었지만,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고 그들의 몸은 흙으로 돌아갔다. 당초 가족들은 그들의 영면을 방해하길 원치 않았으나 정부가 무덤가의 흙이라도 안장해 그들의 헌신을 기리고자 했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이날 열린 기념식에서 “이들은 (불의에 맞선) 저항정신으로 일생을 바쳤다”고 추모하면서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무관심”이라고 말했다.

<b>4인의 초상화</b>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27일 파리 시내의 국립묘지 팡테옹에 새로 안치된 레지스탕스 4명의 대형 초상화 앞에 서 있다. 왼쪽부터 장 제이, 주느비에브 드골-안토니오즈, 피에르 브로솔레트, 제르멘 티용의 초상화.  파리 | AP연합뉴스

4인의 초상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가운데)이 27일 파리 시내의 국립묘지 팡테옹에 새로 안치된 레지스탕스 4명의 대형 초상화 앞에 서 있다. 왼쪽부터 장 제이, 주느비에브 드골-안토니오즈, 피에르 브로솔레트, 제르멘 티용의 초상화. 파리 | AP연합뉴스

특히 이번 안장식은 팡테옹의 ‘금녀의 벽’이 허물어졌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1791년부터 지금까지 팡테옹에 묻힌 73명 중 여성은 단 2명이다. 남편과 합장된 경우를 빼면 본인의 업적으로 묻힌 여성은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마리 퀴리가 유일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는 위인이 남성밖에 없는가”란 비판도 있었다.

팡테옹에 묻힐 인물을 결정하는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이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2009년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이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유해를 팡테옹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후 격렬한 비난에 휩싸였다. 우파인 사르코지가 카뮈의 인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카뮈의 가족이 반대에 나서 이장이 무산됐다.

뒤이어 집권한 올랑드 대통령은 팡테옹에 묻힐 사람을 정할 때 여론을 반영하기 위해 2013년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다음번에 안장될 인물은 여성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이번에 이장된 4명의 레지스탕스 중 2명은 여성이다.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의 조카딸 주느비에브 드골-안토니오즈(1920~2002)와 제르멘 티용(1907~2008)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싸우다 붙잡혀 여성 수용소로 끌려갔다. 나치는 여성들을 무작위로 골라내 처형하거나 개를 풀어 공격하게 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세상을 뜨기까지 “여전히 인간의 위대함을 믿는다”고 했다. “수용소에서 굶주린 포로들이 동료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던 광경이 잊혀지지 않는다”던 드골-안토니오즈는 전쟁이 끝난 후 노숙인과 빈곤층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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