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메르스 사태의 본질

2015.06.11 21:18 입력 2015.06.11 21:21 수정
이상이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시론]메르스 사태의 본질

6월11일 오전 8시까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자는 122명이고 9명이 사망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세월호 침몰 때처럼 이번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지 못했다. 게다가 외국인들의 한국관광 취소와 소비수요 위축으로 우리 경제는 큰 손실을 입었다. 이것은 메르스 사태의 ‘현상’이다.

그런데 어떤 사안의 드러난 현상만 봐선 안된다. 본질을 봐야 한다. 그래야 거대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메르스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대한민국의 저열한 사회공공성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포함된다. 하나는 정부의 무능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불신이다.

먼저 ‘정부의 무능’부터 살펴보자. 세계화 시대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나 메르스와 같은 신종 감염병의 국내 전파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결국 ‘얼마나 잘 막아내느냐’가 관건인데, 이는 정부의 두 가지 방역 능력에 달려 있다.

첫째, 정부는 신종 감염병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진단하는 효과적 감시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메르스는 3년 전부터 중동에서 유행했으므로 언제든지 감염자가 국내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감시체계를 체계적으로 작동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잠복기 상태로 입국한 최초의 메르스 환자는 발열과 기침 증상을 보였던 지난 5월11일부터 확진을 받았던 5월20일까지 무려 4곳의 의료기관을 다니며 바이러스를 전파했고, 그동안 우리 정부의 감시체계는 무능했다. 인력과 시설 등 감시체계의 공적 인프라가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는 신종 감염병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여기서도 무능했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제약조건 때문이다. 메르스 확산의 첫 번째 온상이었던 평택성모병원 역학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나라는 병원시설이 감염병의 병원 내 확산에 매우 취약하다. 게다가 환자 공용병실에서 가족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간병하는 후진적인 돌봄 환경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이렇게 감염병에 취약한 병원 환경이라는 구조적 요인을 그대로 방치한 것도 정부의 무능에 해당한다.

중요한 정부의 무능이 하나 더 있다. 평택성모병원의 경우처럼 신종 감염병이 병동으로 확산된 때는 신속하게 병원을 폐쇄하고 밀접 접촉자 전부를 시설에 격리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선제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감염병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격리시설 등의 공공의료 인프라가 극히 취약하다. 그렇다고 민간병원을 강제로 폐쇄하고 시설격리를 추진할 만한 제도적 준비도 갖춰져 있지 않다. 보건의료의 공공성이 OECD 최하 수준이다. 그래서 일을 키웠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우리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치렀다.

다음으로 ‘사회적 불신’을 살펴보자. 세월호 침몰 때처럼 메르스 사태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무능했다. 누구나 정부의 무능을 질타한다. 그런데 정부는 무엇인가? 정부는 곧 사회공공성이다. 정부가 무능한 것은 사회공공성이 저열하기 때문이다. 사회공공성이 낮은 국가는 신뢰수준도 낮다. ‘함께 살자’는 연대의 공동체 의식 대신에 ‘나만 살자’는 각자도생과 이기심이 판치게 된다. 시장만능주의 사회에서 메르스 사태를 맞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그런 모양새다. 사회공공성이 낮은 곳에서 사회적 불신은 높기 마련이다.

의학적으로 메르스는 의료기관 감염으로 확산되고 환자와 밀접하게 접촉한 경우에만 비말로 전파된다. 공기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학교 휴업은 불필요하고 의학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발표했고, 대한감염학회 이사장도 신종플루 때는 학교가 전파의 온상이었기 때문에 휴업이 타당할 수 있지만 메르스는 학교와 무관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의 요구로 10일 현재 2474개 학교가 휴업했다. 정부의 발표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적 불신이 집단적 불안으로 증폭된 것이다.

정부의 무능과 사회적 불신은 낮은 사회공공성의 다른 이름이다. 지난 20년 동안 역대 정부와 정치권은 사회공공성 확충을 방기했고 민영화를 추진했다. 이것이 메르스 사태를 초래했다. 공적 영역을 키워야 한다. 사회공공성 확충을 위해 세금을 더 내고 법률에 따른 제도적 규제를 감내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안전망이 튼실해지고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공공성 높은 사회일수록 국가에 대한 신뢰가 높고 이웃을 믿는 열린 공동체로 발전한다. 이것이 복지국가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의 본질은 ‘저열한 사회공공성’이며, 그러므로 올바른 해법은 무능한 시장만능주의 ‘작은 정부’를 넘어 공공성 높은 역동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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