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는 돈병이다

2015.06.15 20:39 입력 2015.06.15 22:44 수정
조호연 논설위원

[경향의 눈]메르스는 돈병이다

내내 궁금했다. 왜 질병관리본부(질본)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검사를 거부했을까. 사태 초기이니 검사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동반한 의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이틀간 코미디가 연출됐다. “메르스 없는 바레인 여행자니 검사할 필요 없다”와 “검사해서 안 나오면 책임질 거냐”는 엉뚱한 대응과 “검사 안 해 주면 고위층에 알리겠다”는 협박이 오갔다. 이 틈을 타 메르스는 한국에 연착륙했다. 첫번째 ‘메르스 골든타임’이 이렇게 허망하게 날아갔다.

이번 재난의 서곡을 연 코미디에는 질본과 병원, 환자 가족이 등장한다. 관료의 소심성과 손톱만큼도 책임을 안 지려는 이기주의, 약자와 하부기관에 대한 오만과 갑질이 극적 요소다. 사명감 없는 관료가 법과 기준, 규정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며 그곳에 안주하는 데서 비롯되는 부조리극인 셈이다. 법에 상식이 규정돼 있지 않으면 상식을 배제하고, 기준에 재량권이 나와 있지 않으면 누가 뭐래도 벽창호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통상의 관료주의만으로 지역사회 전파 없이 병원 간 감염이라는 한계가 뚜렷한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뚫린 엄청난 부조리극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한 달도 안되는 기간에 환자가 150명을 넘어서고 수천명이 격리된 국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감염병 교과서를 새로 쓰는 것이다. 전염병이 퍼지려면 일정한 조건이 필요하다. 중동처럼 고온 건조한 한국의 6월 날씨와 인구 밀집은 필수 요인이다. 그러나 한국과 유사한 조건을 갖췄지만 메르스가 뚫지 못한 이웃나라들을 보면 한국만이 갖고 있는 배경이 있다고 봐야 한다.

“전염병의 확산은 바이러스의 속성뿐만 아니라, 그 나라 정부와 정치·사회적 속성에 기인한다”는 미국 브라운대 교수 케네스 메이어의 말(<감염병의 사회생태학>)에 그 단초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활성화 정책을 보자. 의학분야에서 소위 ‘돈 되는’ 임상 의학을 장려하고 예방 의학을 경시하고 있다. 보건 분야는 보건복지부 예산의 4%에 불과한데도 예산 깎을 일이 생기면 언제나 1순위로 꼽힌다. 평소 돈만 들어가고 수익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메르스 사태 같은 재난이 벌어지고 나서야 필요성을 느낄 뿐이다. 실용 학문을 우대하고 기초 학문을 푸대접하는 정책과 같은 맥락이다.

이러니 적극 행정, 창의 행정은 언감생심이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기준이 2 이내면 거기서 단 1㎝만 벗어나도 밀접접촉 대상으로 적용하지 않게 된다. 메르스가 발생하지 않은 바레인 여행자는 메르스 검사를 하지 않는 기계적 대응밖에 하지 못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 질본이 역학조사를 벌여 ‘살균제가 폐를 손상시켰다’고 조사결과를 밝혔더니 고위층으로부터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질책이 쏟아졌다고 한다. 진실이더라도 정부가 곤란한 입장에 처한다면 배척하는 분위기 속에서 감염병 방어에 필수적인 선제적 대응이 나올 리 없다. 이렇게 감염병 전파의 토양이 형성되는 것이다.

정부 매뉴얼에 따르면 전염병 발생 시 최우선 과제는 국민의 안전이다. 초기에 신속하고 강력한 대응으로 최초 전염병 발병자의 빠른 치료와 확산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사회 혼란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관료들을 예산과 규정으로 꽁꽁 얽어매 국민 안전과 관련된 사안에서도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메르스에 약한 정부, 면역력이 없는 국가가 여기서 나온다.

정부 정책은 병원의 공공성 약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사람보다 돈을 구하는 데 더 신경 쓰는 경영을 채택하도록 메르스 방어력을 떨어뜨렸다. 입원실은 늘리고 예방 의학실은 구색만 갖췄다. 응급실은 시장바닥으로 변해 감염의 주 무대가 됐다. 감염병 환자에 필수적인 음압격리 병상을 제대로 갖춘 민간병원은 거의 없다. 삼성서울병원마저 감염환자가 속출하는데도 선제적 대응을 주저하는 등 수익성에만 매달리다가 급기야 국민 보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정도다.

메르스는 중동에서 호흡기 전염병이었지만 한국에 와서는 ‘돈병’ ‘경제병’이 되었다. 안전을 무시하다 수백명의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와 유사하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에서는 죄를 뒤집어씌울 세월호 선장 같은 대상이 없다. 온전히 박근혜 정권이 다 감당해야 한다. 아무리 변명과 핵심 흐리기, 유체이탈화법을 동원하더라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 메르스는 물러갈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를 전염병에 강한 체질로 바꾸지 않는 한 언제든 되돌아올 것이다. 해결책은 하나다. ‘경제병 정책’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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