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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전염병에 대처하는가

2015.06.30 21:16 입력 2015.06.30 22:38 수정
전중환 |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진화심리학

[진화의 창]마음은 어떻게 전염병에 대처하는가

지난주에 다녀온 제주도는 한산했다. 어디서나 눈에 밟히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관광명소마다 빼곡히 들어선 중국어 안내 표지판들이 왠지 쓸쓸했다. 메르스가 만들어낸 낯선 풍경이었다.

전염병은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악역을 맡았다. 14세기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쓰러뜨렸다.

200년이 지난 후, 흑사병의 재앙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이의 후손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 바람에 천연두, 홍역, 장티푸스도 덩달아 전해졌다. 이 질병들에 대한 저항력이 없었던 멕시코 전체 원주민의 75%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에서 약 50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오늘날에도 전염병은 우리를 음산하게 옥죄어 온다. 세계보건기구는 인플루엔자, 결핵, 에이즈 같은 병에 감염된 사망자가 매년 1500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자연 선택은 우리 몸 안으로 일단 들어온 병원체를 때려잡는 면역계를 정교하게 진화시켰다. 여기에 덧붙여, 병원체에 감염되는 것을 아예 처음부터 막아주는 행동도 병원체와의 전쟁에서 매우 쏠쏠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 붉게 발진 난 피부, 상한 음식물 냄새처럼 병원체에 감염될지도 모를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일단 감염을 피하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게끔 진화했다. 전염병에 걸릴까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속의 건강염려증 환자가 우리를 이끄는 컨트롤타워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자.

첫째, 남들과 어울리기를 꺼리고 자기 자신을 내성적이라 여기게 된다. 처음 본 이들과도 어깨동무하며 금세 으샤으샤 친해지는 사람은 대개 부러움의 대상으로 꼽힌다(‘어쩜 저렇게 사회생활을 잘할까!’). 하지만 전염병이 퍼진 상황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 사람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는 이는 그만큼 병원체를 얻을 가능성이 더 크다. 즉 병원체에 감염되기 쉬운 환경에서는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집 안에 콕 틀어박혀 있는 게 상책이다. 한 연구에서는 지저분한 수챗구멍, 쓰레기 더미, 배설물 등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평범한 건축물 사진을 본 사람들보다 자신을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여기는 경향이 더 뚜렷함을 발견했다.

둘째, 병원체를 옮길 우려가 있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더 배척하고 멀리하게 된다. 계속 기침을 해대거나, 마스크를 착용했거나,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사람을 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메르스 공포가 한창 심할 때 공공장소에서 무심결에 기침이라도 한번 했다간 그대로 왕따 신세가 되었음을 상기하시라.

[진화의 창]마음은 어떻게 전염병에 대처하는가

흥미롭게도, 다른 지역이나 타국에서 온 외부인을 차별하는 편견도 전염병이 득세하면 더 심해진다. 스페인 병사들이 옮긴 천연두와 홍역에 속절없이 쓰러진 멕시코 원주민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인들은 우리 집단의 사람들이 미처 저항력을 발달시키지 못한 치명적인 병원체를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 제이슨 포크너와 그 동료들은 한 집단에는 병원체의 위험을 강조하는 사진들을, 다른 집단에는 감전사나 교통사고의 위험을 강조하는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이입 정책에 대한 찬반을 물었더니, 전염병을 피하려는 동기가 활성화된 집단에서 반대가 더 높았다.

같은 논리로, 외부인에 대한 편견을 줄일 수도 있다. 다른 실험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항균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게 했더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감소했다.

셋째, 권위와 전통을 내세우면서 개인의 일탈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가 더 강화된다. 어느 한 지역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과 규범은 일정 부분 그 지역의 토착 병원균들의 전파를 막는 역할을 한다. 예컨대 상하수도 시설이 미비했던 과거 우리 사회에서 집을 지을 때 뒷간은 본채에서 되도록 멀리 두어야 한다는 규정은 위생상 중요했다. 즉 다수를 따르길 거부하고 혼자서 튀는 행동은 병원체의 먹잇감이 되기에 십상이라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전염병의 위협이 그다지 크지 않다면, 과감히 혼자서 튀는 시도가 창의적인 기술 혁신을 이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요컨대 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는 권위와 전통을 더욱 따르려 하는 한편 누군가 일탈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병원체의 위험을 강조하는 사진들을 본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경향이 더 높아짐을 발견했다.

전염병을 피해야 하는 동기가 활성화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고, 외부 집단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고, 권위를 더 내세우며 남의 일탈을 못 참게 된다.

메르스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은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에 이런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는지 따져볼 일이다. 여당 원내대표가 정부의 국정 운영 기조를 거스르고 자기 정치를 한다며 직격탄을 날린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은 꽤 잘 설명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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