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읽음

‘좌향좌’ 미 대법 “사형제 적법한가”

2015.06.30 21:50 입력 2015.06.30 23:02 수정

진보 대법관들 판결서 거론

보수적 대법관 거세게 반박

위헌 여부 수술대 오를 듯

‘사형제가 잔혹하고 비상식적인 형벌 부과를 금지한 수정헌법 8조에 위배되는지 검토할 때가 됐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일부 대법관들이 29일 독극물을 이용한 사형집행 때 고통을 줄이기 위해 쓰는 마취제의 사용이 위헌인가에 대한 판결을 내리며 이러한 화두를 던졌다.

판결문에서 사형제 위헌 의견을 제시한 대법관은 진보 성향의 스티븐 브레이어와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브레이어 대법관은 마취제 사용 등 사형제 시행 과정의 위헌 여부를 일일이 따지기보다 사형제 자체의 위헌성을 따질 때가 되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사형수로 30년간 복역하던 중 지난해 DNA 검사 결과에 따라 무죄로 풀려난 헨리 리 매콜룸의 사례를 제시하며 무고한 사람들이 사형된 증거가 꽤 있다고 했다. 또 사형이 인종차별적으로 이뤄지는 점, 사형제가 범죄를 예방한다고 볼 만한 근거가 희박한 점, 미국이 사형 폐지의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사형 선고 이후 실제 집행까지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는 것도 수정헌법 8조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긴스버그 대법관도 이에 동의했다.

이에 보수 성향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사형제에 대한 위헌 여부는 사법부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우리 연방판사들은 평온한 교외나 도심의 호텔 같은 아파트에서 경비원의 보호를 받으며 많은 미국인들이 매일 시달리는 폭력 위협에 직면하지 않는다”며 “어느 정도의 형벌이 범죄 억제 효과가 있는지는 사람들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사형제는 의회의 입법과 정치적 판단으로 정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사형 선고 후 집행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고통을 준다는 브레이어 대법관의 주장에 대해 “부모를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이제 고아가 됐으니 선처해달라’고 요구하는 격”이라고 반박했다.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도 이에 동조했다.

이 논쟁은 사형 기결수 3명이 미다졸람이라는 마취제가 사형에 쓰이는 독극물의 고통을 크게 줄여주지 못한다며 수정헌법 8조에 위배된다고 낸 소송의 대법원 판결 과정에서 벌어졌다. 대법원은 합헌 5명, 위헌 4명으로 이 마취제 사용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보수 성향 대법관들은 모두 합헌 의견을, 진보 성향은 모두 위헌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동성결혼 합헌 판결에 이어 사형제의 위헌 여부까지 대법원이 다루게 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관들 사이에 사형제 위헌 주장이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1994년이다. 현 대법관 진용하에서는 나온 적이 없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5년 대법원장이 된 존 로버츠 체제의 대법원은 보수 5명, 진보 4명이지만 최근 로버츠 대법원장이 동성결혼이나 오바마 케어 관련 판결에서 진보 측 손을 들어주는 등 판결 성향은 보수보다 진보 쪽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번 마취제 사용에 대해 합헌 판단을 내렸지만 사형제 자체에 대해서는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

대법원은 1972~1976년 일시적으로 전국에서 사형 집행을 중단한 적이 있지만 위헌 판결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현재 미국 50개 주 가운데 31개 주에서 사형제가 합법이다. 하지만 지난해 7개 주에서만 사형이 집행됐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