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 바라는 ‘대구 민심’ “대통령·유승민 그카면 안돼”

2015.06.30 22:11 입력 2015.07.01 08:22 수정
대구 | 유정인·박태우 기자

“누구 때문에 의원 됐는데…”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목소리

“박근혜 독설에 등골이 싸늘” 박 대통령에게도 차가운 시선

30일 오후 1시 대구 동구 방촌시장 앞 횡단보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지역구(대구 동구을)의 민심이 모이는 길목이다.

여느 건널목과 다름없지만 이곳에서는 ‘현수막 전쟁’이 한창이었다. 오전까진 건널목 앞에 “동구주민이 선택했습니다. 유승민 국회의원님 힘내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렸다가 철거됐다. 전날엔 반대로 “은혜를 모르는 유승민! 즉각 사퇴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가 역시 철거됐다. “양쪽에서 ‘왜 안 떼느냐, 왜 떼느냐’고 항의하는 통에 죽어난다”는 동구청 공무원의 한탄이 두 ‘거물 대구 정치인’ 사이에 낀 민심을 반영했다.

<b>‘현수막 전쟁’</b> 지난 29일과 30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지역구인 대구 동구 용계동의 유 원내대표 사무실과 방촌동 방촌시장 인근에 유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위 사진)과 반대로 지지·격려하는 현수막이 각각 내걸려 있다. | 연합뉴스

‘현수막 전쟁’ 지난 29일과 30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지역구인 대구 동구 용계동의 유 원내대표 사무실과 방촌동 방촌시장 인근에 유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위 사진)과 반대로 지지·격려하는 현수막이 각각 내걸려 있다. | 연합뉴스

동구을 주민들은 며칠째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 얘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를 친근하게 느끼고 ‘차세대 리더’로 기대하는 분위기는 확연했다. 하지만 2005년 10·26 재·보궐선거 지지유세에 나선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악수 공세에 퉁퉁 부은 손을 내밀며 유승민 후보 지지를 호소하던 것을 기억하는 이도 그만큼 많았다.

유 원내대표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적지 않았다. 방촌시장에서 만난 박명진씨(61·방촌동)는 “박 대통령 때문에 (의원) 된 거나 마찬가진데,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모씨(78)도 “유승민이가 마이 잘 몬하고 있지” “지금 와서 그라믄 안돼”라고 거들었다. 최정호씨(40·방촌동)는 단번에 “(유 원내대표가) 빨리 사퇴하는 게 답”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이래 마이 해줬는데 배신한 거죠. 다음 총선에도 유승민이 새누리당 달고 나오면 안 뽑아주야겠다 카고 있어요.”

박 대통령에 대한 싸늘한 민심도 만만치 않았다. 박 대통령이 ‘공개 불신임’하며 강한 말을 쏟아놓은 데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었다고 했다. 대구시의회 관계자는 이 같은 기류를 “영화 <친구>에 나오는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딱 그거”라고 표현했다. 45년째 택시사업을 하는 김주본씨(66)도 “박 대통령 스스로 대한민국과 결혼했다 카면 국가 전체를 생각해야지 그 카면 안된다. 차라리 불러가, 타이르는 게 낫다”며 유 원내대표 사퇴를 반대했다. 용계동의 안모씨(55)는 “바른 소리 한다고 대통령이 원내대표를 자른다는 게 말이 되나”라고 했다.

다만 박 대통령을 비판하면서도 결국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유 원내대표 지역사무소 앞에서 만난 박용기씨(58)는 “내 지역구 의원이 안 다쳤으면 좋겠는데 상대가 박 대통령 아니냐. 세계 어디나 보수 정권은 인물난이 없는데, 우리만 그런 것 자체가 포용력 없는 대통령 스타일을 보여주지 않느냐”고 말했다.

쪼개진 민심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하던 시절 보냈던 절대적 지지 여론과는 확연히 온도차가 났다.

중장년층은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운 유 원내대표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달성군 화원삼거리에서 만난 김종규씨(62·자영업)는 “대통령이 경제를 살릴라꼬 안간힘을 다하는데 보필하기는커녕 마구 흔들면 되나. 대구 사람이 대구 출신 대통령을 공격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토박이인 서동철씨(72)도 “(유 원내대표 행동은) 대통령을 곤경에 빠뜨려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정치 술수”라고 했다.

젊은층 기류는 조금 달랐다. 달성군 ㄱ중학교 학교운영위원인 이준규씨(44·가명)는 “메르스 여파로 서민경제가 휘청거리는데 집권당이 집안싸움 하는 것을 보니 정치에 진절머리가 난다”면서 양측을 모두 비난했다. 달성군청 앞에서 만난 김동석씨(37·가명)는 “박 대통령 당선 뒤 자신을 키워준 달성을 방치하다시피 했다. 신의와 의리를 저버린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대구 중심가로 이동할수록 확산됐다.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만난 회사원 권동철씨(34)는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특정인을 몰아붙이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다”며 “대통령의 감정 섞인 독설에 등골이 싸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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