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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파트너와 함께 살다 숨진 ‘무민’ 작가 토베 얀손이 “홀로 세상을 떠난” 사연은?

2015.07.21 11:51 입력 2015.07.21 14:30 수정

하마를 닮은 캐릭터로 유명한 ‘무민’ 그림동화를 번역·출간하는 한국 출판사가 작가 소개에 레즈비언인 토베 얀손의 성정체성을 감추려해 논란이 되고 있다. 출판사는 정정 요구에 답하면서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뜻을 담아 비판을 받았다.

21일 트위터에선 무민 그림동화를 출판한 ‘작가정신’이 쓴 토베 얀손(1914~2001년)의 소개글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작가정신은 작가 토베 얀손의 무민 책 소개에 “토베 얀손은 작고 외딴 섬에 집 한채를 짓고 홀로 살아가다 2001년 6월 27일,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썼다.

트위터리안 조나단(@Mac*********)은 지난 18일 “작가 정보가 오랫동안 잘못 기재되고 있어 말씀드립니다. 토베 얀손은 혼자 살다 죽은 게 아니라 레즈비언 파트너 투티키 피틸라와 수십년간 함께 했어요!”라고 지적했다.

레즈비언 파트너와 함께 살다 숨진 ‘무민’ 작가 토베 얀손이 “홀로 세상을 떠난” 사연은?

레즈비언 파트너와 함께 살다 숨진 ‘무민’ 작가 토베 얀손이 “홀로 세상을 떠난” 사연은?

작가정신 트위터 공식 계정(@jakkajungsin)은 “‘홀로’ 살아갔다는 의미는 ‘결혼하지 않았다’ 정도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까지 두루 읽힌 만한 책으로서, 일반적인 사회통념상 결혼을 하여 남편과 자식과 함께 살다 떠난 것이 아닌 정도로만 봐주세요^^*”라고 답했다.

작가정신 측의 답변은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사회통념’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빌어 성소수자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존재라는 해명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엄연히 동성 파트너와 함께 살아간 작가의 삶에 대한 왜곡이기도 하다.

정욜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는 “같은 동화인데도 레즈비언 정체성을 감추면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고, 드러내면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다는 의미라는 것이냐”면서 “레즈비언 정체성이 드러낼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사실이었다면 판권은 왜 사들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비하를 떠나서 한 사람의 삶을 주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한 것”이라면서 “고인에 대한 명예 훼손이고, 오히려 동화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작가정신 측의 해명은 기본적으로 동성애를 터부시하거나 감춰야할 ‘문제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출신의 이야기 채집단 ‘이채’는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그림책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를 냈다. 이 책에서 꽁치는 ‘치마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다. 하지만 축구도 좋아하고, 공기놀이도 좋아하는 아이, 정체성을 굳이 남과 여로 가르지 않는 얘기다. 고전적인 남녀 성역할에서 벗어나 삶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정욜 활동가는 “성소수자 문제도 단순히 감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민 트위터 공식 계정이 올린 토베 얀슨(오른쪽)과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라의 생전 모습.    |@MoominOfficial

무민 트위터 공식 계정이 올린 토베 얀슨(오른쪽)과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라의 생전 모습. |@MoominOfficial

문제 제기를 한 조나단은 작가정신 측에 “정 부담스러우면 생몰년도랑 지역 정도만 쓰고 ‘홀로 살다 죽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빼버리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제안했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캐릭터 투티키의 모델이 된 사람과 함께 살았다고 쓰면 작품과 관계된 더 좋은 정보일 거 같지만요”라고 덧붙였다.

무민은 하얗고 포동포동하며 주둥이가 커서 하마를 닮은 트롤 캐릭터이다.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의 여러 책과 만화에 나온다. 무민 가족은 핀란드의 숲 속에 있다는 무민의 골짜기에 살면서 다양한 모험을 한다. 동화, 영화 등으로 제작돼 전 세계적 사랑을 받았으며, 일본에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무민의 캐릭터들은 작가 토베 얀손의 실제 가족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작품에서 보이시하게 그려진 투티키(Too-Ticky)는 그의 동성 파트너였던 툴리키 피에틸라(Tuulikki Pietila)를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민 그림동화 14] 무민의 외딴섬 여행   | 작가정신 홈페이지

[무민 그림동화 14] 무민의 외딴섬 여행 | 작가정신 홈페이지

무민 트위터 공식계정(@MoominOfficial)은 21일 관련 문의에 “토베와 툴리키는 토베가 숨진 2001년까지 공개적으로 함께 살았다”면서 “(작가정신 측에)수정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무민은 항상 사랑, 용기, 관용을 지지한다”고 했다.

작가정신 측은 소개글을 저작권사에서 넘겨받았다고 했다. 홀로 산다고 쓴 부분은 일부러 작가를 왜곡하려는 것은 아니었으며, 간추린 소개글은 저작권사의 확인도 받았다고 해명했다. 김영란 작가정신 홍보팀장은 21일 경향신문과 전화통화에서 “작가의 삶을 왜곡하거나 성소수자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절대 아니였다”면서 “불쾌하셨던 독자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소개 글에서 ‘홀로’라는 부분을 삭제하기로 명확히 원칙을 세웠고 그 외 내용은 저작권사와 논의를 통해 다음 판부터 내용을 바꿀 것”이라면서 “다만 파트너라는 표현은 있었지만 레즈비언이라는 부분을 명시하지 않아 수위는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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