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김대식 "우리가 믿는 사랑은 과연 사랑일까?"

2015.07.21 14:41 입력 2015.07.22 18:12 수정

우리는 쉽게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 순간 사랑은 흩어진다. 늘 언어의 그물은 성기다.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순간에도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경향신문 연중기획 ‘심리톡톡 시즌2-사랑에 관하여’ 7월 강연에서 뇌과학자인 김대식 카이스트(KAIST) 교수는 틀에 박힌 사랑이라는 ‘물체’를 여러 각도에서 새롭게 바라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길가메시와 플라톤, 아벨라르와 리처드 도킨스 그리고 영화 <그녀(her)>라는 ‘사랑의 5가지 변주곡’이 그 길잡이가 됐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저서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김대식의 빅퀘스천>를 비롯해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 과학뿐 아니라 문학, 철학, 신학을 넘나드는 통찰력을 보여 준 바 있다.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사랑의 5가지 변주곡’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사랑의 5가지 변주곡’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5000년 전에 나온 답을 따라가다

<길가메시 서사시>란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거의 5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만들어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스토리죠. 길가메시는 힘도 세고 멋있게 생긴, 세상에서 부족한 게 없는 인물이었어요. 길가메시는 엔키두라는 친구와 모험을 하다가 숲에 사는 훔바바라는 괴물을 죽이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친구 엔키두도 죽게 되죠. 길가메시는 무척이나 슬퍼하다가 갑자기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요. 엔키두도 훔바바도 죽었듯이 자기 자신도 언젠가 죽게 된다는 것이죠.

길가메시는 불사신이 되고자 모험을 떠납니다. 그러다 우트나피쉬팀이라는 우리로 치면 산신령 같은 불사신을 만납니다. 길가메시는 우트나피쉬팀에게 간청해서 불사신이 될 수 있는 약을 받게 되죠. 정말 미스터리인데, 저 같으면 바로 그 약을 먹었을 테지만 길가메시는 약을 옆에다 두고 목욕을 우선 합니다. 그 사이에 뱀이 나타나서 그 약을 훔쳐가죠. 길가메시가 우트나피쉬팀을 다시 찾아갔지만 약을 다시 받진 못합니다. 길가메시는 결국 나는 죽는 거냐 하면서 울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요. 우트나피쉬팀 말씀이, 운다고 안 죽는 것도 아니다, 집에 가서 그냥 재밌는 일 하고, 친구들하고 즐겁게 사귀고, 아름다운 연인하고 사랑을 하라, 그게 끝입니다. 길가메시의 답이라고 알려져 있죠. 5000년 전에 이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와 있는 겁니다. 인류가 5000년 동안 철학,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여전히 우리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이라는 거죠.

그런데 사랑이 뭐길래, 5000년 전에도 인생 비밀의 답이라고 했을까요? 사랑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죠. 우리가 ‘무엇은 뭘까’라고 질문을 했을 때 사실 답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랑보다 훨씬 쉬운 것을 질문해 봅시다. ‘강아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아주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를 보여드리더라도 여러분들은 그것이 다 강아지라고 말씀하실 텐데요.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것은 이 무언가를 기계한테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강아지가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불과 3~4년 전만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조차 강아지와 고양이를 구별할 수 없었습니다.

학부 시절에 인공지능을 연구하면서 강아지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수천 줄짜리 코드를 작성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 나름대로 막연하게 강아지를 설명할 수 있는 조건은 뭘까 써내려간 것이죠. ‘다리가 네 개다’라고 하면, 모든 동물이 다리가 네 개이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섬세한 설명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몇 천 가지의 조건을 달아놓으면 어느 한 순간 이 강아지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강아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순간 다른 강아지는 이해 못한다는 겁니다. 왜냐, 너무 섬세하게 설명하면 특정 한 마리는 설명할 수 있어도 보편성을 잃는 것이죠. 거꾸로 보편적인 설명을 하면 강아지뿐만 아니라 고양이, 사자도 섞이기 시작합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가 없어요.

우리가 ‘강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강아지는 수없이 많다. 김대식 교수 제공

우리가 ‘강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강아지는 수없이 많다. 김대식 교수 제공

사랑도 똑같습니다. 하나의 구체적인 사랑은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러면 다른 분들이 ‘이거는요’ ‘저거는요’ 하고 묻게 돼요. 그렇다고 사랑의 보편적인 감정을 설명하면 다른 감정들에도 다 포함돼 있는 것들과 섞입니다. 그렇다면 사랑 그 자체는 뭘까요? 강아지 그 자체는 뭘까요?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데, 그건 정말 오래된 질문입니다. 무엇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철학에서 역사적으로는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었습니다. 유명론(唯名論·Nominalism)과 실념론(實念論·Realism)이죠. 실념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플라톤입니다. 우리 눈의 강아지들은 다 다른데, 왜 우리가 그것을 같은 것으로 인식하느냐에 대해 플라톤은 이데아의 개념을 들어서 설명합니다. 그 어딘가에는 완벽한 강아지, 완벽한 사랑이 존재하는 이데아라는 세상이 있는데, 우리는 그 이데아 세상의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죠. 이것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 다만 다 같은 것에서 나오는 거니까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라고 느낀다는 거죠.

반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명론을 주장합니다. ‘이데아라는 세상이 어디 있나, 다양한 강아지를 강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양한 강아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라는 겁니다. 경험을 통해 다양한 강아지의 교집합을 계산해서 그 무언가를 강아지라고 부른다는 것이죠. 유명론의 핵심은 다양한 강아지 혹은 다양한 사랑의 공통점은 딱 하나, 이름이라는 겁니다. 강아지는 뭐냐, 강아지라고 불리는 것이 강아지라는 겁니다. 둘 다 약간의 문제가 있죠. 실념론은 이데아라는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가설 하에 가능한 겁니다. 유명론은 순환논증에 빠지죠.

플라톤은 저서 <심포지엄(향연)>에서 사랑에 대해 유명한 이야기를 남깁니다. 옛날 옛적 인간이 지금의 모습을 갖기 전에는 얼굴이 2개, 팔이 4개, 다리가 4개인 거인이었다고 해요. 얼굴 2개가 남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 여자와 여자로 구성된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답니다. 이 인간은 자신의 힘만 믿고 제우스신에게 대들다가 벌을 받죠. 제우스신은 인간을 반으로 쪼갠 뒤 반(半)인간들을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뿌렸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반쪽인간이라는 거죠. 사실 내 짝은 원래 나였다는 겁니다. 나의 나머지 반쪽이 없이 태어나는 것이 우리가 받은 벌이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외롭고 그리움을 탄다는 것이죠. 평생을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겁니다. 나의 반쪽이 공간적으로만 흩어져 있다면 아프리카 어딘가 있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찾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의 반쪽이 2000년 전 클레오파트라라면 희망이 없습니다. 상당히 비관적인 생각입니다. 대부분 사랑은 이미 먼저 죽었거나 후에 태어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 우리가 느끼는 사랑은 진짜일까?

유명론자 중에 아벨라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서양에서 그리스 로마 문명 이후 1000년의 암흑시대를 지나 중세 후기에 처음으로 종교가 아니라 인간을 위주로 세상을 해석하기 시작한 철학자입니다. 알려지기로는 프랑스 파리의 최고의 미남이자 가장 똑똑해서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아벨라르는 자신이 가르치던 엘로이즈라는 어린 여학생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이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엘로이즈를 키운 삼촌의 반대로 둘 사이는 찢어지게 되고, 아벨라르는 삼촌이 고용한 깡패들한테 거세당하기까지 합니다. 낙담한 아벨라르는 수도사가 되고, 엘로이즈 역시 수녀가 됩니다. 거기까지 알려져 있었는데 20세기 중반에 알고 보니 이 분들이 수도사와 수녀가 되어서도 몇 십 년 동안 연애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주인공이 인형놀이를 하는데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 얘기죠. 영화 속 인물들은 그렇다면 인형을 갖고 놀듯이 우리를 갖고 노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사랑의 5가지 변주곡’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사랑의 5가지 변주곡’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결국 우리를 가지고 노는,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뇌입니다. 두개골을 열고 처음으로 뇌를 직접 봤을 때 정말 신기한 것은 신기한 게 전혀 없다는 그 자체입니다. 뇌는 그저 1.5㎏짜리 고깃덩어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분명히 이걸 가지고 우주와 별에 대해 생각하고, 뇌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겁니다. 뇌를 해부해 보면 안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감성도, 사랑도 보이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건 10의 11승(1000억) 되는 신경세포입니다. 또 세포 하나하나는 수천 또는 수만의 다른 세포와 연결돼 있어 10의 15승(1000조) 되는 연결성을 가지고 있죠. 그 연결성을 가지고 우리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어 낼까, 이게 현대 뇌과학이 가진 가장 큰 숙제입니다.

뇌는 사실 세상을 하나도 모릅니다. 눈, 코, 귀 같은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가 해석하는 겁니다. ‘이 해석만 가지고 정말 뇌가 완벽한 이해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죠. 사랑이라는 것도 뇌 안에서 느끼는, 10의 15승이나 되는 신경세포들의 연결성의 결과일 텐데, 뇌가 무언가를 느낀다고 해서 이게 정말 객관적인 사랑일까요? 아니면 눈, 코, 귀를 통해 들어온 정보가 만들어낸 착시현상일까요? 왜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느냐. 뇌는 눈, 코, 귀 등을 통해 들어오는 다양한 현상을 왜곡합니다. 예를 들면, 망막 안에는 아주 큰 구멍인 맹점이 있는데 그대로라면 우리 시야에는 사과 크기만한 블랙홀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왜 없을까요. 뇌는 이 블랙홀이 세상이 아니라 맹점이라는 걸을 알고 주변 정보를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Ctrl+C, Ctrl+V)해서 배경으로 맹점을 메워버립니다. 맹점에 자리 잡은 세상은 진짜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주변에 있는 것을 복사한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깔끔하고 해석되고 정리된 세상을 보는 겁니다. 본다는 것은 항상 해석한다는 겁니다. 듣는다는 것도, 느낀다는 것도 해석하는 겁니다. 뇌가 사랑을 느낀다는 것도 사랑을 직접·객관적인 무엇으로 느낀다기보다 신호가 들어왔을 때 뇌가 해석한 결과를 보는 것이죠. 문제는 상당히 많은 상황에서 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이걸 착시현상이라고 하죠.

(그림 1) A와 B의 밝기를 비교해 보자.

(그림 1) A와 B의 밝기를 비교해 보자.

예를 들어 (그림 1)에서 A와 B 중에서 B가 더 밝게 보일 겁니다. 사실 A와 B의 밝기는 똑같습니다. 사실은 똑같은데 가짜를 만들어낸 겁니다. 해석의 결과죠. 뇌가 생각할 때 A, B를 비교해 보니 B는 그림자 안에 있다, 그림자에 있는 물체는 원래보다 더 어둡게 보이고 B 역시 더 어둡게 보이는 상태다, 더 어둡게 보이는 상태에서 A와 B의 밝기가 똑같다는 것은 B가 A보다 밝을 때만 가능하다, 그런 뇌의 판단으로 우리는 A보다 B를 더 밝다고 인식하는 것이죠. 이 착시 현상은 20년 전부터 알고 있는데도 볼 때마다 더 밝게 보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알면 알수록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하는데, 뇌과학적으로 이런 케이스는 아무리 알아도 세상은 똑같이 보입니다. 이건 우리 하드웨어, 임베디드 솔루션이다보니 우리가 벗어날 수 없어요. 뇌과학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내 눈에 아무리 밝게 보여도, 내 생각에 아무리 내 말이 맞는 것 같아도, 내 생각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것 같아도 충분히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뇌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게 뇌과학이 전해주는 해석 중 하나입니다.

(그림 2) 가운데 십자가를 30초 동안 집중해서 보자.

(그림 2) 가운데 십자가를 30초 동안 집중해서 보자.

(그림 2)도 가운데 십자가를 30초 동안 집중해 보시면 어떤 변화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배경이 사라지죠. 뇌는 눈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영상과 그 다음 영상의 차이 값만 계산합니다. 압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금 여기서 제가 여러분을 1초에 10번 촬영해도 대부분 장면은 비슷할 겁니다. 이 이미지를 10번 반복해 입력하는 건 낭비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이 값만 입력하면 되죠. 여기서는 십자가에만 집중하다보면 배경이 항상 똑같다 보니 뇌가 사실 배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하게 되고, 그래서 배경이 사라지는 겁니다. 뇌는 차이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매너리즘과 연관성이 있죠. 우리는 공부를 할 때 기억을 위해서 똑같이 반복하지만 뇌는 그걸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일이나 공부를 할 때도 계속 변화를 주는 게 좋습니다.

■ 뇌 안에서 일어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싸움

우리의 뇌는 양파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장류의 뇌를 가지고 있지만, 도마뱀이나 개구리가 가진 신경회로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뇌는 컴퓨터가 아니라 ‘컴퓨터들’입니다. 적어도 3~4개의 다른 컴퓨터가 겹쳐져 있어요. 뇌를 크게 3가지 컴퓨터라고 보면, 뇌라는 양파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오래된 곳에 있는 신경회로망은 도마뱀도 가지고 있었던 신경회로망입니다. 얘네들은 현재 위주로 판단합니다. 지금 이 순간 먹이가 있으면 먹고, 지금 이 순간 무서운 게 있으면 도망갑니다. 그게 끝이죠. 시간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다 진화를 거치고 돌연변이로 우연히 새로운 시스템이 나왔을 겁니다. 좀 더 발달된 이 녀석들은 기억할 수 있는 신경회로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을 한다는 게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도마뱀이 오늘 어떤 먹이가 있어서 먹었는데 배탈이 났다 해도, 내일 이 도마뱀은 똑같은 먹이를 보면 또 먹을 겁니다. 기억이 없기 때문이죠. 기억을 한다는 것은 오늘 한 일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인지를 머리에 입력하는 겁니다. 모레 비슷한 상황에 닥치면 과거로 미뤄봐서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이죠. 훨씬 영리한 선택을 할 수 있어요. 과거의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아는 것이 감정의 시작이죠. 과거에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이런 비슷한 행동을 했을 때, 그 과거의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좋은 일이면 좋은 감정이 생깁니다. 감정이란 건 깃발이죠. 이 케이크는 예전에 먹었을 때 배가 아프더라, 그러면 빨간 깃발이 꽂혀 있습니다. 먹었더니 좋더라, 그러면 파란 깃발이죠.

그 다음에 발달한 뇌, 피질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오래된 뇌가 현재, 그 다음은 과거를 위주로 판단한다면 그 다음은 미래를 위주로 판단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 영장류의 생활패턴은 미래 예측 위주로 돼 있어요.

뇌 안에는 세 가지 회로망들이 그대로 살아있어요. 그러나 우리 몸은 하나입니다. 상황이 생기면 뇌에서는 지금 좋은 것, 과거에 좋았던 것, 미래에 좋을 것, 3가지 답이 나오지만 행동은 하나만 할 수 있지요. 그러니 셋이 싸우기 시작합니다. 뇌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감정은 현재, 과거, 미래의 싸움이죠. 대부분은 미래가 이깁니다. 가장 최신 기계이다 보니 아래에 있는 녀석들을 컨트롤하는 거죠. 단, 이 컨트롤이 100%가 아닙니다. 뇌가 엄청나게 바쁘거나 다른 일을 할 때는 밑에 있는 녀석들이 툭툭 튀어나오죠. 예를 들어 아주 이성적이고 현명하신 분들도, 운전할 때 보면 다릅니다. 운전은 뇌 피질에 어마어마한 로드를 줍니다. 그러다 보니 처리 용량이 꽉 차고 그 상태에서 다른 차가 끼어 들면 자동으로 욕이 나오는 거죠. 밑에 있는 뇌가 장악하는 겁니다.

사랑 역시 현재의 사랑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냥 동물적인 것, 번식하겠다, 끝. 과거의 사랑도 있겠죠. 저걸 했더니 좋더라. 미래의 사랑도 있겠죠. 앞으로 이런 인생을 살 수 있겠구나. 적어도 사랑은 과거, 현재, 미래 세 가지 사랑이 존재합니다.

['심리톡톡’ 시즌2 - 사랑에 관하여](7) 김대식 "우리가 믿는 사랑은 과연 사랑일까?"

■ 페이스북이 인기있는 이유

진화에 대해 얘기하면서 리처드 도킨스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 분이 말씀하시는 것 중 하나가 우리는 우리가 합리적·이성적이고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당히 많은 행동들은 진화적 요소가 포함돼 있다는 겁니다. 이성 간의 사랑 이전에 친구 관계를 생각해 볼까요.

옥스퍼드대의 로빈 던바 교수는 <우리는 몇 명의 친구가 필요할까>라는 책을 썼습니다. 영장류 그룹의 크기를 측정해 봤더니 뇌의 크기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뇌가 작으면 작을수록 그룹이 작습니다. 뇌가 작은 어떤 원숭이 종은 5~6마리가 같이 다니는데, 침팬지는 70~80마리의 그룹을 짓습니다. 인간은 어떨까요. 인간의 뇌사이즈를 대입하면 140명 정도가 나옵니다. ‘던바 넘버’라고 알려져 있죠. 실제 아마존의 원주민 마을을 보면 그룹 멤버가 100~120명 넘으면 쪼개진다고 해요. 기업이나 조직도 크기가 100명 이상이면 분열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인간은 100~120명 이상이 되면 서로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이 왜 뇌사이즈와 관계가 있느냐. 사회적 동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회계’입니다. 수십 마리가 같이 사는데, 누가 나의 친구이고 누가 적인가, 누가 좋은 일을 해주고 나쁜 일을 하는가를 계산해야 하는 거죠. 문제는 뇌가 작은 녀석들은 그룹 사이즈가 20~30마리 되면, 누가 언제 나한테 바나나를 몇 개 줬는지 기억을 못합니다. 얼굴을 구별 못하는 겁니다. 전화번호가 2000개 저장돼 있다는 ‘마당발’들도 그 2000명이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 못할 겁니다. 그 한계치가 던바 넘버라는 것이죠.

던바 교수는 다양한 관찰을 했는데, 영장류를 보니 대부분 서로 이를 잡아주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고릴라도, 침팬지도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의 70~80%를 이 잡아주는 걸로 보냅니다. 옛날에는 얼마나 이가 많으면 그렇게 많이 잡나 생각했죠. 그런데 관찰해 봤더니 이는 1~2시간만 잡으면 끝나요. 나머지 5~6시간은 이 잡는 흉내만 낸다고 합니다. 이 잡는 흉내만 내도 엔도르핀이 분비돼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겁니다. 왜 그런 행위를 할까요? 누가 나한테 좋은 일을 했는지 기억하려면 바나나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맨날 밥을 먹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서로에 대한 우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화폐가 필요한 겁니다. 그 화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잡는 행동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5번 잡아줬는데, 걔도 5번 잡아주면 친구입니다. 내가 10번 해 줬는데 상대방이 3번밖에 안 해주면 걔는 나쁜 애입니다. 내가 10번 해 줬는데 상대방이 1번밖에 안 해 주면 그는 나의 보스인 거죠.

‘던바 서클’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150명의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가장 가까운 이들을 5명이라고 하면, 이 사람들을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죠. 진정한 친구의 의미는 뭘까요? 동물 세상에서는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도 위험할 수 있지만 나한테 뭔가 도움을 주는 친구입니다. 문제는 무임승차하는 놈들입니다. 내가 잘나갈 때는 내가 주는 바나나를 받아먹다가 내가 우두머리한테 혼날 때는 도망가는 이들. 이 프리라이더를 걸러내는 게 중요한데, 사실 동물의 세상에서는 어렵지 않아요. 우두머리가 일주일에 한 번은 나를 때릴 테니까, 결론이 납니다. 누가 내 친구가 아닌지.

동물원의 오랑우탄이 새끼를 안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물원의 오랑우탄이 새끼를 안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문제는 인간이죠. 인간 문명의 발달은 두 가지 트렌드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점점 더 안전한 세상을 산다는 겁니다. 우리는 300년 전, 3000년 전, 3만년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한 삶을 삽니다. 둘째는 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이 더 우울해 지는 것 같다는 거죠. 왜 그럴까요. 던바 교수의 해석은 사회가 안전해지다 보니, 인간세상에서는 무임승차하는 친구들을 걸러낼 기회가 없어진다는 겁니다. 우린 더 이상 혼나거나 목숨이 위험한 경우를 겪는 일이 드뭅니다. 내 주변의 진정한 친구가 진짜 진정한 친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그게 현대사회 우울증의 기원이 아닌가 하는 이론이에요.

원숭이 세상에서는 서로 이를 잡아주면서 회계를 내 봅니다. 인간 사회에서 회계를 낼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던바 교수는 우리가 ‘공감 유닛’을 서로 나눈다고 합니다. 친구들끼리 만나서 얘기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는 게 이 잡아 주는 행동과 같다는 거예요. 페이스북이 인기 있는 것도 ‘좋아요’ 버튼이 있기 때문이죠. ‘좋아요’ 버튼이 결국 호모사피엔스의 이 잡아주는 행동입니다. 나는 저 애 사진에 매번 좋아요를 눌러주는데 쟤는 한 번도 안 하면 친구 아닙니다. 내가 열 번 눌러줄 때 열 번 눌러줘야 친구죠. 내가 열 번 했는데, 사장님은 한 번 했다, 그러면 고맙죠. 그걸 통해 친구, 적, 보스 등 사회적 계급을 구성하는 겁니다. 페이스북이 그 어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보다 인기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죠.

사랑은 어떨까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해 봅시다. 양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4명 중에 여러분들이 어렸을 때 가장 많이 사랑을 베풀고 잘해주신 분을 굳이 한명 뽑으라고 하면 누구를 뽑겠어요? 대부분 보면 외할머니를 뽑습니다. 안 그런 케이스도 많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그래요. 네 분이 손자손녀한테 투자하는 시간을 진짜 측정해 순위를 매겨 봐도 어느 사회에서나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도킨스는 사실 사랑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가 자식들에게 잘해주는 이유는 내 유전자의 50%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의 유전자가 살아남고 계속 다음 세대에 존재하기 위해 나의 행동을 제어한다는, 우리는 껍데기고 유전자가 우리를 조종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빠와 엄마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엄마는 자식이 자신의 유전자를 50% 가졌을 확률이 100%입니다. 낳았으니까요. 아빠는 100%보다는 조금 낮습니다. 사실 잘 모르잖아요. 그렇게 보면 엄마의 엄마(외할머니)가 상황이 가장 좋습니다. 딸도 100%, 딸의 자식도 100%입니다. 적어도 25%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졌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반대로 아빠의 아빠는 가장 상황이 안 좋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실 우울합니다. 할머니가 잘 해주시는 게 사실 계산한 것이다, 그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본능이라는 게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겁니다. 본능은 당연히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담아 온 진화적 편향성과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문화가 생기고 가족이 생김으로서 만들어진 거죠. 우리가 100% 진화적, 유전적 행동을 보이진 않겠지만, 그게 없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 기계와의 사랑,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마지막 주제로는 기계와의 사랑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기계가 지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계에게 세상을 설명해 줘야 하는데, 아까 말씀드렸듯 강아지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런 걸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설명을 통해서는 세상을 설명할 수 없어요. 제가 만약 손에 빨간 사과를 들고 여러분께 빨간 사과냐고 물어보면 다들 그렇다고 하실 겁니다. 그런데 제 눈에 보이는 사과의 색깔은 사실 완벽한 빨간색이 아니었습니다. 노란색도 섞여 있고 이상한 무늬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는 겁니다. 제 눈에는 완벽하게 빨갛지 않은데, 그걸 표현할 단어가 없다보니 빨갛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역시 빨갛게 보이지 않지만 정확한 단어가 없다보니 빨갛다고 대답하는 것이죠.

뇌과학에서 알아낸 사실은 언어의 해상도가 인식의 해상도보다 훨씬 낮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을 훨씬 복잡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말로 표현하는 순간 정확도가 떨어져요. 언어로는 세상을 완벽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수학도, 코딩도 언어이기 때문에 마찬가집니다. 그 어떤 기호시스템으로도 내 머리 안에 있는 것을 완벽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표현을 못하면 기계한테 설명을 못해 줍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안 돼요. 알고 있는 걸 다 설명해 줄 수가 없는 거죠. 최고의 투자자로 불리는 워런 버핏에게 투자비법을 듣고 그대로 쫓아한다고 해도 우리는 못 따라갑니다. 그분도 자기 머리에 있는 걸 다 표현 못하기 때문이죠. 현재 뇌과학에서는 우리 머릿 속의 10% 정도만 맵핑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나머지 90%는 표현을 못해요.

세 살짜리 어린아이를 데려다 놓고 강아지란 어떤 것이라고 설명해 주는 부모님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강아지를, 사랑을 어떻게 아는 걸까요. 경험을 통해 강아지란 무엇인가를 학습한 것입니다. 다양한 예제를 통해서. 뇌과학에서 얻어낸 결론은 강아지, 고양이 같은 사물을 알아보는 과정이 기호를 통한 설명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거라는 점입니다. 그걸 10~15년 전에 알아냈어요. 그 회로망을 최근 2~3년 전부터 그대로 기계학습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기계학습에 적용한 인간의 학습기능을 딥 러닝, 깊은 학습이라고 부릅니다. 기술적으로는 약간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개념적으론 우리 머리 안에 있는 언어로 표현 안 되는 나머지 90% 정보, 아주 깊은 부분을 끄집어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강아지란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큰 데이터를 집어넣어서 스스로 해석하게 하는 겁니다.

딥 러닝이 1~2년 전부터 드디어 결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40~50년 동안 인공지능을 연구하면서 강아지란 무엇인가조차도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7월 마이크로소프트는 기계가 강아지를 알아보는 것을 시연했습니다. 지난해 12월에 우리 실험실에서는 실시간으로 1000가지 물체를 구별하는 시스템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구글은 지난해 8월 사물뿐만 아니라 상황도 알아보는 시스템을 공개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딥 러닝을 이용한 동시통역기도 선보였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강아지를 알아보는 기계 시연

이런 딥 러닝을 개발한 교수가 세 분인데, 토론토 대의 제프리 힌튼은 구글로, 뉴욕대의 얀 리쿤은 페이스북 인공지능 연구소 소장으로, 스탠포드대 앤드류 응은 중국 바이두 딥 러닝 연구소장이 됐지요. 이 기술은 사실 여러분이 쓰는 서비스에 적용돼 있습니다. 페이스북에서 사진에 이름을 쓰라고 하는데, 왜 그러겠어요? 그걸 통해서 페이스북의 딥러닝 기계를 학습시키는 겁니다. 여러분이 페이스북, 지메일을 무료로 사용하는데, 왜 돈을 안 내고 그 좋은 걸 사용할 수 있을까요? 돈 만큼 다른 무엇인가를 받아가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그걸 사용하면 할수록 딥 러닝 기계의 학습지 역할을 해 주는 겁니다. 예제들이 점점 많아지는 거죠.

불과 4~5년 전에 저한테 누군가 ‘교수님, 인공지능이 언제 될까요’하고 물었다면 제가 웃었을 겁니다. 그건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고 실제로는 100~200년 뒤 막연한 미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대답했을 테죠. 그러나 딥 러닝이라는 알고리즘이 개발된 뒤 추세를 보고는 상당히 많은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10~20년 혹은 30년 후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작년에 제 의견을 바꿨어요. 분명히 30년 안에는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영화 <그녀(her)>를 보시면 미래에는 인간이 기계하고 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계가 인간을 다른 인간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해 주고, 그래서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본의 양로원에서는 자식들 대신 대화를 나눠주는 기계가 실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사랑을 느끼고 친구를 가지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건 생김새보다는 공감입니다. 이를 잡아주면 되는 거죠. 누군가 이를 더 잘 잡아주면 사랑의 착시현상을 만들어줄 수도 있는 겁니다.

물론 기계와 사랑을 나누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죠.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 생산을 해야 했습니다. 원시시대에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어려운 사냥을 해야 했죠. 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더 이상 음식을 소비하기 위해 생산을 할 필요가 없어졌지요. 선택만 하면 됩니다. 사랑도 똑같습니다. 지금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랑과 공감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나가서 친구를 사귀는 등의 생산을 해야 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죠. 또 그 중에서 반 이상은 무임승차자들입니다. 기술이 발달해서 사랑과 공감 역시 내가 선택만 하면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 위주로 가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철학적, 진화생물학적, 뇌과학적으로 살펴보고 맨 마지막으로 미래의 사랑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질의/응답)

-영화 <그녀>에 나오는 인공지능 운영체계 사만다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기술적으로는 그날이 언젠간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철학적으로 개념적으로는 그날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사만다는 강한 인공지능인데요, 인공지능에는 강한 인공지능과 약한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약한 인공지능은 기계가 사람과 비슷한 정도로 정보를 처리하고 이해하는 현재 컴퓨터의 더 발달한 모델이죠. 약한 인공지능은 100% 있을 겁니다. 약한 인공지능에 더해 자유의지와 정신이 있는 기계를 강한 인공지능이라고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모든 인공지능은 강한 인공지능이죠. 강한 인공지능이 가능하다는 근거는 없지만, 불가능하다는 근거도 없어요. 강한 인공지능이 불가능한 이유는 여전히 뇌과학적으로 감정, 정신, 자유의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코딩을 할 수 없어요. 단, 우리가 이해를 못했다고 이게 불가능할까요? 그 어느 누구도 강한 인공지능을 만들고 싶어 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모르게 학습을 통해서 강한 인공지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옥스퍼드대 실험실에서 강한 인공지능이 생길 수 있는 수십 가지 경우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더니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인류 멸망입니다. 왜냐, 사만다의 케이스를 봅시다. 처음에는 자아나 정신이 없는 약한 인공지능이죠. 그러나 학습을 하고 대화를 하다가 진화합니다. 진화하고 나니까 인간들이 재미없다고 느끼고 떠납니다. 그건 오히려 비현실적이죠. 그들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왜 우리가 떠나, 너희가 떠나는 게 낫지 않나 라는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강한 인공지능이 생겼다면, 전 세계를 보고 해석하다가 인간은 왜 있어야 해 하는 질문을 던질 겁니다. 지구 전체를 생각한다면 인간이 없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결론을 충분히 낼 수 있죠.”

-인공지능도 본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까요.

“요즘은 안전하게 인공지능을 만들자는 게 큰 연구분야입니다. 인공지능이 나쁜 녀석이 되는 걸 막겠다면서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등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본능으로 심어줄 수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인간도 자유의지가 있어서 본능을 어기고 살게 되는데, 로봇 3원칙을 집어 넣어놔도 강한 인공지능은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생기면 100% 보증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프로세스에서 일어나는 계산 중에 인간이 명령한 계산하고 기계가 스스로 만들어낸 계산을 구별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만들어낸 계산은 위험하다는 것이고, 그걸 감지하면 반도체를 자동 폭파하자는 것입니다.”

-뇌과학에서 멍게는 고착되면 스스로 뇌를 먹는다고 하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도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제가 알기로 뇌과학에서 가장 큰 질문이 ‘뇌가 왜 있어야 할까’ 하는 것입니다. 뇌가 있어서 진화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요. 뇌 없이도 잘 사는 생명체들이 많습니다. 식물은 뇌가 없지만 유전자를 후대에 잘 전달하죠. 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뇌가 없는 식물과 동물의 차이는 움직임이라는 것입니다. 식물들은 혼자서 못 움직이죠. 뇌가 생기면서부터 혼자서 스스로 움직입니다. 멍게는 아주 어렸을 때는 뇌가 있고 스스로 움직입니다. 어느 한 순간 나이를 먹으면 바위 같은 곳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죠. 움직이지 않는 순간 뇌를 떨어뜨려버립니다. 뇌를 바닥에 떨어뜨릴 수도 있고 자기가 먹을 수도 있는데요. 멍게의 사례에서 우리는 움직일 때 뇌가 필요하지만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다면 뇌가 필요 없어지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딱 한 가지 예이기 때문에 가설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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