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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7인의 민족 지도자들이 꿈꿨던 대한민국과 ‘역사의 가능성’

2015.08.14 21:19 입력 2015.08.14 22:22 수정

▲ 해방 후 3년…조한성 지음 | 생각정원 | 360쪽 | 1만6000원

[책과 삶]해방 후, 7인의 민족 지도자들이 꿈꿨던 대한민국과 ‘역사의 가능성’

만약 좌우합작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여운형이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중경임시정부의 법통으로 신민주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던 김구가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역사에서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해방 후 3년간 우리가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고 역사의 가능성을 돌이켜본다.

1945년 8월15일 해방됐지만 그것이 곧 독립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민족의 힘만으로 이뤄진 해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은 ‘민족국가 수립’과 ‘사회혁명 완수’라는 이중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책은 해방부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까지 3년간 분할 점령된 한반도에서 민족의 독립을 완성하고 민주주의 민족통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싸웠던 7명의 민족 지도자 이야기를 다룬다. 여운형, 박헌영, 송진우, 김일성, 이승만, 김구, 김규식이 그들이다.

그들은 동일한 시대를 살았지만 다른 꿈을 꿨다.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저자는 각 인물이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어떤 행적을 보였고 그 안에서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것이 역사를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지 인물별로 재구성했다. 이들은 각각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정치 성향이 달랐고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모습도 다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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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창했던 중도좌파의 여운형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부터 4당회담, 좌우합작위원회 등을 통해 좌우의 역량을 모으고자 했다. 중도우파의 김규식도 남북합작·좌우합작을 통해 민족통일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다. 우익 중심의 노선을 걸었지만 중경임시정부의 법통으로 신민주국가를 수립하고자 했던 김구 역시 한반도의 분단을 막고 민족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애썼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이었다.

그러나 좌익의 박헌영, 김일성과 우익의 송진우, 이승만은 달랐다.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을 통해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를 동시에 이루려했던 박헌영과 김일성은 인민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고자 했지만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민족’보다 ‘혁명’을 더 중시했다. 김일성은 결국 ‘혁명’을 명분으로 분단의 길을 갔다. 우익의 지도자였던 송진우와 이승만도 민중을 위한 자유민주주의, 사회주의적 경제민주주의를 주창했지만 송진우의 한민당은 ‘미군정의 여당’으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결정했고 이승만은 남한 단독정부의 수반이 되기 위해 중경임시정부와의 통합마저 밀어냈다. 결국 그들이 중시한 것은 ‘권력’이었다.

이렇게 걸출한 인물들이 국가상에 대한 합의를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간의 갈등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방 후 3년은 세계자본주의와 세계공산주의의 대립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미군정은 남한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부를 갖고 싶어 했고 소련은 북한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미·소가 만든 세계 질서의 힘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해방 후 3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결정론적 시각”이라며 “이때 역사는 우리 민족이 미·소가 만든 세계 질서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우리 선택에 따라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변화를 일으키면서 하나하나 만들어간 역사”라고 말했다.

역사는 결국 그들이 실패했다고 결론 낼지 모르지만 저자의 시각으로 부활시킨 그들의 꿈은 뭉클하다. 저자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 권력, 그리고 혁명. 그것은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강렬한 열망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그들의 꿈이 여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남북한은 분단돼 있고 좌우는 갈등하고 있으며 아직도 미국, 중국 등의 강대국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지금 우리의 선택은 어떤 역사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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