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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일본 명절에 기미가요 연주했다

2015.08.31 06:00 입력 2015.08.31 14:40 수정
문학수 선임기자

새 ‘친일 행적’ 기록한 문건 발견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1906~1965)의 친일 행적을 기록한 새로운 문건이 발견됐다.

1941년 일본의 명절인 명치절(11월3일)에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연주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동안 작곡가 겸 지휘자인 안익태의 친일 관련 행적들은 수차례 논란을 불러왔으나, 기미가요 연주 사실은 처음 드러났다.

지휘하는 안익태.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휘하는 안익태. 경향신문 자료사진

음악애호가인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최근 일본인 지인 등과 함께 안익태의 친일 행적이 담긴 문건을 발굴했다”며 30일 경향신문에 공개했다.

이 교수가 공개한 문건은 안익태의 후원자로 알려진 일본 외교관 에하라 고이치가 1952년 일본의 음악잡지 ‘레코드 예술’에 기고한 ‘안익태군의 편모(片貌)’라는 제목의 글이다.

에하라는 이 기고문에서 “1942년 가을, 나는 공무로 루마니아 부카레스크에 있었다”며 “명치절 아침 일본 공사관 의식에 참여했다. 그곳에 기미가요 제창 때 피아노를 연주하는 흰 넥타이를 맨 청년이 있었다. 마르고 큰 키에 호감을 갖게 하는 인상이었다. 식후에 그가 당시 유럽에 유학 중인 지휘자 겸 작곡가 안익태군이라고 소개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문건을 분석한 이 교수는 “1942년이라는 연도는 에하라의 착오이거나 오타로 보인다”며 “이 글의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자면 1941년이 맞다”고 밝혔다. 에하라가 같은 글에서 “독일·소련전쟁이 시작되던 해부터 그와 함께 살았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독소전쟁은 1941년 시작되었으며, 1942년은 안익태가 이미 베를린의 에하라 집에서 함께 기거했던 시기다. 안익태가 당시 연주했던 기미가요는 일본 ‘천황’의 통치가 천년만년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노래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에하라 고이치가 1952년 <레코드 예술>에 기고한 ‘안익태군의 편모’.

에하라 고이치가 1952년 <레코드 예술>에 기고한 ‘안익태군의 편모’.

글을 쓴 에하라는 안익태의 친일 행적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도쿄제국대 법대를 나와 베를린 주재 만주국 공사관의 참사관으로 일했다. 일본이 세운 괴뢰정부인 만주국의 당시 공사관에는 뤼이웬이라는 만주 출신 공사가 형식상 부임해 있었고, 독일에서 일본 외교의 실세로 활동한 인물은 에하라인 것으로 학계는 평가하고 있다. 에하라는 또 안익태가 만주국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작곡한 <오케스트라와 혼성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국’>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이 곡 4악장은 만주국의 건국 이념인 오족협화(五族協和, 일본인과 중국 한족·조선인·만주족·몽골족의 협동과 화합)를 찬양하고 있다. 안익태는 이 곡을 1942년 9월 베를린에서 지휘했고, 이는 그의 친일 행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이 곡은 애국가의 모태인 <한국 환상곡>에 등장하는 선율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애국가 논란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안익태군의 편모’에는 또 안익태가 기미가요를 연주한 날 오후, 또 다른 연주회에서 일본의 궁중음악인 <에텐라쿠(越天樂)>를 지휘했다는 내용도 기록돼 있다. “조선에서 태어난 안군이 월천악을 교향곡화한 것에 대해 약간 기이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 나도 모르게 ‘흠…’하며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안익태의 생활 태도와 남다른 수완에 대한 평가도 등장한다. “안군은 담배도 술도 하지 않았으며, 여성과의 교제도 삼가고, 먹고 자는 것 빼고는 오로지 음악에 빠져 생활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작곡을 시도했다. (…) 안군은 당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범접하기 어려운 노대가의 환심을 산 그의 수완에 우리 모두 놀랐다. 하지만 그것은 수완이라기보다 그의 천성이자 타고난 능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음악계에서는 그동안 나치 시절 제국음악원 총재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안익태의 관계를 에하라의 주선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나 이 교수는 “안익태 본인의 남다른 수완으로 슈트라우스와 관계를 맺었음을 에하라가 증언하고 있다”며 “안익태와 슈트라우스, 나아가 안익태와 나치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밀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안익태는 제국음악원 회원증도 받았는데, 이는 나치의 철저한 사상 검증을 거쳐야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음악학자이자 <망명음악 나치음악> <잃어버린 시간 1938~1944>의 저자인 이경분씨는 “1944년 독일군 위문공연을 위해 나치가 초청한 음악가 명단에 일본인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 각 한 명과 안익태가 포함돼 있다”며 “안익태의 나치 협력에 대해선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에하라 고이치의 '안익태군의 편모(片貌)'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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