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는 최악의 자충수이자 보수 최대의 위기”

2015.10.24 12:24 입력 2015.10.24 13:39 수정

합리적 보수 학자로 불리는 이상돈·윤평중 교수의 진단

2014년 1월. 임기 1년을 지나는 대통령의 지지율은 높았다. 새누리당은 155석으로 제1 정당의 입지가 확고했다. 보수의 전성시대처럼 보였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학자로 합리적 보수, 중도 보수로 불리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와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당시 <주간경향>이 마련한 특집대담에서 “이대로는 보수에 가망이 없다”고 진단했다. 안보정치와 이념논쟁, 역사전쟁이 강화되면서 보수가 극우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돈 교수는 “보수와 극우의 차이는 극우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목소리가 나올 수 없다”고 보수의 미래를 전망했다. 윤평중 교수는 “극우가 실권을 장악하면 정치 자체가 전쟁화된다”며 한국 보수의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고 말했다.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기시감이 든다”면서 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정치인 박근혜의 “최악의 자충수”이자 “한국 보수 최대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왼쪽)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대담을 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윤평중 한신대 교수(왼쪽)와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대담을 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으로 사회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돈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것은 표피적인 문제다. 이 문제의 본질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기부터 역사문제, 이념 갈등이 되풀이됐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기 중 터질 시한폭탄이었던 셈이다. 과거 박 대통령이 은둔생활을 할 때 인터뷰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때 정치인 박근혜와 2004년 당대표 시절부터 2012년 대통령 당선까지 9년 동안의 정치인 박근혜는 다른 사람이다. 이 9년 동안은 그야말로 이성이 감성을 억누른 시기였다. 이 시기에 박 대통령은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논란을 해소하려고 굉장히 애썼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도 그랬고, 2012년 대선에서도 부친과 관련된 과거사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나. 그래도 그 기간에는 이성으로 억누르면서 이 문제를 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선을 눈앞에 둔 2012년 9월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이성이 무너졌다. 당시 인혁당 사건을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발언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선거에서 떨어질 뻔했다. 그때 든 생각이 아무래도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문제가 임기 내내 상당히 박 대통령을 옥죌 것 같다는 것이었다. 정부 운영에서도 상당히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봤다.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부터 다 그랬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모자라 국사교과서 국정화까지 강행하니 역사의 수렁에 스스로 빠져버린 형국이 됐다. 부친의 후광 때문에 대통령이 된 자식이 부친의 과오를 인정하면 그 모든 것이 그냥 과거로 묻히게 된다. 문제가 해소되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와 전쟁을 한다.”

윤평중 “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근본적으로 정치인 박근혜가 평생 가져온 역사관의 발현이다. 이 교수님은 이성이 감성을 억눌렀다고 표현하셨는데, 이것도 상당히 호의적인 표현이라고 본다. 지금에 와서 복기를 해보면 대통령이 되기까지 9년간의 변화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권력을 잡기 위한 전략적 변화였을 뿐이다. 정치인 박근혜가 한국 현대사를 보는 관점은 평생 동안 축적해온 것으로, 이번 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에서 단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박 대통령의 시각에서는 이게 한국 현대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작업이다. 동시에 한국 현대사에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해원(解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최대의 악수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는 민생문제가 도외시될 것이다. 여러 가지 중대한 국가적 현안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제분야 의제들이다. 경제살리기, 일자리 만들기, 노인문제, 청년문제 등 산적한 경제 현안이 완전히 묻혀버릴 것이다. 당연히 국민들의 민생은 완전히 뒷전으로 물러나버린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대통령이 필생의 소명으로 강행한다고 해도 저술과정이나 편찬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가능성은 없다. 온갖 사회적 갈등과 파열음이 양산될 것은 자명하다. 그야말로 블랙홀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긴급한 민생과 관련된 현안들을 빨아들이게 될 것이다. 둘째, 나라가 둘로 쪼개지게 될 것이다. 통치자로서 대통령이 역사관의 차이를 선악의 문제로 치환시키고 있다.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일에 다름없다. 이것은 민주사회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길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악과 부정의로 규정되면 어떤 사람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사생결단으로 반응하게 된다. 두 세력 간 양보할 수 없는 승패가 나오지 않는 게임이 된다.”

“총선을 앞둔 보수층 결집 노림수라는 분석도 있다.”

이상돈 “아니다. 이건 새누리당이 절대적으로 지는 게임으로 갈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보수층 결집을 위해서 했다고 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 대통령 주변에 정무적 판단력이 있는 제대로 된 참모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일을 강행한 것은 현재 청와대에 정무기능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나아가서 국무총리든 부총리든 누구든지 간에 대통령에게 정상적인 조언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없고, 그러한 장치도 막혀버렸고, 일체 소통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능마비 정부다. 지금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젊은 세대들을 자극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반대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고등학생들이 촛불시위를 한다. 항구적으로 보면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에 북한에 강공세를 취해서 지지도가 오르고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피로감을 주다 보니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윤평중 “이 교수님 진단에 동의한다. 정무적 관점이 있었다면 일을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근거리에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엄청난 자충수다. 사실 사안이 이렇게 돌출하지 않았으면 새누리당의 압승이 분명히 보이지 않았나. 총선 승패는 수도권에서 향배가 갈릴 것인데, 민심과 가장 가까이 있는 새누리당 수도권 의원들이 동요하고 있다. 총선도 총선이지만 한국 보수는 지금 중대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마땅하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차기 대선에서 어렵다. 대선은 중도층을 누가 많이 잡느냐의 게임이다. 보수와 진보 양쪽 세력이 총동원되는 선거다. 52대 48로 승패가 갈린 지난 대선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대선 국면에서는 2~3%가 결과를 좌우한다. 2~3%의 핵심은 중도 온건층이다. 대통령의 이런 결정은 합리적인 중도층이나 온건층의 표심을 새누리당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하는 자충수다. 한국의 보수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하는 정치공학적 측면이다. 차기 대선까지 이 문제가 이어지게 되면 60대 이상 안보보수들이 결집하겠지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온건 중도층 표심을 대거 상실해 차기 대권을 잃을 위험성이 농후하다. 승산이 없는 게임을 시작했다.”

“보수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관점대로 기존 검인정 교과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나.”

이상돈 “피플스 히스토리(people‘s history)라고 하는데, 그 입장에서 보면 일반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본다. 문제는 이런 시각에서 6·25를 보게 되면, 예컨대 양민학살 같은 것도 똑같은 시각으로 보게 된다. 인민군에 의한 학살이나 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이나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남과 북을 도덕적 등가성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인지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이 실려 있었던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지적할 필요는 있는데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교과서 국정화라면 이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윤평중 “쓰인 내용 중 100% 동의하기 어려운, 기울어진 부분들이 문맥에 숨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컨대 해방 직후에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 사령관 포고문과 남한에 주둔한 미군 사령관의 포고문을 대비해 놓은 부분이 있다. 소련군은 선동선전에 능하기 때문에 ’붉은 군대는 조선 인민이 자유롭게 자주적인 국가를 세울 수 있도록 백방으로 돕겠다‘라는 식으로 말만 번드르르한 반면 미군은 건조하게 ’남한 민중은 생업에 전념화하면서 미군 당국의 권위와 법질서를 준수하라‘는 식으로 서술돼 있다. 양쪽을 비교하니 마치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대비 효과가 나온다. 그게 북한의 역사교과서에 나오는데, 한국의 검정교과서 중 몇 개가 그런 구도를 빌려 왔다. 이런 구도는 오해를 불러오는 민감한 지점이고 통치의 사실 관계도 맞지 않다. 하지만 만약에 검인정 교과서 몇몇 부분에 왜곡에 가깝고 균형 잡히지 않은 서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 시스템 자체가 그걸 여과시켜서 걸러낼 수 있다고 본다. 그게 민주다원사회 대한민국의 능력이다.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분들은 너무 예민한 냉전반공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이 사안을 키우고 있다.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상식을 갖춘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를 부정할 사람은 없다. 반면 북한은 완전히 실패한 체제다. 인민을 굶기고 탄압하는 체제를 찬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절대 대다수의 대한민국 시민은 표준적 역사관에 근거해 남과 북의 선명한 대비를 명백한 팩트로서 수용하고 있다. 만약 몇몇 국사교과서가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방식으로 쓰여져 있다면 그런 책들이 광범위하게 읽힐 리도 없고, 국사 팩트 시장에서 생존력을 가질 수도 없다.”

이상돈 “조선시대 왕도 사초는 건드릴 수 없었는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역사를 건드리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적도 있지만 과오가 점점 더 부각되는 것은 관점의 문제다.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계 역사학계의 흐름은 바뀌었다. 위대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에서 민중 중심의 역사 서술로 흐름이 바뀌었다. 이런 관점에서 집권자의 인권유린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에서 권력자인 자식이 부모의 공적을 내세우겠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 자식으로서 부친의 과오를 인정하면 부친의 공적도 자연스럽게 빛날 텐데, 그런 쪽으로 생각이 안 미치니까 할 말이 없다. 부친이나 조부의 친일 행적 의혹도 마찬가지다. 해방이 지나고 벌써 70년 지났는데 여전히 이런 논의가 지속되는 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제대로 연구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권자들에게 불편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1990년대 이후에나 근현대사를 재조명했기 때문에 친일문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이슈로 봐야 한다. 물론 부모의 친일문제를 자식에게 연좌하면 안 되는데, 당사자인 자식들이 부모를 옹호하니까 그게 본인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국정 교과서 강행으로 친일의혹을 부친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문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여권이 무모하게 전선을 키워서 불리하게 가고 있는 것 같다.”

윤평중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인문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의 연구방법론 및 연구 태도를 송두리째 무시하고 있다. 학자들은 고유의 학문방법론으로 평생에 걸쳐 연구를 해온 것이다. 그것이 축적되어서 지금의 학계가 형성되었다. 오랫동안 검증되고 축적된 주류 학설이라면 민주 다원사회에서는 인위적·인공적으로 폐지하는 게 불가능하다. 학설이 학문적 토론과 검증에 의해서 수정되는 게 민주사회다. 진시황도 분서갱유를 시도했지만 과거 왕조시대에도 불가능했던 허망한 짓이었다. 2015년판 분서갱유에 가깝다. 국사교과서에 검인정 제도를 도입한 지 10년이 지났다. 정부·여당의 논리라면 지금 20~30대가 좌편향된 국사교과서로 공부해 10대를 보낸 세대다. 만약 국사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면, 그 젊은층들이 자연스럽게 좌편향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번 DMZ 목함지뢰 사건 때도 그렇고, 천안함 폭침 때도 그렇고, 북한에 대한 청년층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다. 3대 세습을 비롯해서 북한 체제의 본질에 대해 비판적이며 군 자원입대도 늘어나고 있다. 20~30대의 보수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정부·여당은 좌편향된 교과서로 공부한 결과 20~30대 청년층들이 머리가 빨갛지는 않더라도 분홍색으로 물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의 청년층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정부·여당의 논리 자체가 한국 청년층의 북한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 의해서 부정당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 역사전쟁화되고 있는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굉장히 퇴행적이다. 미래로 가야 하는데 과거로 간다. 과거로 다시 가는 게임은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난전이다. 국력의 낭비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출구라도 만들어야 한다. 이 게임이 이렇게 가면 한국인 모두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내 제안은, 박근혜 대통령이 하겠다고 했으니까 이 정부에서 시작은 하되, 끝날 시점을 못 박지 말라는 것이다. ’2017년 3월까지‘라고 못 박지 말고 최소한 2개 정부를 통과할 수 있는 위원회를 만들든지, 시민사회의 의견을 결집하는 교과서위원회를 만들든지 하자는 것이다. 시작을 하되 끝날 시점을 못 박지 말고 진행을 하는 게 유일한 출구다. 그러나 지금 박 대통령의 단호한 태도를 보면 시민들의 삶을 생각해 그러한 출구를 채택할 가능성이 희박해 너무나 안타깝다.”

이상돈 “박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서 꺾이면 꺾이지 휘어질 사람이 아니다. 지금 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은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다. 대통령 본인의 아버지 문제로 보는 것이지 여기에 보수의 가치는 없다. 보수층에서는 6·25전쟁, 월남전에 참전한 세대들이 많다. 이 부분의 역사 서술에 대해서는 보수층이 가지고 있는 불만이 많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친일문제를 건드리고 있지 않나. 당 대표는 이걸 가지고 강공 드라이브를 공고히 하고 있고. 남이 알아줘야지 자식이 부모의 장점을 떠든다는 것은 사실 좀 웃기는 일이다. 이건 보수 대 진보 논리의 문제도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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