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원 기자 프랑스 파리를 가다

밤새 꺼지지 않는 촛불…“흔들릴지언정 침몰하지 않는다”

2015.11.16 23:07 입력 2015.11.16 23:57 수정

“우린 두렵지 않다”…파리 시민들 ‘분노 이긴 의연함’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어제와 같은 오늘’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400명 가까이 숨지고 다치게 만든 동시다발 테러 후 사흘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는 평온을 찾기 위해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긴장감은 가시지 않았지만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은 더욱 늘었다. 광장의 촛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삶은 계속될 것”이라며 서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가 받은 최악의 공격이라는 이번 사건 뒤 처음 맞는 월요일. 오전 8시 무렵, 시내 중심가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으로 통하는 지하철역에는 출근길 시민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안(47)은 초등학생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직장으로 간다고 했다. 학교는 정상적으로 문을 열었다. 안은 “두렵지만 삶은 계속될 것”이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b>총격 현장 ‘추모의 촛불’</b>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앞에서 15일 오전(현지시간) 한 시민이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며 촛불을 켜고 있다.

총격 현장 ‘추모의 촛불’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공연장 앞에서 15일 오전(현지시간) 한 시민이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며 촛불을 켜고 있다.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 자유의 여신상 앞에는 양초와 꽃들이 가득 쌓여 있다. 전날 밤보다 더 늘어난 듯하다. 전날 이 광장에서는 자정이 넘도록 젊은이들 수백명이 자리를 지켰다. 촛불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는다. 시민들이 오고 가면서 계속 불을 붙이기 때문이다. 바닥에는 분필로 적은 추모 메시지가 빼곡했다. 올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후 등장했던 ‘두렵지 않다’는 문구가 곳곳에서 보였다.
 
광장 한쪽에는 파리의 상징인 “흔들릴지언정 침몰하지 않는다(fluctuat nec mergitur)”는 라틴어 문구가 쓰인 패널이 세워져 있었다. 지하철역 광고판에는 누군가가 “인종주의에 맞서 단결하자, 국민전선(극우 정당)에 맞서 단결하자”고 써놓았다.
 
낮 12시가 되자 레퓌블리크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1000명은 넘어 보이는 인파가 집결해 1분 동안 추모식을 했다.

테러 현장과 가까운 데다 평소에도 집회의 메카인 광장이고, 공화국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다 보니 어느새 추모의 중심지가 된 듯했다.

오전 내내 흐리던 하늘에선 구름이 걷혔고, 햇살이 광장을 내리비췄다. 자유의 여신상은 마치 이 순간을 위해 누군가가 연출이라도 한 듯 햇살에 빛났다. 동상을 바라보고 선 이들은 일제히 1분 동안 묵념을 했고, 추모가 끝나자 함께 박수를 쳤다. 대학원생 플로리앙(24)에게 박수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이제 침묵은 끝났으며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모인 건 하나가 돼 테러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어제만 해도 무서워서 집에만 있었는데, 이제는 행동을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 나왔다”고 말했다.

테러범들이 총격을 가한 식당앞에 출입금지선이 쳐져 있다.  파리 | 남지원 기자

테러범들이 총격을 가한 식당앞에 출입금지선이 쳐져 있다. 파리 | 남지원 기자

두려움을 떨쳐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파리 시민들은 입을 모았다. 고등학생 에르완(14)은 중부 아프리카 카메룬 출신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다. 총격전 당시 에르완은 공연장 바로 옆 운동시설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경비원이 문을 닫아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막았고, 안에 있던 이들이 다 같이 모여서 작은 TV 화면으로 지켜봤다고 한다. 아직 10대 소년이지만 에르완은 “이럴 때일수록 학교에도 평소처럼 다니면서 일상을 살아야 프랑스가 강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테러 직후 추가 공격이 있을까봐 문을 닫았던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은 이날 오후 1시 다시 문을 열었다. 체육관과 공원도 모두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파리 증권거래소도 평소처럼 개장됐다. 항공과 철도와 선박도 평소처럼 다니지만 보안검색이 강화됐다.

총격전이 벌어진 프티캉보주 거리 부근에 사는 마리아(50)도 “나의 일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테러는 우리의 사랑과 평화를 깨뜨리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게 테러의 목적이니 거기 말려들어선 안된다.” 그는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곳에서 자란 이들이 테러범이 됐다는 것”이라면서 “그런 사람이 생기지 않게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지, 특정 커뮤니티에 책임을 돌려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마리아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극단주의자들이 폭력사태를 일으킬 때마다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은 모두 가슴을 졸여야 한다. 이스라엘 출신인 조나단(30)은 “이런 일에 익숙한데도 몹시 슬펐다”며 “프랑스와 유럽은 테러리즘에 더 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일로 무슬림과 유대인 공동체에 긴장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만난 레미(23)는 레바논계 아버지를 둔 이민 2세다. 랑스에 사는데 추모를 하러 파리에 왔다고 했다. 그는 레바논에도 가족이 있다. 파리 테러 전날 레바논 베이루트에서도 이슬람국가(IS)가 자폭테러를 저질러 44명이 숨졌지만, 파리 테러에 비하면 세계의 관심은 거의 없었다. 레미는 “미디어들이 파리에 비해 레바논에 관심을 덜 갖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고 했다.

시민들은 의연하려 애쓰지만 모든 것이 평소 같을 수는 없다. 시내에서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자주 보였다. 89명이 목숨을 잃은 바타클랑 공연장과 가까운 지하철 5호선 오베르캄프역은 완전히 폐쇄됐고 군인과 경찰들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었다. 바타클랑 근처에서 만난 스테판(62)은 “분쟁의 현장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면서 “지하철역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움츠리고 낯선 사람을 경계하게 된다”고 했다. 테러범들이 노린 것이 아마도 이런 공포와 불안감이었을 것이다. 총기난사가 벌어진 퐁텐오루아 거리의 이탈리아 식당 카사노스트라와 본비에르 카페 유리창에는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카사노스트라의 창가에는 와인 잔이 그대로 놓여 있고, 의자 위에 누군가 벗어두고 간 외투도 그대로였다.

경찰은 테러 용의자 색출작전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테러범들의 신원이 속속 확인되고, 용의자들이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체포되면서 수사가 활기를 띠는 듯했다. 현지 방송들에 따르면 경찰은 16일 새벽까지 파리 외곽 보비니와 벨기에 접경도시 죄몽, 중남부 리옹과 툴루즈 등에서 일제히 테러 용의자들의 은신처를 덮쳤다고 한다.

마뉘엘 발스 총리는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밤새 국경지대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에서 160건 이상 수색과 검거작전을 펼쳤다”고 말했다. 몇 군데에선 ‘전쟁무기’ 수준의 무기들이 나왔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면서 발스 총리는 “며칠 혹은 몇 주 안에 테러 공격이 더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시리아 IS 지역을 대대적으로 공습하면서 강력한 대응을 선언했다. 이 끔찍한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 속에, 파리 사람들이 다시 안정과 평화로 돌아갈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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