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읽음
여적

스페인의 ‘뚱보 복권’

2015.12.24 20:41 입력 2015.12.24 23:24 수정

스페인의 한 해안도시 주민 1600명이 한꺼번에 1등 복권에 당첨돼 한 사람당 5억원씩 나눠 가지게 됐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성탄절 때만 발행되는 ‘엘 고르도(El Gordo·뚱보)’ 복권에 당첨된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주 로케타스 데 마르 시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복권을 산 주민들은 총 8000억원에 달하는 크리스마스 선물 폭탄을 받은 셈이다. 더구나 인구 9만명인 이 도시의 실업률은 스페인 평균 21%보다 높은 31%여서 기쁨이 배가되고 있다고 한다.

복권 당첨을 둘러싸고 울고 웃는 풍경도 연출됐다. 이번 1등 복권 중 절반은 인근의 한 고등학교가 수학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구입했다가 주민들에게 되판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긴 복권판매소 주인 자신은 정작 복권을 구입하지 않아 산타클로스 처지가 되었다. 수사당국은 복권을 통해 검은돈을 처리하는 ‘복권 세탁’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뚱보 복권의 가장 큰 특징은 당첨금 액수가 세계 최대이고 당첨자가 많다는 점이다. 뚱보 복권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고유번호를 가진 160장을 한 묶음으로 파는데 비싸서 이를 나눠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마을이나 직장 사람들이 단체로 복권에 당첨되는 일이 드물지 않아 나눔의 정신을 구현하는 복권이라고 할 만하다. 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복권을 사는 국민은 무려 90%에 이른다. 지역별로 다른 번호를 팔기 때문에 사고 싶은 번호가 있으면 그 지역으로 가야 한다.

지난달에는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5명의 친구가 1억600만달러(약 1200억원)의 복권에 당첨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매주 각각 복권을 산 뒤 누구든 당첨되면 돈을 나눠 갖기로 약속했는데 10년 만에 한 명이 잭팟을 터뜨렸다. 이쯤되면 당첨금 배분을 둘러싼 분쟁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진부한 상상을 비웃듯 이들은 돈을 나눠 가졌다. 자신이 당첨됐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알린 사람은 리무진 운전기사였고, 나머지 4명의 직업도 운전기사와 가정부, 보육교사, 구멍가게 주인이었다. 욕심을 낼 법한 상황에서 지킨 약속이라 더욱 돋보였다. 나눔은 언제나 훈훈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