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④‘찍퇴’와 ‘사축’이 말한다]‘사람이 미래’라더니…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신입도 ‘미래 깜깜’

2016.01.18 19:06 입력 2016.02.02 18:41 수정

두산인프라코어 ‘찍퇴’ 대상자 5인을 만나다

“2015년은 전쟁이었어요. 한 차례 폭격기가 쓸고 지나간 느낌이죠. 새해요? 이젠 폭격기가 아니라 핵폭탄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웃으면서 견디려고요. 우리가 웃지 않았으면 다 희망퇴직 쓰고 나갔을 거예요, 아마.”

지난해 12월22일 오후 6시 인천의 한 카페. 두산인프라코어 생산직 직원 김동현씨(20대·가명)는 한 달간 ‘찍퇴’(찍어서 퇴직) 앞에서 맘 졸이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한 달 전 회사에서 통지한 21명의 대기발령 명단에 들어갔다. 희망퇴직에 불응한 게 이유였다. 희망퇴직은 ‘원해서 회사를 나간다’는 뜻이다. 하지만 회사는 거부하는 직원들을 작업장에서 빼 대기발령을 내렸다.

일러스트 | 김번 작가

일러스트 | 김번 작가

회사는 교육이라면서 A4용지 3~5장 분량의 회고록을 쓰거나 명상을 하게 했다. 교육 중엔 휴대폰을 압수하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게 했다. 경조사 외엔 연차휴가도 금지했다. “인권 침해”라는 반발이 커질 즈음, 밖에서는 1~2년차 신입사원과 23세 여직원까지 희망퇴직 명단에 들어간 게 불거졌다. 여론이 들끓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기업에서 정리해고를 당해 거리로 나앉았던 아버지들의 모습이 재현된 것이다.

“처음엔 소문이었어요.”

지난해 초 직원들 사이에 ‘회사가 정리해고 절차를 밟을 것 같다’ ‘이미 노동청에도 신고를 했다’ ‘곧 매각이 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설마” 하면서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소문은 곧 현실이 됐다. 2월에 희망퇴직이 시작됐다. 말이 개별 면담이지, ‘너 나가지 않을래’라는 회유와 압박이었다.

“지금 희망퇴직 신청하면 위로금이라도 받지, 나중엔 그것도 없을 거야. 잘 생각해봐요.”

“내년에 회사 사정이 안 좋을 것 같고, 지금 희망퇴직하는 게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더 이득일 거예요.”

희망퇴직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두 번, 세 번씩 면담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돈이라도 받고 나가자”며 자진해서 퇴직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나 나간다, 잘 있어라.” 눈시울이 붉어진 채 작별인사만 짧게 주고받고 선배들은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내가 왜 희망퇴직을 해야 되냐고, 내가 뭐 때문에….” 형들은 이야기를 나누다 서럽게 울었다. 그 옆에서 김씨도 덩달아 울었다. 희망퇴직 권고는 곧 30대와 20대까지 내려왔다. “어떻게 해야 되지….”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얘졌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봐도 감정은 울컥했다. “억장이 무너지더군요.” 남들이 하던 말 그대로였다.

정말 답답한 건 따로 있었다. 왜 희망퇴직 대상자가 됐는지, 무슨 기준인지 알 길이 없었다. ‘조직 문화에 융화되지 못한다’ ‘업무 성과가 낮다’…. 회사의 답변은 추상적이었다.

김씨와 함께 대기발령을 받은 박순현씨(20대·가명)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다 못해 밖에서 주차 위반을 해도 육하원칙에 맞춰 말해주잖아요. 무엇을 위반해서 딱지 뗍니다, 이렇게요. 근데 우리는 잘못한 게 없는데도 왜 나가라는지 객관적인 자료도 설명도 없어요. 배째라는 식이죠.”

옆에 있던 강호태씨(30대·가명)도 “회사에서는 직무 부적응자, 저평가자라고 얘기하는데 우리가 잘못한 게 있으면 회사가 증명을 해야 한다. 다짜고짜 먼저 칼부터 꺼내든 건 회사”라고 말했다.

경영난일까. ‘찍퇴’ 명단에 오른 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비정규직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 아니겠어요.” 체감하는 작업 물량은 두산인프라코어가 잘나간다고 했던 6년여 전보다 늘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회사가 어렵다’며 위기론이 나왔다고 했다. 어떤 분야는 통째로 외주화해버려 위로금을 받고 다른 업체로 자리를 옮기는 직원들도 생겨났다.

20명가량의 정규직이 라인 속의 한 팀을 이뤘던 두산인프라코어에서 몇 년째 정년퇴직 등으로 빈자리가 생기면 비정규직이 채우고 있다고 했다. 신입사원도 비정규직으로 뽑다보니 현장에서 정규직 막내는 4~5년차이다. “현장에는 1·2년차 신입사원이 없어요. 다 계약직 형태로 쓰고 있거든요. 신입사원 안 뽑은 지 3년이 넘었을 거예요.” 찍퇴들은 말끝에 그들도 슬프고 눈물 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신혼여행 갔다 오지, 왜 안 갔다 왔어?”

‘정규직 찍퇴’인 우병민씨(30대·가명)는 4개월 정도 함께 일했던 비정규직 청년이 결혼 직후에 주말 특근을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정규직은 주말에 볼일 있으면 근무를 바꿀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사정이 달랐다.

“열심히 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줄게.” “자격증을 따. 그러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줄게.” “정규직으로 채용되려면 특근이나 주말 근무는 되도록 빠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비정규직에겐 항상 희망고문이 이어졌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일하지만, 결코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신혼의 그 청년도 6개월 근무를 채운 뒤 회사를 나오지 않았다. 회사는 근로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그 친구를 보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찡했어요.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을 더 빨리하고, 반장이 해야 될 일도 앞서서 했어요. 정규직 되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 그 외엔 모든 것들이 다르죠. 들어올 때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안되는 거거든요. 안타까워요.” 옆에서 듣던 박순현씨는 “미안하고 불쌍하다. 현장관리자가 서류까지는 책임져줄 테니까 열심히 해보라고 했는데 그 사람도 떨어지더라”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2013년 서울대에서 열린 두산 채용설명회 현장을 직접 찾았다. 박 회장은 ‘젊은 청년에게 두산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 이름 붙인 설명회에서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의 광고 카피는 단순한 기업 광고가 아니라 두산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표현한 메시지”라며 “삶의 의미를 실현하는 행복하고 합리적인 일터가 돼야 그 조직은 건강하게 자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산인프라코어에선 청년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오너 일가에서 가져가는 배당금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찍퇴 대상자들에게 회사 동료들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 미안해!” 이문규씨(20대·가명)는 “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이해할 수 있다”며 “전에는 나도 잘 몰랐지만 막상 겪고 나니까 이제야 알겠다”고 말했다. 불합리하다고 느끼면서도 생계가 걸려 외면하는 사이 누군가는 그 찍퇴 명단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박순현씨는 5년 전을 떠올렸다. “회사 합격 통보를 당숙모님이 돌아가신 장례식장에서 받았는데 표정 관리가 안되더라고요, 장례식장에서. 그 정도로 좋았는데 지금 이러고 나니까 한동안 잠이 안 왔어요.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만 들고…. 얼마 전 회사에 일 있어서 갔는데 출입증이 다 블록됐더라고요. 그때가 퇴근시간이었는데 5년 동안 다녔던 회사가 너무 낯설게 느껴지고, 동료들이 일 끝나고 나오는 모습을 봤는데 얼마 안되는 그 거리에서 출입구 사이로 나는 그 사람들과 있을 수 없는 괴리감이 엄청 크게 오더라고요. 많이 참았죠. 서러워서 울고 싶었는데 그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정말 많이 참았어요.” 깊은 한숨이 배어나왔다.

이들을 만난 지 일주일 후 회사는 희망퇴직에 불응해 대기발령을 냈던 21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철회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바꾼 것이다. 그러나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1년 뒤, 5년 뒤, 10년 뒤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사람이 미래다’라는 구호는 한국에서 과연 실현 가능할지 고민은 그대로다. 정부가 저성과자 일반해고 지침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 바라는 게 있어요?” 강호태씨는 그날 인천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비단 남의 일이 아니고, 결국엔 돌고 돌아서 내 일로 올 것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비단 두산인프라코어만이 아니라, 그놈의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소리 좀 하지 말고, 그놈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소리 좀 하지 말고. 불합리한 것에 관심을 갖고 공감을 했으면 좋겠어요. 결국엔 우리가 함께 바꾸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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