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조용하다 하는가

2016.01.18 19:59 입력 2016.01.18 20:09 수정
엄기호 | 문화학자

대만에서 정권이 교체됐다. 8년 전 민진당이 국민당에 정권을 다시 내줄 때만 해도 생각할 수 없던 일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미 많이 보도된 것처럼 중국에 의존한 국민당 정권에 대한 반감과 청년실업, 저임금 등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다. 또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차이잉원의 정치력에서부터 해바라기 혁명을 일으킨 청년들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바람이 있었다. 그 결과 정권교체뿐만 아니라 해바라기 운동으로 만들어진 정당이 이번 선거에서 5석을 차지했다.

[세상읽기] 누가 조용하다 하는가

아마 대만 정권교체를 보며 한국 진보세력은 부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테다. 상황을 보면 한국도 분명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 세월호부터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의 무능력과 무책임, 청년실업, 양극화, 국정화 논란 등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항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 다시 ‘청년’에 주목한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가장 휘발성이 강한 청년실업 등 청년들의 고통에 주목한다. 신문들도 청년들의 고통이 얼마나 강하고, 그들의 절망감이 얼마나 큰지를 기획보도하고 있다. 그만큼 청년들의 상황이 안 좋고 시급히 정치적 개입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뜻이겠다. 동시에 청년들이 분노하고 저항하기를 바라는 바도 있을 것이다.

아마 대만처럼 청년들이 입법원도 점령하고, 홍콩처럼 관공서를 포위하기도 하고, 일본처럼 의사당 앞에서 시위도 하고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야 청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청년들이 가장 시끄러운 나라였던 한국이 최근에는 가장 조용하니 당혹스러울 것이다. 한 친구의 표현을 빌리면 몇 십년 동안 조용하며 운동이라곤 없던 일본도 홍콩도 대만도 청년들이 들고 일어나는데 왜 한국만 조용한지, 그것이 불만일 테다.

왜 한국만 청년들이 ‘조용’할까. ‘헬조선’이니 ‘노답 사회’니 하면서 청년들이 만들어내는 단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과격하다. 분노하지 않는 게 아니라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다. 그런데 ‘정치’의 영역으로 가면 매우 조용해 보인다. 효녀연합과 같은 새로운 흐름은 있지만 과거와 같이 ‘깃발’ 아래 대규모로 모이는 ‘군중’ 청년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조용’해 보이는 것일 테다.

지금 청년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대규모로 거리와 광장으로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흐름을 만들고 대규모 투표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으로 모일 수 있을까? 홀로 광장에 나가는 것은 대단히 예외적인 일이다. 광장에 나설 때는 대부분 서넛일지라도 ‘무엇’ 아래 무리로서 모이고 나가게 된다. 지금 청년들의 ‘조용함’에 대해 사람들이 묻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무엇’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 ‘무엇’은 1980~1990년대처럼 ‘학생회’의 깃발이어야 할까?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는 지금의 대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다. 광우병 때처럼 아고라와 같은 자발적인 정치포럼일까? 다시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의 주축은 이제 정당이어야 하다고 생각한다. 정당이 청년들의 분노를 모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정당이 청년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해결할 수 있고 자신들의 ‘대표자’를 찾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청년 ‘문제’에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 청년들로 ‘인해’ 시끄러운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광장을 점령하고 분노를 터트리기를 바라고, 그 흐름에 편승해 권력이라는 열매만 쏙 빼먹으려고 하는 건, 이 21세기에 너무 양심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청년들이 정치에 조용하다고 말하지 마라. 없는 돈과 인력에도 고군분투하는 소수정당을 제외하고, 정치가 조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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