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직 식민지인가?

2016.02.18 20:47 입력 2016.02.18 20:58 수정
이정우 |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저서에서 김현구 교수의 <임나일본부는 허구인가?>를 식민사관에 입각한 책이라고 비판했다. 김현구 교수는 이덕일 소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최근 법원에서 피고인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것은 여러 모로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큰 판결인데, 대다수 국민은 잘 모르고 있다.

[시대의 창]한국은 아직 식민지인가?

이덕일 소장은 한국사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아온 최고의 역사학자 중 한 사람이다. 흔히 사람들은 역사를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소장은 역사책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유려한 문장으로 써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이 소장은 지금까지 무려 50여권의 저서를 썼는데 그 중 다수가 베스트셀러다. 그 중에서도 <우리 안의 식민사관>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소장은 지난 몇 년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에 맞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지키는 외롭고 힘든 학문적 투쟁을 해왔다.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이 무엇인가? 동북공정은 중국이 자기들의 역사를 한반도까지 확대하려는 기도이고, 식민사관은 일본이 자기들의 역사를 한반도까지 확대하려는 기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우리의 고유한 역사를 침탈하고 우리 영토를 줄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불순한 기도에 맞서 우리의 역사와 영토를 지키겠다는 독립운동가의 심정으로 치열하게 연구해온 당대 최고의 학자에 대한 나라의 대접이 이것인가. 애당초 지검에서 무혐의 처분한 사건을 고검이 수사해서 기소한 것부터 납득하기 어려운데, 급기야 법원에서 유죄 판결까지 내렸다. 국가가 훈장을 줘도 모자랄 역사학자에게 실형 판결을 내리다니 대명천지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이 소장의 책을 읽어보면 식민사관이 주는 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는데 설마 무슨 식민사관이랴 하겠지만, 식민사관은 뿌리 깊고 끈끈한 인맥, 학맥으로 얽혀 역사학계의 주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해방 후 식민지 잔재 청산에 실패해서 나라가 온통 친일파 수중에 들어갔는데, 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식민사관의 대표적 이론이 한사군 학설과 이번 재판에서 문제가 된 임나일본부 학설이다.

이 두 학설은 사실 사료적 근거가 없고, 일본이 조선 침략을 용이하게 만들 목적으로 날조한 작품으로서 조선은 옛날부터 타율적이며 남의 지배를 받았다고 우기는 궤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해방 후 우리 역사학계는 식민지 잔재 청산을 게을리하고 일제의 식민사관을 충실히 답습, 추종해왔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에도 한사군의 이름 외우기가 자주 시험 문제에 나왔고, 한사군의 위치는 대동강 부근이라고 배웠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런데 이런 한심한 일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실제 한사군은 중국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이 중국의 여러 사서에서 거듭 확인되는데도 식민사관은 이를 부정한다.

임나일본부설 역시 한반도 남부에 임나라는 이름의 일본 식민지가 있었다는 주장인데, 합당한 근거가 없다. 많은 국내 학자들이 임나라는 지명은 한국에 없음을 실증해냈고, 거꾸로 일본에 삼한, 삼국의 분국이 있었다는 학설조차 나온 형편이다. 그런데도 임나일본부설을 믿는 사람이 더러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제학자로서 노벨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모리시마 미치오의 책 <왜 일본은 실패했나?> 첫 페이지에 동북아 지도가 등장한다. 거기 한반도 남단에 버젓이 임나라고 표기된 걸 보고 모리시마의 천박한 역사 인식에 실망, 실소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 일은 애당초 사법부로 가져갈 일이 아니었다. 최근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사건은 학자 대 할머니들의 대립이니 학문적 토론이 안되고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학자 대 학자의 역사 논쟁은 책과 논문으로 해야 한다. 이 소장의 주장에 반박할 것이 있으면 사료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할 일이지 법정에 끌고갈 일은 아니다. 국가가 학자의 연구 내용을 수사하고, 사법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며,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고한 선비들이 박해받던 조선시대의 숱한 사화나 중세의 갈릴레이 재판을 연상시킨다. 더구나 사명감을 갖고 우리 역사를 지키려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온 학자를 상 주기는커녕 처벌한다면 학문의 자유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을 것이다. 앞으로 어느 학자가 학계의 그릇된 질서에 맞서 싸우며, 양심과 진리를 추구하려 하겠는가. 부디 항소심에서는 재판부가 국민과 학자들이 수긍할 만한, 정의와 상식에 입각한 판결을 내려주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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