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기획

미국도 놀랐던 ‘역대 최강 대북제재’ BDA···이젠 왜 못하나?

2016.02.19 16:25 입력 2016.02.21 14:22 수정

대북제재가 거론될 때마다 국내에서 매번 등장하는 단어가 ‘BDA(방코델타아시아)식 제재’다. 북한이 최근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감행한 이후 이번에도 어김없이 “미국이 이번에는 BDA식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BDA식 제재는 북한의 명줄을 끊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다. 도대체 BDA식 제재는 어떤 것이었길래 이처럼 ‘대북제재의 전설적 존재’가 된 것일까.

이 제재 원리는 간단하다. 미국이 세계 금융패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북한과 금융거래를 하는 개인·단체는 미국과 금융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과 거래를 못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금융기관은 사실상 전 세계에 없다. 따라서 각국 금융기관은 이를 피하기 위해 북한과 거래를 끊게 되고 이 같은 ‘세컨더리보이콧’ 효과로 북한은 국제 금융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없어 돈줄이 마르게 된다.

미국 재무부가 ‘돈세탁 은행’으로 지정했던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전경.  | 연합뉴스

미국 재무부가 ‘돈세탁 은행’으로 지정했던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전경. | 연합뉴스

미국도 놀란 제재 효과

사실 BDA 사태는 미국이 북한에 직접 제재를 가한 결과가 아니었다. 미국이 한 것이라고는 2005년 9월 마카오에 있는 소규모 은행 BDA를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유통에 이용된 혐의가 있는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고, BDA와의 거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를 관보에 게재한 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들이다.

미 재무부의 발표가 나오자 각국 금융기관은 미국과의 거래가 막히는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BDA와의 거래를 끊었다. BDA에 계좌를 갖고 있는 예금주들은 앞다퉈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카오 금융당국은 이 같은 ‘뱅크런’을 막기 위해 BDA의 계좌를 전부 동결시켰다. 이 은행에 있던 북한 소유 계좌 50여개의 자금 2400만달러도 동결됐다.

또한 각국 금융기관은 그동안 거래해온 북한 은행들의 계좌를 폐쇄하고 북한과의 거래를 피했다. 북한 은행들은 새로운 계좌를 만들 수도 없었다. 이로 인해 북한은 합법적 금융 거래도 할 수 없게 됐다. 국제 금융네트워크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 북한은 현금을 싸들고 다니며 거래를 해야 할 판이었다. 당시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차관은 “북한과의 거래 위험성을 알게 된 각국 정부, 기관, 개인이 자발적으로 거래를 중단하면서 일종의 ‘눈사태’와 같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을 제재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위조지폐 제작·유통과 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자국의 피해를 막기 위해 ‘단속’을 한 것이어서 다른 나라들이 이의제기를 하기도 어려웠다. 또한 일반 국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되는 단순한 경제제재와 달리 이 같은 금융제재는 북한 지도부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미국이 “드디어 북한의 약한 고리를 찾았다”면서 크게 환호한 것은 당연했다.

2006년 12월 방코델타아시아 계좌 동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급히 빠져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2006년 12월 방코델타아시아 계좌 동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베이징 서우두 공항을 급히 빠져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BDA 여파로 중단된 6자회담

북한은 국가의 돈줄이 마르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비명을 질렀다. 북한은 미국의 조치가 핵폐기를 약속한 9·19 공동성명 합의와 동시에 나온 것을 지적하며 “미국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BDA에 묶인 자금을 돌려받기 전에는 핵협상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북핵 6자회담은 ‘역사적인’ 9·19 합의를 이뤄내고도 1년 이상 열리지 못했다.

결국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 2006년 7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그해 10월 첫 핵실험을 강행하는 초강수를 뒀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위기 국면이 조성되자 미국은 BDA 문제를 풀어주고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켜 비핵화 조치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돈을 돌려주는 것은 동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북한은 미국이 국제금융망을 통해 돈을 송금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제대로 금융기능이 작동하는지 시험해보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어느 금융기관도 북한 자금을 중개하려 하지 않았다. 불법 자금이 섞여 있는 돈을 취급했다가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북한 자금을 중개해줄 은행을 찾기 위해 미국은 동분서주했다. 중국의 은행도 중개를 맡으려 하지 않자 미국 정부는 자국의 한 은행에 협조 요청을 했다. 이 은행은 면책 특권이 명시된 정부 문서를 요구하기도 했으나 자신들이 중개를 맡을 것이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계획을 철회했다. 한국의 수출입은행과 개성공단에 개설된 우리은행 등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결국 각국의 중앙은행을 통해 이 자금을 북한에 옮겨주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됐다.

마카오당국은 합법과 불법 자금이 섞여 있는 50여개의 계좌를 하나로 만들어 이를 뉴욕의 연방준비은행으로 보냈고 미국은 이를 다시 러시아 중앙은행으로 송금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북한의 휴면계좌가 있는 러시아극동은행으로 이 돈을 보냈고 북한 대동은행을 거쳐 최종적으로 조선무역은행에 입금됐다. 미국이 불법과 합법 자금을 섞어 하나의 계좌로 만드는 ‘돈세탁’을 눈감아 주고 정부 산하의 중앙은행까지 동원한 끝에 간신히 돈을 돌려줄 수 있을 정도로 한번 가해지면 어느 누구도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비가역적 조치’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지금도 BDA식 제재가 유효한가

BDA 계좌동결로 북한이 엄청난 타격을 입은 이유는 자신들의 계좌가 국제금융망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이후 북한은 재발 방지를 위한 대비를 했다. 대부분의 계좌를 중국으로 숨겼고 금융결제도 소액으로 쪼개는 방식으로 감시망을 피한다. 따라서 지금 BDA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해도 북한이 당시처럼 큰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지금 BDA식의 제재를 가할 경우 사실상 중국의 기관·단체가 그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10년 전에도 미 재무부는 중국의 많은 은행들이 북한의 불법자금을 취급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중 가장 ‘별볼일 없는’ BDA만을 시범 케이스로 골랐다. 중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중국 금융기관들도 상당수가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하며 협조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경제적 파워나 국제적 위상은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관계도 상호의존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제재의 피해가 부메랑처럼 미국에 돌아갈 수도 있다. 그동안 미국이 ‘세컨더리보이콧’ 조항이 포함된 대북제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이 같은 방식의 제재는 군사적 수단을 제외하면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카드’여서 함부로 뽑기 어렵다.

북한의 범죄활동과 불법자금을 추적해 BDA를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데이비드 애셔 전 국무부 자문관은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미 하원이 BDA 방식과 같은 대북제재법안을 추진할 때 청문회에 출석해 상황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2005년 당시 중국은 자국 기관이 미국의 제재를 받을 것을 우려해 매우 실무적으로 반응했다”면서 과거와는 위상이 크게 달라진 중국이 지금도 피해를 감수하고 협조할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그는 또 “BDA식 제재를 가하려면 먼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resolution)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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