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남경필, 권영진에게 물어보라

2016.04.25 21:15 입력 2016.04.25 21:20 수정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독재보다 더 나쁜 것은 독선이다. 정치에서는 그렇다. 독재는 정치의 한 유형이지만 독선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의견은 옳고 자기와 다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순간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보다 더 나쁜’ 그 무엇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번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나의 길을 가겠다는 듯하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그저 참조사항일 뿐, 국정운영 기조나 리더십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어떤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는 하지 않으면서 역사와 대화하겠다 하고, 선거의 평가는 외면하면서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한다면 그는 독선의 지경에 이른 것으로 봐도 좋다. 이런 상태의 대통령은 대개 자신이 ‘외롭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김태일의 정치시평]원희룡, 남경필, 권영진에게 물어보라

한 심리학자는 이와 같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해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이며, ‘맡은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권력의지 결핍’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동의하기 어렵다. 정반대로, 박 대통령은 ‘권력의지 과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역사의식만이 올바르며, 자신의 애국심만이 정당하며, 자신의 행동만이 공평무사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이루겠다는 각오도 대단하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애간장이 타는 것은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애국심’에 가득 차서 ‘역사와 대화’하고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설득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며칠 전 만난 한 새누리당 인사는 문제의 중심에 있는 박 대통령이 변화할 가능성이 없으며 새누리당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을까?

새누리당 중앙여성위원회는 ‘총선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석고대죄부터 하자’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이벤트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되풀이하는 구태정치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외부에서 초빙하여 새누리당의 운명을 맡기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런 외주정치는 야당에서 이미 실험을 한 바 있으나 성공한 모델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외부인사에게 당의 쇄신을 위탁하는 것은 대증요법으로서 반짝 효과는 있겠지만 체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과거 일부 야당이 했던 것처럼 저명한 대학교수를 모시고 와서 새누리당을 이끌어달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좋은 방도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그럴듯한 결과가 나온 사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은 모두 ‘교수에게 자문은 맡기되 결정은 맡기지 말라’는 격언을 확인했을 뿐이다.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협량하고 경직된 보수노선을 넘어서 보수혁신을 추구하고, 친박 비박 권력투쟁이 만들어놓은 아수라장을 정리하고, 여소야대 권력구조에서 국정을 운영하고 싶으면 눈을 내부로 돌려볼 것을 권한다. 지방정치에서 꽃피고 있는 협치의 리더십을 주목해보라는 얘기다. 서울시장 박원순, 경기지사 남경필, 제주지사 원희룡, 충남지사 안희정, 대구시장 권영진.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 다섯 명의 지방정치 리더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종의 협치 경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방정치, 관료, 기업, 대학, 노동, 시민사회 등의 마음을 모아 지역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정치적 반대자와 비판세력,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까지 손잡고, 협력을 통한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정책 또는 계획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이들이 보이고 있는 협치의 리더십은 우리 정치가 대결과 진영의 정치로부터 상생과 신뢰의 정치로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확인해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새로운 정치의 희망은 중앙이 아니라 지방에서 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방정치에 새로운 정치의 단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 주말 한 새누리당 인사에게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권주자로 키우라는 얘깁니까? 비대위원 시키라는 얘깁니까? 그런 거까지는 모르겠다. 일과가 끝난 조용한 시간에 원희룡, 남경필, 권영진을 올라오라고 해서 협치라는 게 뭔지, 그걸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세히 물어보도록 박 대통령께 권해보라는 얘기다. ‘독재보다 더 나쁜’ 그 무엇에 빠져있는 박 대통령을 설득할 전략이 없다고 하니 드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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