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남역 여성 살인에 대한 여성혐오적 시선을 혐오한다

2016.05.19 20:56 입력 2016.05.20 09:40 수정

30대 남성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서울 강남역 화장실 살해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폭발적이다. 사건 현장 주변인 강남역에는 임시분향소가 설치됐고, 추모객들이 바친 국화꽃이 무릎을 덮을 만큼 쌓였다. 강남역 외벽에는 피해자의 죽음을 추모하고 여성 차별 사회를 고발하는 내용의 쪽지 수백장이 빼곡하게 나붙었다. 노동당과 녹색당, 각 여성단체 등은 잇따라 성명을 냈고, 어젯밤엔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여성혐오 현상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문제의식이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다.

이 사건에 사회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여성혐오라는 살인동기 정황 때문이다. “여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피의자의 진술이나 피의자가 공용화장실에서 1시간 이상 여성이 들어오기를 기다려 범행한 것을 보면 여성혐오가 살인동기라는 데 이의를 달기 힘들다. 그가 남자들에게 무시를 당했더라도 남성 집단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을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피의자는 당시 화장실을 출입한 남성은 범행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경찰은 피의자가 정신분열증으로 4차례 입원한 경력을 강조한다. 그의 여성혐오나 피해망상도 정신분열증의 발로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사건이 최소한 ‘여성이라는 특정 집단을 겨냥한 살인’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는 강남역과 인터넷을 달구는 수많은 여성들의 추모와 공포의 공감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여성을 특정한 범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을 ‘묻지마 살인’으로 몰고 가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이번 사건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아야 하는 한국 사회 현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여성 누구라도 부지불식간에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그래서 일상적으로 공포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실상을 이 사건은 고발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의 가해자는 남성이 98%로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피해자는 여성이 84%로 나타났다.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가 성별로 뚜렷이 구별되는 상황에서 여성들의 불안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의 위험성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은 사건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이다. 성찰적 추모열기의 한쪽에서 일고 있는 반발은 문제적이다.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주장은 논쟁적 주제로 치부할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사건의 동기를 피해 여성의 옷차림과 음주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남녀 갈등이나 남성 역차별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도 큰 문제다. 극우보수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의 일부 이용자들은 일베 손가락 표시를 하고 쪽지를 떼낸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여성비하적이고 가부장적인 일각의 인식은 여성혐오의 온상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 사건의 피의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여성비하글들과 성차별적 언어들이 끔찍한 범죄의 단초가 됐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전체 여성을 표적으로 한 범죄 행각에서 20대 여성이 희생당했는데도 그 근본 원인인 성차별을 성토하는 것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는 위험하다.

혐오해야 할 것은 여성혐오 살인 행위만이 아니다. 여성들의 추모열기를 비뚤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여성혐오적 시선 역시 혐오스러운 것이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낮은 사회라 해도 여성을 근거 없이 공격하는 담론들이 공공연히 유포된다는 사실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 사회가 왜 이렇게 병들었는지 우리 모두의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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