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정신질환에 대처하는 방식

2016.06.04 15:55

‘위험한 존재 격리대상’으로 예단 말고 ‘당사자의 권리’도 고려해야

5월 29일 서울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며 자수한 피의자 김모씨(61)가 서울 노원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조현병 약을 처방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 연합뉴스

5월 29일 서울 수락산 등산로에서 6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며 자수한 피의자 김모씨(61)가 서울 노원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김씨는 조현병 약을 처방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 연합뉴스

2007년 4월 한국인 여성 ㄱ씨가 딸과 함께 캐나다에 입국해 5개월 뒤 밴쿠버에서 난민신청을 했다. ㄱ씨의 딸은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국가의 보호 아래 있게 될 것이며,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고, 어머니의 거취를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ㄱ씨는 조현병과 과대망상으로 세 차례 강제입원한 적이 있었다. ㄱ씨 모녀는 캐나다 난민보호국 심사과정에서 한국에서 병원에 강제입원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병원 내에서의 CCTV 설치 실태와 폭력, 퇴원을 거부당한 경험 등에 관해 자료를 제출했다. 난민보호국은 “한국의 정신보건시스템이 정신질환자를 부당하게 처우하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며 2008년 10월 이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 신권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2년 박사학위 논문 ‘정신질환자의 법적 지위: 배제에서 통합으로’에서 이 사례를 소개하며 “(외국의 시선에서 난민으로 인정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박해는 가족, 사회, 국가가 함께 만들어내는 일들”이라고 밝혔다.

2014년 1월 재혼을 준비하던 50대 여성 ㄴ씨는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느닷없이 사설 응급환자 이송업체 차량에 강제로 실려 경기도에 있는 한 정신병원으로 끌려갔다. 차량을 부른 이는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친아들이었다. ㄴ씨는 이혼한 전 남편과 150억원대 재산분할 소송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 병원 의사는 ㄴ씨가 정신질환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퇴원했지만 5일 만에 다시 또 다른 정신병원으로 강제 이송돼 입원조치됐다. 보호자인 아들의 요청에 따라 외부 면담이 일절 금지되고 격리병동에 수용됐다. ㄴ씨는 자신의 행방을 쫓던 약혼남과 시사고발프로그램의 도움으로 간신히 병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보호의무자 2인(보호의무자가 1인일 경우 1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의 권고만 있으면 6개월 이상 강제입원 조치가 가능하도록 한 정신보건법 제24조를 악용한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의학계와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정신보건법 제24조의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수많은 피해자를 낸 오랜 인권문제가 2016년 5월 말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방향은 완전히 반대였다. 5월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벌어진 여성 살해사건 피의자 조모씨가 ‘조현병’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23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실체가 없는 망상을 혐오로 단정 짓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조현병 환자의 실태 파악을 위한 전수조사도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여성혐오범죄’로 규정하고 추모 열기가 일고, 정신질환자에 의한 망상범죄로 규정하는 경찰에 대한 비판여론이 대두되자 이같이 대응한 것이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4일 성명서를 내 “(강남역 살인사건이) 경찰의 심리면담에서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결론 났지만 아직 피의자의 충분한 정신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범죄에 대한 사회의 분노가 모든 조현병 환자들에게 향하게 될까봐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여당은 ‘조현병 환자’ 가두기 지원사격에 나섰다. 26일 국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를 강제입원시킬 수 있는 행정입원명령이 실효성을 거두도록 법적 근거 마련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브리핑을 통해 “여성정책과 범죄심리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행정입원명령이 실효성을 거두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행정입원은 조현병 환자로 판정되면 경찰이 의사에게 요청해 입원 필요성을 판단 받고, 지자체에 입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헌재 판결로 납치가 아닌 정상적 시스템에서는 가족의 반대나 인권문제 등으로 입원을 요청만 할 수 있을 뿐 강제할 방법은 없었는데, 다시 가능하도록 법률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병원 내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를 감시할 인신보호관을 두고 조현병 환자의 치료를 위한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조현병 환자 관리는 CCTV 사각지대 파악, 순찰차 증차 등의 정책과 묶어서 거론됐다. 치안정책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날 결정은 김광림 정책위의장,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 이창재 법무부 차관, 이성호 국민안전처 차관, 이철성 경찰청 차장과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간담회 자리에서 이뤄졌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책은 ‘사회방위적 대응’, ‘사회보장적 대응’, ‘사회통합적 대응’ 세 가지로 구분된다. 사회방위적 대응은 정신질환자가 타인을 해치지 않도록 사회 안전의 관점에서 환자들을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 19세기 초 유럽 등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된 강제입원제도, 치료감호제도, 치료명령제도, 강제불임제도가 해당한다. 나치 독일이 시행한 ‘안락사’도 이 범주에 들 수 있다. 제도가 오용되지 않도록 엄격한 법적 절차가 요구되며, 사법기관의 심사와 판단이 제도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사회보장적 대응은 똑같이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더라도 취약한 개인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시행한다. 질환의 치료와 생활보호가 목적이 되며 ‘정신질환’을 판단하는 의료기관의 판단과 심사가 중요하다. 장애인사회복지제도, 장애인차별금지제도가 해당한다. 신 교수는 사회의 결속과 통합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두 제도의 목적은 근본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사회통합적 대응은 정신질환자의 거취뿐 아니라 보험 가입이나 직업 선택의 자유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 철폐, 존엄사 과정에서 정신질환자의 의사결정 존중 등 정신질환자의 ‘평등권’과 ‘자유권’을 확신시키는 논의를 포함한다.

1995년 제정된 한국의 정신보건법은 앞의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반영했다. 시작은 ‘치안유지’였다. 1991년 10월 세상에 분노를 품은 20대 젊은이가 서울 여의도에서 차를 몰고 질주하다 어린이를 포함해 2명을 사망하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대구에서는 30세 영농후계자가 술을 안 주고 무시한다는 이유로 나이트클럽에 방화를 저지른 사건이 일어났다. 김기춘 당시 법무장관이 늘어나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를 예방한다는 목적으로 정신질환자의 격리 입원을 핵심으로 하는 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앞서 정신보건법은 1959년부터 보건사회부 주도로 제정되려 했으나 30년 동안 결실을 보지 못했다. 1970년대까지는 재정지출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반대했으며, 1980년대에는 시민사회단체 및 이해집단이 군사정부의 강제입원 중심의 정신보건법안이 인권침해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1992년 정부에서 법안을 제출한 뒤 입법까지 3년이 걸렸다. 민주화된 공간에서 법안 논의가 벌어지는 만큼 다양한 의료계, 사회복지계, 법조계 등 다양한 직업집단이 논의에 참여했다. 1992년 법안 제정 당시에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수용과 격리라는 치안입법적 성격이 강했으나 특히 의료계와 사회복지 전문가, 인권활동가들이 논쟁에 참여하며 치료와 복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정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정신보건전문간호사,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등의 직군이 탄생하고 정신질환자 관리에서 이들의 역할과 권위가 강조됐다. 반면 정신질환자 단체나 가족은 입법과정에서 활발하게 참여하지 못했다. 정신질환자의 의사표현은 사회 내에서 합리적으로 여겨지지 않았고, 그 가족들에 대해서도 사회적 지지가 높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다. 다양한 집단이 논의과정에 참여했지만 국가가 ‘의사집단 등 전문가에게 권한을 배분하는’ 최종 관리자의 역할을 하면서 논의가 전개됐다.

그 결과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를 사회적 위험요소로 보아 격리시키는 정책’과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정책’이 결합됐지만 결국은 ‘강제입원정책’으로 수렴되는 결과를 낳았다. 강제입원하는 대신 의료급여를 국가가 지급하도록 하는데, 이는 병원에 환자의 수가 수익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구조를 낳았다. 2008년 박종익 강원대 의과대학 신경정신과학교실 교수가 책임연구자로 참여한 국가인권위 보고서에서도 의료수가 제도를 정신질환자 장기입원의 이유로 지목하고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 입원환자 수는 2012년 8만569명인데, 이 가운데 자의 입원은 24.1%이고 나머지 75.9%는 비자의 입원, 즉 강제입원에 해당한다. 국내 정신질환자들의 평균 재원기간은 247일로 세계 최장이다. 스페인 18일, 독일 24.2일, 이탈리아 13.4일, 프랑스 35.7일, 영국 52일 등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사회가 정신질환에 대처하는 방식

평생을 갇혀 있다고 볼 수 있는 ‘장기입원’ 환자의 수도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재원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신요양시설 59개소에 입원한 1만951명 가운데 무려 40년 이상 입원한 사람이 26명, 30~40년이 501명, 20~30년 1518명, 15년~20년 1139명으로 나타났다. 15년 이상 장기 입원해 있는 환자가 전체의 29%에 달한다. 2006년 한국 정신요양시설을 방문해 이 같은 현상을 확인한 적 다니엘 피셔 미국 매사추세츠주 국립지원센터 이사장의 증언은 2008년 한국인 모녀의 캐나다 망명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되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성명을 발표해 “정신장애인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키고 범죄자로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부적절하다”며 “경찰청장의 발언이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 및 혐오를 가중시키고 그들을 더욱 고립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도 페이스북에 “위험이 있다고 가능성만으로 사람을 잡아가두는 것은 형제복지원의 수용논리와 다름없다”고 비판의견을 남겼다.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은 31일 성명을 통해 “경찰 대책 발표 후 상당수 국민이 정신장애인을 위험한 존재, 격리 대상으로 예단해 이들을 향한 편견과 선입견이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대검찰청이 매년 발간하는 범죄분석 보고서를 보면, 정신장애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범죄자들의 통계가 드러나 있다. 2014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한 해 128만여명의 범죄자 중 범행 시 정신장애 상태에 있었던 범죄자의 비율은 0.4%로 5241명이다. 정신이상, 정신박약, 기타 정신장애를 모두 포함한 수치다. 정상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비율인 42.8%(54만5887명)와 비교해볼 때 매우 적은 수치다. 2015년 범죄분석 보고서에 드러난 ‘2014년 전과자 범행 시 정신상태’ 통계치도 유사하다. 2014년 총 전과자 71만여명 중 정신장애 상태에 있었던 전과자는 0.5%(3802명)다. 반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이 ‘완치’가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미국의 천재 수학자 존 내쉬도 30대 이후 조현병을 앓았지만 치료와 가족의 헌신 끝에 갈수록 증세가 호전돼 수학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반면 1959년 정신보건법 도입 이후 정신질환자들이 병원보다는 지역사회에서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전환한 영국의 경우, 1990년대 몇 가지 잔혹한 범죄를 계기로 정신질환의 위험성이나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해 다시 시설 내 치료 필요성을 강조하는 흐름도 생겨났다.

신 교수는 “한국의 사법체계에서 최근에야 정신질환자를 가족의 일부에서 떼어내 이제 막 개인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최근의 논의를 보면 ‘권리’가 아니라 ‘관리’ 차원으로 정신질환에 접근하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치안과 사회보장의 목적도 정당하고 버릴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신질환자 ‘당사자의 권리’가 배제돼서는 안 된다. 만약 정신질환자들이 실제로 위험하고, 치료도 안 된다고 할 때라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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