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말라리아

2016.07.03 21:16 입력 2016.07.03 21:23 수정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우연히 관여하게 된 개발도상국(개도국) 과학기술협력사업으로 아프리카 케냐와 나이지리아에 다녀왔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는 서늘한 고원이라 모기가 덜하지만,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는 덥고 습한 기후로 모기에게 안 물리면 이상한 곳이었다.

아프리카에 가려면 소위 예방접종 4종 세트를 준비해야 하는데 황열병, 장티푸스, 파상풍, A형 간염 주사다.

[과학 오디세이]달과 말라리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프리카 대륙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말라리아는 접종 리스트에 없다. 왜냐하면 말라리아는 바이러스가 아닌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예방 주사가 아니고 예방약을 먹는데 이게 부작용이 심해 개도국 사업을 오래 한 분들은 차라리 그냥 가서 말라리아에 걸리면 현지 약을 구해먹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말라리아는 풍토병이기 때문에 그런 병이 없는 선진국보다는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그 대응법을 더 많이 고민하고 개발해왔으니 당연한 것 같다. 실제로 현지 약이 더 잘 들어서 어떤 이들은 귀국할 때 약을 사 가지고와 나눠 준단다.

아프리카에서도 지중해권에 가까운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사하라 이남은 전 세계에서 경제발전 수준이 가장 낮은 지역이다.

2014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3400달러로, 중남미 평균 1만5200달러나 서남아시아 평균 5300달러보다 훨씬 낮다. 과학기술 수준 역시 매우 뒤처져 있다. 2013년 전 세계 과학기술분야 발표 논문 약 2200만건 중 사하라 이남 지역의 비중은 0.9%에 불과하다. 제조업 수출 중 하이테크 분야 비중은 2014년 전 세계 평균 18.4%인 데 비해 사하라 이남 지역은 3.9%이다. 인구 100만명당 연구원 수, 특허 건수 등 최근 통계가 아예 잡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형편에서 과연 과학기술 연구, 그 중에서도 기초과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엇이 나올지 또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지 불확실한 기초과학 연구의 특성상 당장 먹고살기 어려운 개도국들에 기초과학은 언감생심인가?

서머셋 몸의 소설 <달과 6펜스>(1919년)는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에게 영감을 받은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멋있는 제목은 잘나가던 증권거래사를 때려치우고 타히티섬으로 건너간 고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고갱의 삶에서 잘 드러나듯이 예술과 세속, 존재와 소유, 영혼과 물질 등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두 세계를 상징한다.

달과 6펜스의 긴장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달만 쳐다보다 발밑에 떨어진 6펜스를 못 본다는 이상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반대로 6펜스를 찾느라 땅만 보다가 하늘에 걸린 달을 못 쳐다본다는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진화경제학자이자 국가혁신체제론의 대가인 리처드 넬슨 교수는 이 소설 제목을 따라 지은 저서 <달과 게토>(1977년)에서 기초연구를 통한 호기심 충족(‘달’)과 빈곤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개발(‘게토’)이라는 두 가지 과학기술 발전 방향의 긴장 관계에 대해 논한 바가 있다.

이에 비추어볼 때 대체로 개도국 과학기술협력사업은 적정기술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말라리아처럼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에 국한되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보름달이 왜 그렇게 밝은지, 어쩌면 지구에서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한 번이라도 궁금했을 것 같은 질문은 일종의 사치재로 간주된다.

문제는 전염병, 환경오염, 물부족 등 개도국에 산적한 사회경제적 난관 해결에 보탬이 될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라도 개도국 자체의 독자적인 과학기술 역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라리아가 선진국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말라리아 치료의 밑바탕이 되는 전염 메커니즘이나 변형 모기유전자 분석 등의 기초연구는 개도국이 앞장설 수밖에 없다.

물론 빌멜린다게이츠재단처럼 상대적으로 소외된 말라리아 연구를 지원하는 비영리재단이 있지만 개도국이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이타심에 의존해 기초연구를 할 수는 없다.

마치 적정기술운동에서 하이테크가 아닌 로테크로 개도국 현실에 맞는 기술을 고민하는 것처럼 개도국의 기초연구 역시 거대과학(big science)이 아니라 ‘작은과학’(small science)에서 출발할 수 있다.

어쩌면 연구자들이 대형 프로젝트의 부품처럼 소외되는 거대과학연구보다 몇몇 실험실에서 수공업식으로 이루어지는 작은과학에서 과학연구의 보람이 더 클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밤의 달빛이 더 선명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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