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전위 ‘메갈리아’ 1년…‘혐오’를 ‘혐오’로 지우려 한 그녀들은 유죄인가

2016.07.08 21:47 입력 2016.07.09 11:02 수정

‘소라넷 폐쇄’ 등 사회문제 공론화 성공

[커버스토리]페미니즘 전위 ‘메갈리아’ 1년…‘혐오’를 ‘혐오’로 지우려 한 그녀들은 유죄인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한창이던 1년 전 여름. 홍콩행 비행기에서 메르스 의심 증상을 보이던 한국 여성이 격리 조치를 거부해 메르스를 퍼뜨렸다는 루머가 온라인을 달궜다. 이 여성은 곧장 ‘무개념녀’ ‘나라 망신시키는 김치녀’로 매도됐다. 해당 내용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고, 이 소동은 그대로 묻히는 듯했다.

갑자기 뜬금없는 현상이 발생했다. 지난해 6월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메갤)’에는 사실도 아닌 내용으로 ‘김치녀’라며 한국 여성을 싸잡아 비난한 한국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행태를 ‘저격’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젠더 위계를 반전시킨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 빗대 스스로를 ‘메갈리아의 딸들’ 혹은 ‘메갈리안’이라 일컬었다.

메갈리안은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을 표방하며 ‘여혐(여성혐오)’을 거울처럼 비춰 보이는 ‘미러링’을 주장했다. ‘김치녀’란 말을 내뱉는 남성은 ‘김치남’이자 ‘한남충’이 됐고, ‘가슴 크기’로 여성을 평가하는 남성은 ‘6.9㎝짜리 작은 성기’를 가진 존재로 불렸다.

거친 언어를 구사하는 메갈리안이 등장하자 남성 커뮤니티에선 “여자가 어떻게 저런 험한 말을 쓸 수 있나”라며 당황해했다. 디시인사이드 운영자는 ‘한남충’ 등이 포함된 단어는 사용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에 메갈리안들은 새로운 사이트 ‘메갈리아’를 만들어 떠났다. 왜 하필 2015년 6월에 메르스 공포란 의외의 계기로 여성혐오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온 것일까.

[커버스토리]페미니즘 전위 ‘메갈리아’ 1년…‘혐오’를 ‘혐오’로 지우려 한 그녀들은 유죄인가

■“‘여혐민국’에서 참을 만큼 참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개똥녀’ ‘된장녀’를 시작으로 ‘루저녀’ ‘개념녀’ ‘트렁크녀’ 등 각종 ‘~녀’ 시리즈가 줄을 이었다. 모두 여성을 대상화하고 낙인찍는 표현이다. 남자 기를 살려주고 명품을 좋아하지 않는 ‘개념녀’는 찬양의 대상이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된장녀’라 비난받았다. 여성의 피부, 가슴 크기, 얼굴 심지어 성기 색깔까지 평가 대상이 됐다.

2년 전쯤 등장한 ‘김치녀’ 담론에서 한국의 여성혐오는 정점을 찍었다. ‘된장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검소하게 데이트 비용을 나눠 내는 ‘개념녀’가 되면 됐지만, ‘김치녀’는 한국 여성이라면 연령·계층을 불문하고 벗어날 도리가 없었다. 오수희양(18·가명)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된장녀, 한국 여자는 김치녀라는 말을 어디서든 접할 수 있었다. 포털 기사 댓글을 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딸을 키우는 국지혜씨(37)는 ‘맘충’에 충격을 받았다. 신성한 것이라 여겨지던 모성·어머니마저 공격하는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정모씨(23)는 “이화여대 재학 시절 폭우가 와서 수류탄이 이대 뒷산에 떠내려왔다는 기사에서 ‘저 수류탄이 이대년들 ○○에서 터져야 되는데’란 댓글을 봤다”며 “적나라한 여혐을 보며 살면서 겪었던 여혐들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메갈리아의 등장은 겉으론 우연인 듯 보이나 사실 언제고 터질 필연이었다. 김재윤씨(24·가명)는 “데이트 비용을 더 내고, 잠자리에서 고통밖에 못 느낄지라도 남친이 좋아하면 만족할 정도로 심각한 ‘코르셋’이었지만 메갈리아의 글은 ‘코르셋’을 단번에 찢어버렸다”고 말했다.

분노는 여성혐오에 앞장선 인물들로 향했다. “여자들은 더치페이하라”를 외치다 2013년 한강에 투신한 남성연대 대표 고 성재기씨가 대표적이다. 메갈리아에서 그의 투신은 ‘(무의미하게) 죽다’ ‘끝장나다’ 등의 뜻을 가진 ‘재기하다’란 조롱조 표현으로 쓰인다. 이 밖에 “페미니스트가 싫다”며 IS로 간 김모군, ‘개보년’ 등 여성혐오적인 막말을 한 옹달샘(장동민·유세윤·유상무) 등도 ‘페미 요정’이라 불린다. 이들의 언행에서 만연한 여성혐오를 실감하고 메갈리아와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커버스토리]페미니즘 전위 ‘메갈리아’ 1년…‘혐오’를 ‘혐오’로 지우려 한 그녀들은 유죄인가

■전략으로서의 미러링

미러링은 ‘원본’에서 성별만 바꿔 그 ‘원본’이 얼마나 차별적·혐오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지 보여주는 방식이다. “순결한 처녀를 찾는 것이 솔찍헌 늑대의 심정”을 미러링하면 “순결한 총각을 찾는 것이 솔찍헌 여우의 심정”이 된다. 최파란씨(23·가명)는 “미러링을 보고 속이 시원했다. 해방감도 느꼈다”고 말했다. 박수희씨(25·가명)는 “‘여혐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땐 듣지 않던 남성들이 ‘성기 크기’ 미러링으로 되갚아주니 그제서야 ‘혐오는 나쁘다’고 하는 게 우스웠다”고 말했다.

미러링은 표면적으로는 혐오와 폭력의 정서를 띤다. 이 때문에 미러링을 두고 목적은 좋은데 수단이 잘못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만정치대 류진희 교수는 “한국 남성의 동남아 현지 자녀 코피노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흉내내는 건 또 다른 소수자 혐오 정서를 이용 및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최지현씨(24·가명)는 “불특정 다수가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정교한 미러링을 기대하긴 어렵다. 미러링은 유일한 수단도 최종 수단도 아닌 문제제기를 하는 신호탄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자 일베’라고?

외면적인 공격성과 폭력성 때문에 일각에선 메갈리아에 ‘여자 일베’란 이름을 붙였다. “아무리 그래도 (여성)혐오에 (남성)혐오로 대응하는 것은 나쁘다”는 지적도 있다.

메갈리아에 관한 최초의 논문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남성혐오는 가능한가> 저자 윤지영씨는 “메갈리안의 언어는 일베 언어의 단순 복사물이 아니라 비대칭적 젠더 권력구조에서 편향된 힘의 축을 휘젓고 뒤집어보려는 저항의 행위”라고 설명했다. 김재윤씨는 현재의 갈등을 학교폭력에 비유했다. “일진에게 매일 맞던 애가 ‘아이씨 그만 좀 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때리지도 않고, 위협하려는 시늉만 했죠. 그런데도 주변에서 ‘너 좀 조용히 해. 아무리 네가 맞았다고 해도 똑같이 때리면 어떡해.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는 게, 지금 상황인 거예요.”

[커버스토리]페미니즘 전위 ‘메갈리아’ 1년…‘혐오’를 ‘혐오’로 지우려 한 그녀들은 유죄인가

■‘맥심’·소라넷 폐쇄·강남역 살인사건

메갈리안은 여성혐오가 만연한 현실 자체를 바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8월엔 남성 잡지 ‘맥심’의 표지(사진)가 “강간·살인을 미화한다”고 문제제기해 ‘맥심’ 본사의 사과를 받아냈다. 1년여간 몰래카메라(몰카)와 리벤지포르노를 사회문제로 공론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소라넷 폐쇄가 대표적이다.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는 지난 5월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예전엔 그저 ‘묻지마 살인’에 그쳤을 사건이 ‘여혐 살인’으로 불리며 추모 포스트잇이 나붙었다. 정우리씨(23·가명)는 “메갈리아가 없었더라면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혐 살인’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갈리아엔 정치 성향이 없다. 메갈리아에선 ‘여성혐오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다’는 뜻으로 ‘여혐 앞의 신성동맹’ 혹은 ‘씹치에 좌우 없다’는 표현을 쓴다. 국지혜씨는 “살해 위협을 느낀 여성들의 공포 앞에서 ‘남자를 잠재적 살인자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반응이 자칭 ‘애국보수’라는 일베와 진보적이라는 ‘오늘의유머(오유)’에서 공통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정우리씨는 “진보나 보수나 여성혐오적인 건 똑같다. 일베는 더 천박한 언어로, 오유는 고상한 언어로 할 뿐”이라고 말했다.

■메갈리아는 가도 메갈리안은 남아

논란과 우려 속에서 성과를 이어가던 메갈리아는 성소수자 혐오 논쟁으로 분화했다. 지난해 말쯤 메갈리아 내부에서 게이들이 성정체성을 숨기고 여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알려지며 ‘게이도 한남충’이란 비판이 일었다. ‘약자인 성소수자를 혐오할 순 없다’는 반론이 제기돼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고, 메갈리안들은 또 다른 공간인 ‘워마드’와 ‘레디즘’ 등으로 옮겨갔다.

그렇다면 메갈리아 이후의 메갈리안은 무엇일까. 최지현씨는 “잿더미와 폐허 위에 코르셋을 벗은 여자들이 서 있다”며 “이들은 과거의 ‘코르셋’ 시절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윤씨는 “메갈리안은 남성의 잣대에 맞추려고 애썼던 바로 그 개념녀들”이라며 “팬이 안티로 돌아서면 더 무섭다는 말처럼, 각성한 개념녀는 더 독하고 무섭다”고 말했다. 최지현씨는 “이미 메갈리안은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큰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됐다”고 말했다.

▶메갈리아’ 성향 따라 워마드·레디즘 등으로 분화

■ 메갈리아

남성들의 여성혐오에 맞서 등장한 인터넷 사이트. 2015년 6월쯤 메르스가 유행할 때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 여성혐오에 대해 공격하는 글들이 올라오면서 태동했다. 메르스 갤러리와 여성주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이름을 따왔다.


■미러링(mirroring)

‘거울처럼 반사해서 보여준다’는 뜻으로 ‘여성혐오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폭력적인지 비춰준다’는 취지로 온라인에서 쓰이기 시작한 단어다. 거울이 좌우를 바꾸어 보여주듯 ‘미러링’은 성별의 배치를 뒤집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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