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주무르고 만졌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의 '눈물의 삭발식'

2016.08.12 17:27 입력 2016.08.12 21:35 수정

공공비정규직노조 손경희 강서지부 지회장이 12일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열린 김포공항 비정규직 파업투쟁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공공비정규직노조 손경희 강서지부 지회장이 12일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열린 김포공항 비정규직 파업투쟁 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윤중 기자

최고기온 34도를 기록한 12일 낮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정문 앞. 한 50대 여성이 무거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또다른 여성이 간이 이발기인 ‘바리깡’을 머리 쪽으로 갖다대자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이내 머리칼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이고요.” 지켜보던 동료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비명을 질렀다. 쳐다보지 못해 고개를 돌리는 이도 더러 있었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됐다. 삭발을 한 그는 김포공항 청소용역 노동자, 손경희씨(51)다.

손씨의 50년 생애 첫 삭발은 4분 만에 끝났다. 희끗한 흰머리가 훤히 드러났다. 손씨는 이마에 ‘단결 투쟁’이 적힌 빨간 띠를 둘러맸다. 그리고 소리쳤다.

“처음에는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인간 대접을 받고 싶어 우리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이날 삭발식에는 같은 처지의 청소노동자 120명이 함께 했다.

“처음 입사해서 회식에 갔는데, 당시 본부장이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어떻게 할 틈도 없이 혓바닥이 입으로 쏙 들어왔다.” 손씨는 증언했다. 청소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일차적 계기는 지속적인 성폭력 때문이었다. 손씨는 “대부분 50대 여성인 공항 청소 노동자들이 용역업체 관리자로부터 추행과 술접대 강요를 비일비재하게 당했다”며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잘릴까봐 말하지 못했다.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게 인권침해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노동자 ㄱ씨는 “노래방에서 가슴에 멍이 들도록 성추행을 당해서 자살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인권유린적인 폭언도 일상이었다. ㄴ씨는 “관리자가 ‘돈 많이 받으려면 공부 잘해서 대학을 나왔어야지’라고 하는데 말문이 막혀 버렸다”고 말했다. ㄷ씨는 “자기 맘에 들면 아무렇게나 주무르고 만졌다. 우리를 인간 취급을 안 했다”고 말했다.

업무 강도도 살인적이었다. 약 11시간의 한 근무 타임 동안 24명 남짓한 인원이 국내선·국제선에 각각 투입돼 청소를 담당했다. 하루 최대 7만명 가까이 승객이 오가는 공항을 청소하는 사람이 50명도 안된다는 뜻이다. 손씨는 “탑승객이 몰리면 면세점 쇼핑백만으로도 100ℓ 쓰레기봉투 150개가 가득 찼다. 손목이고 허리고 안 아픈 사람이 없다”며 “병원에라도 가게 되면 사비로 일당 8만원을 주고 대타를 고용해야 하고, 입원을 하면 ‘아프면 나가라’고 해서 치료도 마음껏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임금도 열악했다. 정부의 용역근로자 보호 지침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용역을 입찰할 때 노임단가는 중소기업중앙회가 매년 조사해 발표하는 직종별 인부노임을 적용해야 한다. 이 지침을 적용하면 청소노동자의 시급은 8200원이 되야 하지만 용역업체는 최저임금인 6030원을 기준으로 산정했다. 상여금 역시 400%이내에서 책정토록 하고 있지만 175%만 지급됐다.

용역업체는 노동자의 불만을 시말서로 압박했다. 손씨는 “커피를 마시고, 호떡을 한입 베어 물고, 잠깐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시말서 대상이 됐다”며 “시말서가 일년간 3번 누적되면 퇴사해야하기 때문에 두려웠다”고 말했다.

결국 청소 노동자들은 지난 3월 노조를 결성했다. 143명 중 120명이 가입했다. 손씨가 공공비정규직노조 서울경기지부 강서지회장을 맡았다. 노조는 샤워실·화장실 설치와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용역업체 측은 “김포공항 미화원은 다른 공공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고 있다”며 “해당 정부 지침은 196개 정부부처 기관 중 6%만 준수하고 있어,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다. 노조의 요구사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왔다.

이날 삭발식에서 손씨와 동료들이 파업을 결의한 이유다. 손씨는 “용역업체 간부로 한국공항공사 퇴직자가 내려온다. 공사 눈치 보느라 힘도 권한도 없는 용역 회사 말고 원청인 한국공항공사가 대화에 나설 때까지 경고 파업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용역업체는 “파업이 지속되면 직장폐쇄 등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공항공사 측은 “공사로선 하청업체와 도급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현 상황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현장사진 모음]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눈물의 삭발식 “노래방 성추행 죽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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