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불상은 불상일 뿐…부처님 말씀도 곱씹어봐야”

2016.09.01 21:07 입력 2016.09.01 21:08 수정

다람살라 법회서 ‘맹신에 죽비’ 내리친 달라이 라마

‘아시아인 위한 법회’ 수천명 몰려

고령에도 목소리엔 힘, 웃음 맑아

달라이 라마 “불상은 불상일 뿐…부처님 말씀도 곱씹어봐야”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전 세계에서 온 3000여명의 불자와 이웃 종교인, 시민과 여행자들이 한목소리로 나지막이 독송을 시작한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81·사진)가 나타나자 일제히 일어서며 탄성과 웅성임이 일었다. 현존하는 달라이 라마를 눈앞에서 본다는 감흥에서다. 달라이 라마는 환한 미소를 짓고, 가까이 서 있는 이들과 악수하며 법당으로 들어섰다. 계속 이어지는 ‘옴마니반메훔’은 모든 죄악이 소멸되고 모든 공덕이 생겨난다는 뜻을 담은 주문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지난달 29일 인도 다람살라의 남걀사원에서 열린 법회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다람살라 | 사진공동취재단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지난달 29일 인도 다람살라의 남걀사원에서 열린 법회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다람살라 | 사진공동취재단

세상의 찌든 때를 씻어내고, 깨달음과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히말라야 산맥 기슭의 하늘동네 다람살라에 모였다. 인도 동북부 다람살라에는 중국으로부터 망명한 티베트 정부가 있다. 지난달 29일 이곳 남걀사원에서는 대규모 법회가 열렸다. 달라이 라마는 1년에 5~6차례 대규모 법회를 여는데, 법회는 보통 4~5일간 이어진다. 이날 법회는 아시아인들을 위한 법회였다. 달라이 라마의 한국 방문을 추진하고 있는 스님과 재가자 등 한국인 200여명을 비롯해 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 등에서 온 아시아인들을 위한 것이다. 물론 유럽에서 온 신자들도 눈에 띄었다. 새벽 5시부터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엑스레이 검색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사원 안에 들어갔다. 휴대폰, 카메라, 라이터 등 금지품목도 많다. 차양이 쳐 있는 1층 마당과 법회가 열리는 2층 법당, 마루와 마당에는 3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진풍경을 만들었다.

법상에 오른 달라이 라마는 어린아이 눈높이에 맞춘 쉬운 가르침부터 난해한 불교경전의 통쾌한 해석을 오가며 감동을 줬다. 법회 교재인 ‘보만론’을 소개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 것으로 교과서처럼 틈틈이 보며 수행에 접목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세계는 발전을 거듭했으나 인간의 기만과 폭력, 생명경시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21세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음이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은 사랑과 자비의 천성을 갖고 태어난 존재인 만큼 내면의 고요함으로 사랑과 자비, 베푸는 마음을 다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을 통해 몸의 청결과 위생이 나아졌듯 정신세계도 교육(수행)을 통해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든이 넘은 목소리는 힘 있고 윤기가 돈다. 중간중간 농담하며 어린아이처럼 웃어 그 모습에 청중들이 따라 웃기도 했다. “나는 70억 인류 중 한 사람이다. 70억의 사람들 모두 행복을 원하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행복을 원하는 만큼 다른 사람도 행복을 원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행하게 할 수는 없다. 가톨릭, 기독교, 이슬람에서도 사랑과 자비, 베풂을 강조하지 않나.”

설법이 이어지는 동안 티베트 스님들이 빵과 ‘짜이’라고 불리는 달콤한 차를 나눠준다. 법회 1부가 끝난 뒤 쉬는 시간에도 달라이 라마는 자리를 비우지 않고 질문을 받으며 대중과 소통했다. 종교 갈등, 개인적 고민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설법은 FM라디오 수신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나라별 언어로 들을 수 있다. 설법은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이어진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법회가 더 자주 열리고 달라이 라마가 오전·오후 설법에 나섰지만 최근엔 고령으로 시간과 횟수를 줄였다. 달라이 라마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4시간30분가량 기도하고 오후 불식(정오를 넘어서는 금식하는 것)을 하고 있다.

불교의 공성과 무아, 보리심, 사성제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 후 ‘심신(믿음)’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기를 주문했다. 맹신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수미산(불교 우주관의 근간)을 믿지 않는다”는 상징적인 발언도 거침없이 했다. 그는 “이웃 종교를 존중해야 하고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불상은 불상일 뿐이다. 부처님이 금을 연마하는 세공사처럼 (종교적 진리를) 잘라보고, 태워보고, 쪼개봐서 이치에 맞다면 믿으라고 한 것을 되씹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이 마당에 둘러앉아 밥과 녹두죽, 과일, 요구르트 등을 나누며 공양했다. 법회에 참석한 임정희씨(45·경기 여주)는 “영혼이 깨끗한 구도자를 만나니 마음이 정화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며 “내 삶의 현장이 바로 수행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종교 지도자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다 함께 정신세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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