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읽음

국가와 죽음

2016.09.29 21:20 입력 2016.09.29 21:32 수정
최태섭 문화비평가·‘잉여사회’ 저자

[별별시선]국가와 죽음

인류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죽음도 함께 있었다. 죽음은 지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 콧대 높은 인류가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영역이다. 어쩌면 이 정해진 운명에 대해서 필멸자로서의 인류가 쳐왔던 발버둥의 흔적이 이름하여 ‘문명’일 터다. 무리를 짓고, 종교를 만들고, 자신의 육신이 다한 이후에도 기억되기 위하여 무언가를 위해 노력한 흔적들의 총체가 그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노력의 산물 중 하나가 다름 아닌 국가다. 국가의 기원과 발전과정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을지라도, 그 핵심기능이 국가에 속한 구성원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 익숙해져서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국가의 말에 따르기로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가 나를 보호해준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이다. 이 약속을 깨트린 국가를 국가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런데 그 국가가 살인을 저질렀다. 모든 사람들이 고 백남기 농민을 향하는 물대포를 보았다. 이 사건에 미스터리는 없다.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고, 농민이 쓰러졌고, 그 이후로 의식불명 상태에서 10개월여를 힘겹게 투병하다 결국 세상을 떠났다. 증거와 목격자가 넘쳐나고, 미심쩍은 부분도 없다.

국가가 혐의를 받고 있는 다른 죽음들은 하다못해 사고였노라고 주장할 여지라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총으로 사람을 쏜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이 사실이 왜곡되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개입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국가는 자꾸 이 사건의 장르를 미스터리 추리극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왜 죽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부검을 해봐야 한다고 우겼고 결국 영장이 발부되고야 말았다.

고작 정권 차원의 면피를 위해, 말조차도 아닌 모호하고 구역질 나는 무언가를 공식적으로 토해내기 위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고인의 시신을 파헤치려 한다.

아무도 해치지 않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5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데, 같은 광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대한 심판은 끔찍하게도 더디다. 그 와중에 음모론자들과, 폴리스라인을 밟았으니 죽어 마땅하다는 얼치기 법치주의자들이 더해졌다.

이들의 목적은 진실을 빌미 삼아 진실에 먹칠을 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바보가 되라며 협박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가가 어떤 공식입장을 발표하더라도, 사람들에게 전달될 메시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이 국가는 구성원을 보호할 의지가 없고, 죽음조차도 존중할 생각이 없다.

이 국가는 아무것도 보장할 생각이 없고, 오로지 통치자들의 안위만이 중요하다. 망루에 불이 나고, 배가 침몰하고, 굶어 죽고, 공중화장실에서 살해당하고, 달려오는 열차에 치여도 이 국가는 관심이 없다.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있다가 죽으라는 것이 이 국가가 사람들의 목숨을 대하는 태도이다. 자살하지 말고 애나 많이 낳으면서 필요한 만큼의 인구로서만 존재하라는 것이다.

국가가 사람들을 영원히 살도록 해줄 수는 없지만, 막을 수 있는 죽음을 예방하고 어쩔 수 없는 죽음들에 대하여 예를 갖춰 애도하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가 그 최소한의 책임을 방기하고 제멋에 겨운 통치놀이에 열중하게 된 결과, 그 죽음들을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것은 오롯이 사람들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에는 ‘나였을지도 모르는’ 죽음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가는 이 최소한의 책임을 방기할 것이라면 하루빨리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혀주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들도 하루빨리 이것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는 선언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