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점거농성 이화여대 학생들 “경찰 수사에도 우리의 농성은 위축되지 않는다"

2016.10.07 13:44 입력 2016.10.07 14:25 수정

5일 이화여대 정문 근처에 붙은 포스터.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빛이 바랬다.  김서영 기자

5일 이화여대 정문 근처에 붙은 포스터.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빛이 바랬다. 김서영 기자

지난 5일 찾아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 교문 근처에 걸린 포스터는 빛이 바랬다. ‘스승이 경찰을 불렀습니다.’

정문에서 본관까지 걸어가는 동안 찢겨진 종이, 잉크가 다 말라 사라진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온다. 본관 근처, 학생들이 계란과 페인트를 던져 지저분해졌던 김활란 초대 총장의 동상도 깨끗해져 있었다.

지난 7월 28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본관 점거 농성을 시작한지 7일로 72일째다. 농성 약 일주일만에 학교는 사업 철회를 공식 발표했지만 학생들은 추후 최경희 총장 사퇴를 내걸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두 달 넘는 시간이 흐르며 본관 주변 풍경은 바뀌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농성을 풀지 않았다.

듬성한 나무들 덕에 적당히 외부 시선이 차단되는 본관 뒷편 벤치에서 초기부터 지금까지 시위에 참가 중인 이화여대 학생 3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경찰 수사에도 농성 위축되지 않아”

“경찰 수사가 계속 진 행중이지만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화력이 불 붙었다. 출동한 이상 어쩔 수 없이 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경찰보단 애초에 병력 투입을 요청한 최경희 총장에 이 모든 책임이 있다.”

ㄱ씨는 지난 7월 30일부터 본관을 지키고 있다. 경찰 병력 1600명이 이화여대에 투입됐던 날이다. 그는 “과잉진압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경찰이 오히려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학생들 사이에선 강하다. 더 큰 문제는 학교나 총장이 그런 경찰과 마찬가지로 학생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ㄴ씨는 “초반에 경찰이 학교에 몇번 왔다가 학내 자치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그냥 돌아갔다. 결국 ‘학생들을 만나겠다’고 해놓고 경찰에 적극적으로 투입을 요청한 총장의 잘못이 더 크다. 책임자로서의 무능력함에 책임을 져달라는 차원에서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학생들에겐 ‘경찰 병력 1600명 투입’이란 사실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로 남아있다. ㄱ씨는 “그 날의 기억으로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학생들이 있다. 학교와 치료비 지원을 논의하고 있지만 익명으로는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해 동문·재학생 모금으로 병원비를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이 익명을 고집하는 이유는 신상이 알려지면 추후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ㄷ씨는 “경찰 수사 이후 시위가 위축되기는커녕 학생들의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12일 개최된 학생총회엔 4000명 넘는 학생이 모였다. 최근 대학가에서 성사된 학생총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규모다. 최근 진행된 채플 시간엔 학생들이 “총장 사퇴”를 외치기도 했다.

■ “최순실 딸 특혜 의혹도 최경희 총장 책임”

학생들은 최근 불거진 최순실씨 딸이 승마 선수로 입학해 수업 출석 등에서 특혜를 받았단 의혹도 현 최경희 총장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ㄷ씨는 “특례 입학이나 전 부총장 샤넬백 사건, 이런 모든 것들이 최 총장의 암묵적인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화여대는 그간 학문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차원에서 연예인 특례 입학 등을 해온 적이 없다. 그런데 특정인에 대한 입학, 입학 후 출석, 평가에 특혜가 주어졌다는 건 모두가 지켜야되는 규칙을 어긴 것이다. 총장의 동의나 주도 없이는 있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ㄱ씨 역시 “이런 분을 총장으로 믿고 따르기 어렵다. 전 부총장 사건의 경우 진상규명위원회 열었다고 거짓말한 후 사건을 덮으려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학내 문제 공론화를 위해 학생들이 택한 방법은 민원이다. 이들은 국회의의 여야 의원실과 각종 유관기관에 2000개 넘는 민원을 제기했다. 그 결과 지난 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을 가리지 않고 의원들 사이에서 이화여대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게 된 경위와 이후 대처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화여대 사태는 이날 고 백남기씨, 우병우 민정수석 등과 함께 비중있게 다뤄졌다. 이 자리에서 서울 서대문경찰서장이 직접 나서 학교가 여러 차례 요청해 검토 끝 경찰을 투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엔 국회 교육문화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이화여대를 방문해 총장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5일 이화여대 본관 근처의 안내판에 ‘스승이 경찰을 불렀습니다’란 문구가 붙어있다. 이 종이 역시 누렇게 변했다.김서영 기자

5일 이화여대 본관 근처의 안내판에 ‘스승이 경찰을 불렀습니다’란 문구가 붙어있다. 이 종이 역시 누렇게 변했다.김서영 기자

■ “출구 전략은 없다. 총장사퇴까지 농성할 것”

여태껏 학내 문제를 외부로 공론화한 건 분명 학생들의 저력이다. 그러나 전망은 아무도 모른다.

학생들에게 앞으로의 계획이나 당초 논의된 출구 전략이 있느냐 물었더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ㄴ씨는 “애초부터 출구 전략은 저희가 먼저 이야기한 게 아니라 언론에서 많이 언급됐던 것”이라며 “총장이 사퇴할 때까지 계속 점거할 방침이다. 물러나시기 전까지 먼저 농성을 해제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ㄱ씨 역시 “학생들 간에 논의된 출구 전략은 없다”고 답했다.

이화여대 학생들 특유의 의견 수렴 방식도 ‘미래’나 ‘전략’을 논의하기 어렵게 한다. 학생들은 현안이 있을 때마다 해당 사안을 학생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댓글로 의견을 수렴하고, 본관에서 토론을 진행한다. 이들은 “이날 인터뷰에 앞서서도 질문지를 미리 커뮤니티에 올려 답안을 여러 차례 검수받았다”고 말했다. ㄷ씨는 “매번 모든 구성원의 의견에 따라 민주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전략적 실수 등) 아쉬움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ㄴ씨는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우리 농성은 ‘주동자 없는 시위’”라고 밝혔다. ㄴ씨는 “본관 점거 농성 초기부터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주도적인 역할이 아닌 시위의 한 참가자로서 참가했다”고 덧붙였다.

ㄱ씨 역시 “운동권이나 총학생회에 속하지 않은 학생들이 훨씬 많다. 개인으로 와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주동자도 없고 총학이 우리의 대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경찰에선 총학을 주동자로 본다.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앞으로도 ‘장기화 불가피’

중간고사 준비로 한창 바쁠 10월 첫째주인데도 본관에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날 인터뷰를 진행하는 45분 동안에도 학생들이 계속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ㄱ씨는 “실제 사무를 보지 않는 회의실, 기자실, 기도실 같은 곳만 학생들이 쓰고 있다”고 전했다. 교직원들이 일하던 사무실은 학생들이 테이프로 막아놓고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ㄱ씨는 “주간에는 재학생들이 자주 드나들고, 졸업한 직장인들도 종종 찾는다. 몇 명이 평균적으로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ㄷ씨는 “밤에는 자원봉사를 받아서 남을 사람을 정한다. 몇 명이 남는지는 매번 다르다”고 전했다.

본관 안에는 수면실, 샤워실 등과 커피포트·전자레인지 등 간단한 조리 기구가 있다. ㄱ씨는 “방학 때 하던 선배와의 멘토링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이 스터디를 꾸려 본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밖에도 개인이 사람을 모아 바느질, 프랑스 자수, 한복 치마 만들기, 캘리그라피, 기타 등 취미 생활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학생들 입장에선 큰 무리 없이 농성을 장기적으로 이어갈 상황이 갖춰진 셈이다.

ㄱ씨는 “농성이 끊이지 않고 계속될 수 있는 건 누군가 지칠 만하면 계속 다른 사람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되고, 자원봉사자가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 방식에선 본관에 있는 사람만 시위 참여자가 아니다. 만약 특정한 어느 날 본관에 있었던 사람이 주동자라고 한다면, 그 다음날이나 전날에 있었던 사람은 주동자가 아니게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자칭 ‘주동자 없는 시위’에서 학교와 학생은 e메일로 공문을 보내며 의사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사퇴할 때까지 농성 하겠다’를 내건 상황에서는 협상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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