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사쿠테타를 일으킨 사실은 쏙 뺀 채 ‘광복군으로 활동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
국방부는 24일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37주기 추모식이 오는 26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에서 거행된다”며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고인의 유족과 정·관계 인사, 추모객 등 5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 추모식 보도 자료를 제공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약력으로 5·16 쿠테타 부분은 뺀 채 ‘1945년 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는 내용을 넣었다.
국방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른 박 전 대통령의 약력을 보면 “1937년 대구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3년간 재직하였으며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광복군에서 활동하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새마을운동을 전개하여 ‘하면 된다’는 국민적 자신감을 고취시켜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토대를마련하여 10% 내외의 고도성장을 이룩하였고, 1977년도에는 수출 100억불을 달성하였다”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5·16 쿠테타 부분은 약력에서 언급하지 않은 채 “정부수립 이후 국군장교로 복무, 1963년 대장으로 예편하여 민주공화당 총재로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고” 기술했다.
이 보도자료를 작성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과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광복군 활동 내용이 포함된 사유에 대해 “국방부를 통해 밝히겠다”고 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 산하 기관이다.
‘위키백과’는 광복군은 1945년 8·15 광복 이후 일본군과 만주군을 전역한 한인 병력을 모집했고, 1945년 9월 21일 만주국 육군 중위로 복무하던 박정희가 동료들과 함께 베이징 쪽으로 건너가 장교 경험자를 찾고 있던 한국광복군에 편입된 후 귀국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만주군 출신인 박 전 대통령이 일본이 패망한 후 시류에 편승해 광복군에 잠시 가입했으나 독립운동에 참여한 바는 없다는 게 정설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 군관학교 입교하기 위해서 일본 천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견마지로를 다하겠다고 혈서로 썼던 사실이 1939년도 3월 31일자 만주신문에서 확인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타계, 11월 3일 국장으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