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연설문…국무회의 자료…청 비서실장·수석 인사까지…
JTBC “최순실 파일 총 200여개 확보” 보도
사실일 땐 헌정사상 초유의 ‘비선 농단 스캔들’
박근혜 대통령의 국내외 연설문, 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자료, 청와대 비서진 인사와 관련된 문서가 ‘비선 실세’ 최순실씨(60)에게 사전에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고, 최씨의 ‘첨삭’에 따라 연설문 등 일부 내용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JTBC의 24일 보도는 충격적이다. 사실이라면 국가 중대사를 담은 문서들이 박 대통령과 사적 인연밖에 없는 최씨에게 ‘사전 보고하듯’ 건네졌다는 것이고, 최씨의 국정 농단이 단지 인사·이권에 개입하는 정도를 넘어 국가 정책과 미래를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물론 헌정사 초유의 ‘비선 개입’ 스캔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이 매체가 최씨 컴퓨터에서 확보한 청와대 관련 파일은 모두 200여개다. 그중 박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공식발언 내용을 담은 문서는 44개였는데, 최씨가 파일을 받은 시점은 모두 박 대통령이 연설 또는 공식 발언하기 이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내놓은 2014년 드레스덴 선언도 최씨가 하루 전 받아 본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최씨가 미리 받아 열어 본 드레스덴 선언 원고 곳곳에는 붉은 글씨로 표시된 부분이 있었다고 이 매체는 밝혔다. 박 대통령이 실제 읽은 연설문에서 초안과 달리 20여군데가 수정됐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최씨 ‘첨삭’에 의해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구상을 담은 연설문이 연설 40분을 앞두고 수정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최씨가 미리 받아 열어 본 파일에는 연설문뿐 아니라 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자료도 포함돼 있었다고 JTBC는 전했다. 2014년 7월13일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 역시 최씨가 미리 받아 2시간 전 열어 본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또 박 대통령은 이튿날인 14일 강원도청을 방문해 당선 이후 첫 지방자치단체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최씨 컴퓨터에 있는 문서를 분석한 결과 최씨가 하루 전날 오전 10시17분 ‘강원도 업무보고’라는 제목의 파일을 열어 본 것으로 파악됐다고 JTBC는 밝혔다.
JTBC는 최씨가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비서관의 인사와 관련된 문서도 미리 받아 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2013년 8월5일 국무회의를 앞두고 박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사전 작성한 문서가 최씨 컴퓨터에서 발견됐는데 8월4일 최종 수정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문서 작성자를 찾아보고 아이디를 확인한 결과 청와대 대통령 최측근 참모로 확인됐다”면서 “이 문건이 왜, 누구를 통해 최씨에게 건네졌는지에 따라 파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JTBC는 최씨 컴퓨터에 있는 문서를 취득한 경위에 대해 “최씨가 대부분 사무실에서 황급히 이사가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중 한 곳에서 최씨가 건물관리인에게 처분해달라고 맡긴 게 있었다”면서 “(관리인) 양해를 받아 받은 컴퓨터에서 이 서류가 무더기로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 방송은 최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고영태씨 말을 인용해 “회장(최순실씨)이 제일 좋아하는 건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고 했다”며 최씨의 연설문 수정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청와대는 경위 파악 중이라며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청와대가 공적 시스템을 이용해 굴러가는 게 아니라 측근 비선 실세들에 의해 장악돼 농락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악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대한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