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성폭력·여혐 문제 제기…‘아카이빙’으로 잊지 않도록

2016.10.27 21:43 입력 2016.10.27 21:48 수정

여성주의 ‘페미위키’ 사이트 개설, 피해자 다양한 증언 수집 나서

출판계는 해시태그 운동으로 사례 모으고 트위터선 ‘콜렉터’ 생겨

여성주의 위키 사이트 페미위키의 ‘성폭력 피해 공론화’ 페이지. 성폭력 사건들을 시간순, 혐의별로 찾아볼 수 있다.

여성주의 위키 사이트 페미위키의 ‘성폭력 피해 공론화’ 페이지. 성폭력 사건들을 시간순, 혐의별로 찾아볼 수 있다.

문단에서 촉발된 성추문이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성폭력이나 여성혐오의 사례를 기록·저장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드러난 사례들이 개별적으로 흩어져버리고, 나아가 쉽게 잊혀지는 것을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막는다는 의미다. 기록과 저장의 아카이빙 작업은 온라인에서는 물론 실제 출판물로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7일 트위터에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자 한 사용자는 “ ‘페미위키’를 활용하자. 이 사실을 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미위키’는 여성의 목소리를 주도적으로 반영하는 플랫폼으로, 지난달 중순 문을 연 여성주의 위키 사이트다.

페미위키는 현재 인터넷의 각종 정보가 남성중심적이고 여성혐오적이라는 문제의식과 함께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남겨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페미위키 운영진은 “(기존)위키는 사회적 강자, 다수, 억압자의 논리를 반복할 뿐”이라고 밝혔다.

실제 최근 성폭력 사실이 알려진 서울 한 사립대의 교수 이름을 페미위키에서 검색하면 ‘위키피디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사실들이 게재돼 있다. 페미위키에는 그 교수의 성추행·성희롱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들의 다양한 증언과 소송 내용, 언론 보도들까지 정리돼 있다. 특히 ‘성폭력 피해 공론화’ 페이지를 만들어 시간순, 주요 해시태그별, 혐의별로 성폭력 사건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트위터에선 또 ‘미술계 성폭력 대나무숲’과 ‘사과문/입장문 콜렉터’도 생겼다. 대나무숲 계정에서는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자신이 겪은 성폭력 등에 대해 털어놓고 있다.

콜렉터 계정은 미술계 내 성폭력과 관련한 사과문, 입장문을 기록·저장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과별로 ‘여성혐오’ 아카이빙 계정까지 생겼다.

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이날 출판계 내 성폭력 사례를 긴급히 조사한다고 밝혔다.

트위터에서 이어진 성폭력 해시태그 목소리를 모은 출판물도 발간될 예정이다. 4명의 여성 직원들로 이뤄진 독립출판사 ‘봄알람’은 “ ‘#○○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잊혀지지 않게끔 출판물로 남겨두고자 한다”며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긴 공동 저작물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격월간 독립문예잡지 ‘더멀리’는 문단에서 벌어진 여성혐오, 폭력 사례 등을 모아 12월 말 출간될 제11호에 실을 예정이다. 김현 시인은 “문단 내 여성폭력 사례와 더불어 피해자들의 수기, 기성 문인들의 산문, 엽편소설들과 비평들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문학과 사회’는 겨울호에서 페미니즘을 기획특집으로 준비 중이며, ‘창작과 비평’은 “다음호 기획·편성은 이미 끝났지만 성폭력 이슈가 파장이 커 긴급으로 추가 기획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단에선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작가회의에 이어 한국시인협회도 지난 26일 “이 부끄럽고 참담한 사건을 계기 삼아 우리 문학인들이 성찰하고 신독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달라”며 회원 시인의 경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제명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성추문 논란에 얽힌 작가들의 경우 책 출간이나 강연 등이 보류되고 있다. KBS의 책 프로그램 <서가식당>은 내달 11일 방영할 예정이던 박범신 작가의 <소금>편을 무기한 보류했고, ‘문지문화원 사이’는 이준규 시인의 강좌를 폐강했다.

문학과지성사는 배용제·박진성 시인 등에 대해 “소명을 받은 후 계약 해지 등을 포함한 모든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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