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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조선인 여성 30명 총살” 위안부 학살 기록 원본 찾았다

2016.11.06 21:30 입력 2016.11.07 20:37 수정

존재와 일부 내용만 알려진 ‘미·중 연합군 작전일지’ 실체 첫 확인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 미 문서기록관리청 현지조사 통해 발굴

위안부 증언에 입증 문서 나와…‘학살 부정’ 일본에 반박 근거로

일본군의 위안부 총살을 기록한 중·미 연합군 작전일지.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 제공

일본군의 위안부 총살을 기록한 중·미 연합군 작전일지.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 제공

“(1944년 9월)13일 밤 (탈출에 앞서) 일본군이 성(중국 윈난성 등충) 안에 있는 조선인 여성 30명을 총살했다(Night of the 13th the Japs shot 30 Korean girls in the city).”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위안부 학살 사실을 기록한 미·중 연합군 문서 원본이 발굴됐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계속된 증언에도 불구하고, 학살을 실증적으로 입증할 문서를 요구하면서 학살설을 부정했다. 학살된 위안부들의 시신을 찍은 사진에 대해서도, 미·중 연합군의 포격 및 폭격으로 희생되었거나 자결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위안부 ‘학살’ 문서를 발굴·공개한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지난 7~8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현지조사를 실시해 위안부 자료 113건을 수집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일본군 포로 심문보고서를 비롯해 일본군 노획 자료 번역본, 육·해군 정보 및 작전보고서, 포로수용소 명부 및 송환선 승선 명부 자료 등이다. 연구팀은 지난 4일 서울대에서 중간보고 워크숍을 열어 자료 발굴내용과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포로수용소와 일본군 위안부의 귀환’을 주제로 발표한 이정은 연구책임자(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일본군은 패전 직후 그동안 끌고 다녔던 위안부 여성들의 존재를 은폐하기 위해 유기했고, 유기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학살이었다”면서 학살 근거로 일본군의 위안부 여성 30명 총살을 기록한 중국 윈난원정군의 1944년 9월15일자 작전일지를 공개했다. 윈난원정군은 같은 해 6월부터 중국-미얀마 접경지대인 중국 윈난성 송산과 등충의 일본군 점령지에 대한 공격을 개시해 9월7일 송산을, 1주일 뒤인 14일에 등충을 함락했다. 일본군의 위안부 총살은 등충 함락 직전인 13일 밤 탈출에 앞서 이뤄졌다.

미군이 설치한 제1오키나와포로수용소. 배봉기 할머니를 비롯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여성 다수가 이곳을 거쳤다.<br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 제공

미군이 설치한 제1오키나와포로수용소. 배봉기 할머니를 비롯한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 여성 다수가 이곳을 거쳤다.
서울대 인권센터연구팀 제공

국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다. 그러나 학문연구 성과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모으는 수준에 머물렀다. 연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자료수집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재미사학자 방선주씨(82)의 노력으로 위안부 관련 미국 자료가 언론을 통해 단발성으로 공개되곤 했으나 후속 연구는 미흡했다. 위안부 여성 30명 총살을 기록한 작전일지도 1997년 방씨를 통해 국내에 처음 존재가 알려졌지만 정작 문서 소장처는 확인하지 못했다. 알려진 내용도 일지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고, 관련 논문도 나오지 않았다. 해당 작전일지 원본의 실체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 강성현 공동연구원(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소장 자료에 대한 의존성이 극도로 높은 상황이지만, 국내 연구자가 일본 소장 자료에 접근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연합군 작성 자료뿐만 아니라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자료까지 다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미국 소장 자료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박정애 공동연구원(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초빙교수)은 김소란(가명)·박영심·공점엽·문옥주 등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살피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관계자료를 함께 공개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를 가지지만, 국제 외교현장에서 자료로 입증되는 증언의 의미는 또 다를 수밖에 없다. 박 박사는 “연구자는 증언과 유관 자료를 최대한 수렴해서 교차분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 “이를 통해 역사적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데 증언이 어떤 힘과 가치를 가지는지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이 필리핀과 오키나와에 설치한 일본군 포로수용소 자료를 다수 발굴한 것도 이번 연구의 성과다. 연구팀은 필리핀 수용소에서 작성한 조선인 위안부 43명의 포로등록카드와 함께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본으로 향한 송환선 승선 명부를 확인했다. 전갑생 공동연구원(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은 “포로등록카드와 승선 명부를 교차분석하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인 위안부 규모는 최대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36명 외에는 어떤 피해여성이 있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전 연구원은 “포로등록카드에 피해여성의 본적지까지 기록되어 있다”면서 “연구가 진행되면 알려지지 않은 채 돌아가신 분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살아계신 분들이 어디서 어떻게 계시는지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내년 중 발굴자료 영인본과 함께 번역 및 연구해제를 담은 자료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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