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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 최순실 인사 청탁한 대한항공 직원 성추행 ‘구명 로비’

2016.11.17 06:00 입력 2016.11.18 10:00 수정
강진구 기자

조양호 회장 측근 증언…평창 이권 노린 고강도 압박도

김종덕 ‘진돗개 마스코트’ 출장에 자가용 비행기 ‘징발’

[단독]안종범, 최순실 인사 청탁한 대한항공 직원 성추행 ‘구명 로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측근이 털어놓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청와대의 압력은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려동물인 진돗개를 올림픽 마스코트로 선정하기 위한 해외출장에 조 회장의 자가용 비행기를 띄우도록 하는가 하면, 최씨가 민원한 대한항공 직원의 성추행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동원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순실 게이트는 아직도 더 많은 ‘뇌관’이 잠재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조 회장의 측근 인사 ㄱ씨는 16일 “(최씨와 측근들이) 조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하던 시절 3500억원짜리 개·폐회식장 공사부터 3억5000만원짜리 컨설팅까지 완전히 싹쓸이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씨 민원이라고 하면 쉽게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런 얘기도 안 해주니 회장은 ‘1000만원 이상 결제는 조직위원장 사인을 받으라’ 했고 그러다 눈 밖에 나서 조직위원장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b>검찰 소환된 김종 전 차관</b> 최순실씨의 추천으로 차관이 됐다는 등의 의혹을 받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br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검찰 소환된 김종 전 차관 최순실씨의 추천으로 차관이 됐다는 등의 의혹을 받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ㄱ씨는 조 회장이 올해 5월 사퇴하기 전에도 올림픽 마스코트 선정과 관련해 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마스코트를 호랑이로 하기로 했는데 지난해 여름부터 갑자기 대통령이 키우는 진돗개로 하라는 압력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이병기 비서실장한테 왜 대통령이 호랑이를 싫어하냐고 했더니 ‘전두환이 88올림픽 때 써서 그런가 보다’라고 말하더라”며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실무그룹 회의 때부터 ‘개는 마스코트로 쓸 수 없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확고히 밝혔다. 지난 3월 IOC 실사단이 실사를 왔을 때 당시 김종 문체부 차관이 직접 강릉까지 내려와서 개의 장점을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애초에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과 김 전 차관이 IOC의 공식 입장을 무시한 채 ‘대통령 민원’이라며 무리수를 둔 게 원인이었다. 하지만 엉뚱하게 청와대는 조 회장에게 “그것도 하나 해결하지 못하냐”고 책망했다. 조직위원장은 아무런 실권도 없이 최씨와 청와대, 문체부 장차관의 수족에 불과했던 셈이다. ㄱ씨는 “개·폐회식 행사 총감독으로 조 회장이 청와대에 가서 송승환씨를 추천해 결재받고 나왔는데 10분도 지나지 않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을 알려줬다”며 “10분 사이에 대통령이 최순실과 통화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물론 조 회장 측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특히 김종 전 차관을 겨냥해 청와대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ㄱ씨는 “조 회장이 경복고 선배인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제발 김 차관 좀 인사조치 해달라’고 했는데 이 실장이 ‘김 차관은 나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때부터 ‘도대체 김 전 차관의 배후가 누구일까’ 의구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ㄱ씨에 따르면 한진그룹이 김종덕 전 장관과 김종 전 차관 배후에 있는 ‘최순실’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한 것은 지난 6월 무렵이었다.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대한항공 사장에게 ‘최순실씨 민원’이라며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고모씨를 제주지점장으로 발령내라고 청탁하면서다. ㄱ씨에 따르면 고씨는 최씨의 측근 인사인 고영태씨의 친척이었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의 조직위원장 사퇴 후 청와대와의 불편한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원하는 곳으로 전보발령을 냈지만 얼마 못 가 고씨는 사내 성추행 의혹에 연루됐다. ㄱ씨에 따르면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대한항공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성범죄를 저질러 당연히 파면시켜야 할 직원을 청와대 수석이 전화해서 살려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혀를 찼다. 한진그룹이 공식적으로 부인해왔던 청와대와 최씨의 인사청탁은 물론 성추행 직원에 대한 구명로비에 청와대 수석이 동원된 사실까지 확인해준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의 고씨 구명로비는 실패했다. ㄱ씨는 “이 사건 이후 청와대가 ‘뚜껑이 열리면서’ 한두 달 사이에 한진해운 사태가 벌어졌으며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한진을 겨냥해)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에 특정 기업을 상대로 그런 얘기를 한 경우가 있었느냐”며 “결국 최씨 민원 하나 해결하지 못한 것 때문에 (한진이)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조 회장 최측근으로 알려진 ㄱ씨가 나름대로 한진 사태를 정리한 것이지만 의문은 남아 있다. 특히 그는 지난해 초 최씨가 조 회장과의 독대에서 금품을 요구한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렇다면 안 전 수석은 지난 6월 한진그룹 내 누구도 그 정체를 알지 못했던 최씨를 거론하며 어떻게 인사청탁을 할 수 있었을까. ㄱ씨의 증언은 최씨와의 관계에 대한 상세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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