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당국이 현대기아자동차의 현지 협력업체에 30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했다. 지난 6월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망한 책임을 원청에 물은 것이다. 발주처인 현대기아차는 직접적인 제재는 피했지만 “협력업체 제품에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면서 그것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한국 노동당국도 이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지난 14일 앨라배마주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아진USA와, 이 회사에 인력을 공급하는 파견업체 2곳에 안전관리 의무이행 소홀 등으로 총 256만5000달러(30억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OSHA는 지난 6월 아진USA 공장 조립라인에서 하청업체 직원 레지나 엘시아(20)가 숨진 뒤 조사를 벌여 왔다. 엘시아는 센서 오작동을 해결하기 기계 장비 뒤편을 살펴보던 중 갑자기 작동한 장비 틈새에 끼어 변을 당했다. 그는 당시 결혼을 2주 앞둔 예비 신부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아진 USA는 한국에 본부를 둔 아진산업의 자회사로, 현대기아차에 자동차 프레임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다. 엘시아는 아진USA가 직고용한 직원이 아닌 인력 파견업체 ‘얼라이언스 LLC’ 소속이었다. 발주처→협력업체→파견업체로 내려오는 하청구조의 최말단에 속해 있었다.
한국에서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을 때 원청에게 높은 책임을 지우는 일이 드물지만 미 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공장을 운영하면서 하청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지시·감독권한을 갖는 아진USA에 책임이 있다고 봤다. OSHA는 성명에서 “23건의 ‘심각하고 반복적인’ 안전수칙 위반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OSHA는 엘시아 사망에 대한 최종 책임은 발주처인 현대기아차에 있다고 봤다. 데이비드 마이클 OSHA 부국장은 “현대기아차의 생산 목표치가 너무 높아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6~7일간 일을 해야 한다”며 “협력업체들이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절차를 무시했고, 노동자들의 생명과 신체를 훼손시키고 있다”고 했다. 마이클 부국장은 이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지난해 한국을 찾아 현대기아차 고위 임원들까지 만났다고 밝혔다.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에 수십억원대 벌금을 부과하는 미국과 비교해 한국 노동당국의 제재는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달 고용노동부는 10명의 원·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현대중공업에 이례적으로 높은 과태료(8억8000만원)를 부과했으나, 이후 노동자 1명이 더 사망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위험이 파견·비정규직·하청 노동자로 집중되는 현실에서 원청 기업에 현실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제재 부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