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매일 공개하는 노숙인의 교회 “교회는 키우는 게 아닙니다”

2016.12.22 21:35 입력 2016.12.22 22:51 수정

드림씨티교회 우연식 목사

서울 동자동에 있는 드림씨티교회 정문. 노숙인들이 삶의 의지를 갖도록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 동자동에 있는 드림씨티교회 정문. 노숙인들이 삶의 의지를 갖도록 돕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12월19일. 후원내역 : 홍선미님 1만원, 정상수님 5만원…. 총액 18만원. 금일잔액 : 3790만9836원.

12월20일. 후원내역 : 양실공동체 교회 5만원, 박종기님 1만원, 이정은님 2만원…. 후원총액 193만8450원. 지출내역 : 운임 2만5000원, 인터넷 사용료 4만3990원. 금일잔액 : 3977만9296원.

서울역 근처에 있는 드림씨티교회 홈페이지에는 매일 이 같은 결산 내역이 올라온다. 당일 누가 얼마나 후원했는지, 얼마를 주고 무엇을 샀는지를 꼼꼼히 기록하고 현재의 잔액을 공개한다. 11월 결산 내역을 보면 전체 후원금액은 1285만7131원이며 커피 자동판매기를 통해 얻은 수익도 37만9800원으로 기록돼 있다. 각종 비품과 집기 등의 지출내역을 비롯해 담임목사의 월 급여도 쓰여 있다. 138만1000원이다.

드림씨티교회 1층에서 우연식 목사(오른쪽)가 라면을 나눠주고 있다. 이준헌 기자

드림씨티교회 1층에서 우연식 목사(오른쪽)가 라면을 나눠주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하루도 빼지 않고 재정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드림씨티교회가 여느 교회와 다른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노숙인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교회가 여럿 있지만 이 교회는 노숙인이 주된 구성원이다. 교회의 문은 365일, 24시간 열려 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노숙인들의 쉼터이자 예배당으로, 2층과 3층은 숙식과 교육 공간으로 사용한다. ‘장로’ ‘집사’ 등 일반 교회와 같은 직분이 없고 헌금도 없다. 우연식 목사(53)는 “교회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삶의 의지를 찾아 잘 떠나 보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호단체에서 일했던 우 목사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에서 홈리스를 대상으로 한 사역을 했다. 2011년 귀국해 현재의 건물 1층을 빌려 교회를 열었다. 무료 급식에 치중하는 일반 교회와 달리 노숙인들도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주머니를 털었다.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는 일뿐 아니라 영화상영, 바둑, 컴퓨터, 노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약품과 생활용품, 먹을거리를 나누었고 각종 강습 프로그램과 부업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영역을 확대했다. 현재는 무료 법률상담과 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 자원봉사자들도 늘었다.

초기엔 행패를 부리는 노숙인 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에 대한 입소문이 퍼져갔다.

하루도 빠짐없이 결산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모습이나 교회의 설립 취지에 감동을 받았다는 후원자들도 꾸준히 늘어났다. 덕분에 설립한 지 1년6개월 만에 세들어 있던 건물 4개층을 빌릴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후원금은 매월 평균 1500만원 정도다. 건물 임대료 580만원과 130만~140만원 정도의 우 목사 사례비를 제외하고는 노숙인의 자활을 돕고 베푸는 데 사용된다.

여기서도 알뜰살뜰 아껴 남은 후원금은 노숙인을 위한 무료진료소 설립 기금으로 모으고 있고 이 내역도 자세히 공개한다. 우 목사는 “후원해주시는 분 중에서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 분들도 상당수 계신다”고 말했다.

매일 교회를 찾는 노숙인들은 300~400여명. 매 주일 오후 1시10분에 열리는 주일예배에도 130여명의 노숙인들이 꼬박꼬박 참여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은 채 낮고 추한 이 땅으로 오셨어요. 낮은 곳에서 함께하신 예수님의 모습이야말로 기독교의 정신이고 교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이 사회가 교회를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런 모습 아닐까요. 제 목회의 꿈이자 기도 제목은 죽을 때까지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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