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 현장, 낭만을 믿으세요?

2017.02.01 21:18 입력 2017.02.01 21:20 수정
김현아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

의사들은 이른바 메디컬 드라마에 시큰둥하다. 시큰둥한 정도를 넘어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그만큼 이 드라마들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의사들이 더 열광한 메디컬 드라마가 있었다. 얼마전 종영한 SBS의 <낭만닥터 김사부>이다.

[기고]의료 현장, 낭만을 믿으세요?

출중한 실력을 가진 한 의사가 정치 싸움에 지고 중상 모략에 몰려 대형 병원에서 내쳐진 후 시골의 작은 병원에 은둔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내가 워낙 시니컬한 성격이다 보니 드라마의 문제점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무대가 되는 ‘돌담병원’의 위치상 외상 응급 환자를 주로 다루게 되고 당연히 극적인 일들이 매일 일어나게 된다. 그 점이 내과 의사로서는 제일 섭섭했는데, 의료 현장에서 이런 보여줄 만한 일들은 10%도 되지 않는 작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옹졸한 내과 여의사의 시각으로 보는 이런 흠들에도 불구하고 <낭만닥터 김사부>가 의사들에게 환호를 받았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김사부가 아닌 돌담병원이라고 생각한다. 의료의 최일선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없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 병원은 의료가 첨단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 병원은 기껏 환자를 치료해 놓고도 “이런 병원에서 치료받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행패를 부리는 덜떨어진 사람들, 심지어는 큰 수술 성공의 성과조차 도둑질하는 사람들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꿈을 잃지 않은 젊은 의사들을 끌어모은다.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거대병원’ 원장의 아들인 도인범이었는데, 그는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다른 흙수저 의사들과 달리 아버지의 후광으로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었지만 돌담병원에 남는 비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이 드라마의 악역들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의사들의 전형인 반면 도인범은 진정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낭만’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사실 드라마 끝까지 내가 궁금하게 생각한 것은 돌담병원 의사들이 거대병원으로 복귀하는 결말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드라마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이들이 돌담병원에서 계속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모습으로 종영되었다. “세상에는 의사 사장보다는 의사 선생님으로 남기 원하는 의사들이 더 많아”라는 김사부의 명언을 남기고….

세상이 어지럽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의 최첨병인 미국 의사들도 놀라는, 재벌들에게 거대한 병원 운영을 허락하고 이들이 의료의 헤게모니를 다시 짜도록 방조한 나라이다. 덕분에 당연한 직업 윤리가 낭만이 되는 웃지 못할 현실이 초래되었다. 이런 현실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멋진 메디컬 드라마를 탄생시킨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왜 이런 당연하고 중요한 일들, 사람의 생명을 사심없이 살리는 일이 돈이 될 수 없는가,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일이 되는가 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의사 사장’도 부족해서 ‘의사 사기꾼’이 속출하는 현실을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의 일탈로만 본다면 문제의 해결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돌담병원이 자신의 삶에 대해 대오 각성한 악덕 사채업자 출신 회장에 의해 외상센터로 발전할 것을 암시하며 끝을 맺는다. 이것은 드라마일 뿐이지만 현실에서는 국가가 왜 여기에서 빠져 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이런 중요한 일들이 재벌, 심지어는 사채업자의 돈이 아니면 해결이 안되는 나라, 의사들의 낭만에나 의지해야 하는 나라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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