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촛불광장 구상 중”…“작은 것부터 해 보세요”

2017.03.23 21:15 입력 2017.03.23 21:22 수정

박원순 서울시장, 시민참여 플랫폼 ‘루미오’ 설립자와 활용 방안 논의

시민의 목소리 정책 반영이 과제…토론까지 가능한 ‘창’ 구상

시도 자체가 중요한 것…참여하면 변화한다는 것 보여야 성공

박원순 서울시장과 ‘루미오’의 공동설립자 리처드 바틀렛(왼쪽에서 세번째)이 22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50여분간 대담을 나눈 후 대담을 지켜본 시민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박원순 서울시장과 ‘루미오’의 공동설립자 리처드 바틀렛(왼쪽에서 세번째)이 22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50여분간 대담을 나눈 후 대담을 지켜본 시민 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서울시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부서부터 시작하면 할 수 있어요.”

시민참여형 온라인 플랫폼 ‘루미오’의 공동설립자 리처드 바틀렛(34·뉴질랜드)은 루미오처럼 직접민주주의의 성격을 더한 시민 의사결정 플랫폼을 서울시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작은 부서에서 시작해 활용 범위를 넓혀가면 서울시도 디지털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22일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만난 박원순 서울시장과 바틀렛은 온라인 플랫폼과 시민참여,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사회혁신 방안을 모색했다. 두 사람은 ‘촛불광장’ 이후 분출되는 시민들의 정치참여 열망을 풀어낼 대안으로서의 디지털 플랫폼은 무엇인지, 플랫폼 도입과 활용에 무엇이 필요한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박 시장은 먼저 “서울은 디지털 분야에서 앞섰지만, 활용에 있어서는 뒤처진 게 사실”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기술은 있지만, 시민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촛불광장이 끝난 지금, 시민들이 광장에 물리적으로 모이지 않고도 일상이라는 삶의 광장과 온라인에서 다양한 요구와 제안을 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바틀렛은 “루미오 같은 플랫폼을 만들려는 도시가 많고, 이는 매우 혁신적인 시도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시의 시도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300~400년 이상 된 정치 시스템을 빠른 시간 안에 대체하기란 쉽지 않지만 한국의 민주주의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데서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바틀렛은 “2015년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경찰은 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한 시민(고 백남기씨)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1년 후인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촛불집회를 목격했다. 시민들은 부패한 통치자의 마지막을 축하하고 있었다. 변화는 갑작스럽고도 빨리 이뤄졌다”며 감탄을 표했다.

루미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상호 소통과 의사결정을 돕는 플랫폼으로 전 세계 93개국에서 시민 합의 도출에 이용된 바 있다. 누구나 원하는 주제로 대화창을 열면 자유로운 토론과 찬반 투표를 거쳐 의견을 모을 수 있다. 현재는 뉴질랜드 웰링턴 시의회와 스페인의 제3정당인 포데모스 등이 활용하고 있다. 한국에도 포털 다음의 아고라 같은 온라인 공론장이 존재하지만 현재는 단순 게시판으로 역할이 축소된 상태다. 박 시장은 “조직화된 시민의 목소리를 두려워한 정부가 기능을 정지시켰다”며 정치적 압박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시장 취임 때 간부들에게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며 “ ‘원순씨’라고 부르게 한 것도 서울시에 동등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소개했다. 바틀렛이 디지털 직접민주주의 도입에 ‘진솔한 정치적 의지’가 중요하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는 플랫폼 자체보다 누구나 의견을 내고 서로 책임질 수 있는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또 “서울시도 루미오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고민하고 있다”며 “기존에는 단순 피드백만 줄 뿐 토론 과정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천만상상 오아시스’와 ‘엠보팅’ 등 기존 시민의견 수렴 플랫폼의 한계를 극복한 ‘디사이드 서울(Decide Seoul·가칭)’을 만들기 위한 기획이 시작된 상태다. 바틀렛은 디지털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위해 시민이 실제 변화를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가 참여 기회를 원하면서도 희망이 없어 참여하지 않게 된다. 투표를 거듭해도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투표를 안 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며 규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체감 가능한 변화를 위해 루미오 역시 소규모 조직에 맞게 디자인됐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루미오는 풀뿌리 단계에서 시민의 의견을 모으고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과정에 이상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며 “위계질서가 없는 소규모 그룹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을 하기에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대담 막바지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생각을 묻자 바틀렛은 “나에게 묻지 말라”며 의외의 답을 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온 백인 남자에 불과합니다. 한국을 모릅니다. 나 말고 시민에게 물어보세요. 더 좋은 의견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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