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하지 못한 학살자, 다시 ‘역사 쿠데타’

2017.04.05 22:35 입력 2017.04.05 22:36 수정

전두환 회고록, 5·18 민주화운동 등 왜곡 ‘역사 농단’ 논란 확산

광주 5·18단체 “법적 대응”…“적폐 사면의 민낯 드러나” 비판

청산하지 못한 학살자, 다시 ‘역사 쿠데타’

전두환 전 대통령(86·사진)이 퇴임 29년 만에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을 두고 ‘역사 쿠데타’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양민학살 등에 대한 정부·국회·법원의 공적 역사 기록을 모두 부정한 때문이다. 헌정을 농단한 쿠데타 주범이 역사를 농단하는 두번째 ‘쿠데타’를 시도한 것이어서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18 관련 단체들은 5일 “37년 만에 다시 쿠데타를 당한 기분”이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적폐 사면’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전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5·18 사태 발단에서 종결까지 과정에서 내가 직접 관여한 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책임을 부인했다. 12·12 반란에 대해서도 “10·26을 공모한 ‘피의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한 사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1997년 대법원 확정판결,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등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방부 과거사위가 확인한 군 기밀자료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5·18과 관련한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군 수뇌부 회의에 참석했으며, 특히 군의 발포를 묵인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자위권 발동’을 ‘강조’했다.

전 전 대통령이 동원한 논리는 ‘상대적 진실’이다. 그는 회고록을 “실체적 진실에 관한 논란과 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당대의 역사서”라며 “내가 믿는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은 읽는 분들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의 주관적 기억인 회고록을 역사로 매김해 이미 정리된 역사적 사실을 전복하려는 의도다. 특히 10여년을 준비해온 회고록을 최근 전격 출간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 정치세력이 몰락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등장한 ‘태극기 부대’ 등 강경 보수층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법원·검찰 등의 수사나 재판을 거쳐 자세한 사실이 다 드러나 있고, 국민들 절대다수가 상식으로 공유하고 있다”며 “(회고록은) 퇴행이자 거대한 역사적 반동”이라고 비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사면받았을 뿐 여전히 ‘유죄’다. 1997년 12월22일 퇴임을 2개월여 앞둔 김영삼 대통령이 그를 사면한 명분은 ‘국민 화합’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한 회고록은 사면 취지인 국민 통합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광주 5·18기념재단과 5·18 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회고록에 언급된 조비오 신부 유족과 상의해 “유족 의사가 있으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등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지난 3일 페이스북에서 “역사를 올바로 청산하지 않으면 청산의 대상들은 언젠가 이렇게 다시 튀어나와 망발을 일삼기 마련이다. 섣부른 용서는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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