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 신화 논란

'심일 소령' 그는 진짜 영웅인가

2017.04.25 08:11
박성진 기자

1950년 6월 25일 남침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서울 방어선은 3일만에 무너졌지만, 북한군 2군단은 국군의 저지를 뚫지 못하고 춘천에서 3일간 발이 묶였다. 한국전쟁사에 ‘춘천 대첩’으로 기록된 이 전투는 한국군 최초의 승리였다. 국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 참전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심일 소령 흉상

심일 소령 흉상

그동안 군당국에 따르면 ‘심일 소령과 육탄 5용사’는 이 춘천 전투의 주인공들이다. 당시 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이었던 심일 소령은 6월 25일 북한군 SU-76 자주포에 맞서 자주포를 향해 포탄을 쏘아 명중시켰으나 끄떡하지 않자, 5명의 특공조를 편성해 수류탄과 휘발유를 넣은 사이다병을 들고 육탄 공격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적 자주포 2대를 파괴한데 이어 6월 26일에는 춘천시내로 들어온 적 자주포 1대를 단독으로 파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 소령은 28세에 숨진 것으로 돼 있고, 이후 한국군 최고 등급인 태극무공훈장과 미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후 심일 소령은 대표적인 전쟁 영웅으로 육탄 5용사와의 무용담이 군사정권 시절 교과서에 ‘심일 소대장을 선두로 5인의 특공대가 북한군 탱크에 뛰어올라 포탑의 뚜껑을 열어 수류탄과 화염병을 던지고 뛰어내리자 불길이 치솟으면서…’라고 실렸다.

육군에선 2003년부터 가짜 논란이 불거지기 전인 2015년까지 매년 가장 우수한 전투중대장을 선발해 ‘심일상’을 수여했다. 국가보훈처는 2011년 ‘이달의 6·25 전쟁 영웅’을 제정했을 때 그를 첫 번째로 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춘천전투 당시 심일 소령이 소속돼 있던 7연대 중대장 이대용 전 베트남 주재 공사가 조선일보에서 “심일 소령의 신화는 거짓”이라고 증언하면서 그의 공적 문제가 공론화됐다.

육군은 이미 36년 전에 ‘도망가면서 태극훈장을 수여한 군대가 어디 있느냐’는 진정 내용을 접수한 후 심일 소령의 공적을 확인한 후 허위로 결론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육군군사연구소는 “1981년 당시 육군본부가 ‘심일 소령의 태극무공훈장 수여는 잘못된 것’이라는 진정서를 받고 진상조사를 실시한 후 심 소령의 공적을 허위로 결론내렸다”고 밝혔다.

1981년 육군본부 인사참모차장(준장)으로 진상조사 책임자였던 박경석 장군은 “6·25전쟁 때 심 소령 주변 인물과 근처에 있던 장병들 수십명이 허위 날조라고 했고, 단 한 사람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김홍한 인사참모부장(소장)에게 보고한 후 태극무공훈장 삭탈을 건의했다”며 “그러나 전두환 정권 출범으로 어수선한 때였던 탓에 훈장 삭탈 실행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방부의 ‘고 심일 공적 확인위원회’는 “박경석 장군의 주장과 관련한 서류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며 “당시 근무했던 군무원들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