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음악감상, 작곡가 ‘통합적 마음 세계’ 사유해야

2017.05.05 19:03 입력 2017.05.05 19:15 수정
문학수 선임기자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

김진호 지음 | 갈무리 | 696쪽 | 3만원

김진호 안동대 교수는 저서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를 통해 음악을 감성으로만이 아니라 이성으로도 듣자고 말한다. 사진은 하프시코드 교습 장면을 그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페이메이르의 그림.

김진호 안동대 교수는 저서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를 통해 음악을 감성으로만이 아니라 이성으로도 듣자고 말한다. 사진은 하프시코드 교습 장면을 그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페이메이르의 그림.

이 책은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다. 특히 음악을 주로 감성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왔거나, 음악을 통해 위로를 갈구해왔던 청취자에게라면 더욱 그럴 법하다. 특히 이런 대목에서다. “음악은 인식 능력을 키우는 계몽적 프로젝트여야 한다. 이런 프로젝트가 아닌 음악감상은 인간 종의 생존을 낮추는 데 일조하는 청각적 마약일 수 있으며, 그런 음악을 즐겨 듣는 당신은 음악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다.”

이 언술만 놓고 본다면, 저자가 음악을 이성적이고 계몽적인 것, 혹은 도구적인 것으로 한정한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음악을 가슴으로 느끼기보다는 머리로 이해해야 한다는 선언적 권유로 들리기도 한다. ‘작곡, 지식과 반영’이라는 책의 부제를 보면서 그런 의구심이 한층 커진다. 저자는 “음악에 대해 생각하라”고 권유하면서 음악을 감상이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과 삶]음악감상, 작곡가 ‘통합적 마음 세계’ 사유해야

그렇다면 음악에 감각적으로 몰입하지 말라는 뜻일까. 예컨대 서양음악사의 여러 흐름 중에서도 낭만음악은 특히나 몰입성이 강하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어딘지 자폐적이면서도 듣는 이의 마음을 흠뻑 적셔놓는다. 또 바그너의 드라마틱한 선율은 청취자를 ‘음악의 성전’으로 유혹해 꼼짝 못하게 붙들어 맨다. 저자의 지적대로라면 그런 몰입은 ‘마약 중독’과도 같은 것이니 금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슨 재미로 ‘시간을 버티면서’ 음악을 듣는단 말인가.

저자의 학구적 언술들 속에서 대중적으로 유의미한 표현들을 찾아내는 것이 수월치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약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자가 감각적 음악청취의 경험을 아예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그는 감각하고 지각하며 감동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져온 음악, 다시 말해 ‘현실로부터 유리된, 추상화된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기를 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음악을 현실적 사유의 대상으로 확장함으로써 음악의 본질에 한층 다가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일단 ‘음악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저자는 “통합적 마음의 산물”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이 ‘통합적 마음’은 국내에도 번역돼 있는 <마음의 역사>의 저자 스티븐 미슨이 사용한 진화심리학 용어인데, 이 책에서도 유의미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미슨에 따르면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통합적 마음’을 가지면서 다른 동물과 차별화됐다. 그것은 “자연사적 지능과 기술 지능, 사회적 지능, 언어 지능이라는 영역 특이적 지능들로 구성”되는데, “이 지능들이 연결돼 있어 마음은 통합적”이라는 설명이다. 그 통합적 마음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약 3만5000년 전의 조상이 통합적 마음을 장착하여 최초의 음악을 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이 기본 원리는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고전주의 음악가 모차르트는 물론이거니와 현대 음악가들에 이르기까지 “예술적 음악의 기저에는 통합적 마음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는 “음악을 통합적 마음의 산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해진다. 한 곡의 음악 속에는 인식, 사유, 판단 등 그 곡을 썼던 작곡가들의 ‘마음 과정’이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음악을 들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 요소들조차도 인식이나 사유와 곧바로 연결돼 있다고 강조한다. “정서는 대상에 대한 특이한 판단이며 지능이다. 그것은 즉각적으로 사유와 개념을 동반한다.”

이 책의 주장은 최근 유행하는 ‘호모 무지쿠스’라는 개념과도 결이 다르다. 러시아의 음악학자 디나 키르나르스카야는 “음악을 창조하고 연주하며 듣는 인간”으로 ‘호모 무지쿠스’를 내세우면서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오래된 존재로 여긴다. 실제로 젖먹이 아기들이 ‘오르르 까꿍!’에 반응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인간 고유의 음악을 설명하면서 호모 무지쿠스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만 음향(사운드)일 뿐 어떤 의미를 품은 음악, 혹은 사회적 산물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음악감상자들에게 이런 조언을 남긴다. “감각과 지각을 훈련해주고 쾌감을 주는 음악감상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여기에 사유를 연결해 마음의 통합성을 극대화한다면 세상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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