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소신투표 비판하는 '정치 홍대병'이란 말을 아십니까

2017.05.08 14:59

정의당 심상정 후보 지지자인 김다영씨(가명·26)는 얼마 전 친구와 크게 다퉜다. 김씨가 페이스북에 “사표가 되더라도 소신투표를 하겠다”는 글을 올리자 한 친구가 “정치 홍대병에 걸렸다”고 조롱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김씨에게 “시국이 이런데도 심상정 후보를 찍겠다는 건 남들과 달라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니냐”며 “소수자 감성있는 척 그만두고 될 것 같은 후보를 찍으라”고 댓글을 달았다.

결국 김씨는 해당 글을 삭제했다. 하지만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2년째 정의당 당원인 김씨는 “오랜시간 고민해 내린 결정을 ‘홍대병’이란 말로 깎아내려 어이가 없었다”며 “사표가 될지라도 모든 표는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선을 하루 앞둔 8일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정치 홍대병’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치 홍대병이란 남들과 다르게 보이려고 하는 ‘비주류 감성’ 때문에 지지율이 낮은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미다. 주로 군소 진보정당 후보 지지자들을 조롱하는 말로 쓰인다.

원래 ‘홍대병’은 대중적인 음악이나 음식을 거부하고 비주류 또는 마니아 취향을 지닌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로 사용됐다. ‘남들이 잘 모르는 비주류 예술인’을 좋아하는 팬들의 자부심을 비꼬는 말로 쓰였다. 대선에서 각 후보 지지자간 논쟁이 격화되면서 이 홍대병에 ‘정치’란 단어를 접목한 신조어인 ‘정치 홍대병’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해 1월15일 방송된 tvN ‘콩트앤더시티’에서 개그우먼 장도연씨가 일명 ‘홍대병’에 걸린 환자 연기를 펼치고 있다. ‘콩트앤더시티’ 방영분 갈무리

지난해 1월15일 방송된 tvN ‘콩트앤더시티’에서 개그우먼 장도연씨가 일명 ‘홍대병’에 걸린 환자 연기를 펼치고 있다. ‘콩트앤더시티’ 방영분 갈무리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상에는 “정치 홍대병에 걸려 마이너 감성으로 사표를 만들어 정권교체를 방해하지 말라”, “결국 모 후보가 당선되면 정치 홍대병 환자들은 무임승차 하는 게 아니냐”는 등의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일부 보수 성향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지지자인 이모씨(61)는 “국가 위기상황에 소신투표는 자살행위다”, “진짜 보수가 따로 있나. 대세 후보로 단결해야 한다” 등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하루에 10여통씩 받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대선이 다가올 수록 이런 문자가 더 많이 오고 있다”며 “‘사표를 만들어 나라가 종북 세력에 넘어가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양혁승 연세대 교수(유권자운동본부 본부장)는 “사표론에 지나치게 매몰돼 다른 사람의 주권행사를 제약하려는 행위는 장기적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정권교체 등 시대의 흐름이 크게 바뀔 때마다 전략투표와 소신투표를 두고 유권자들은 큰 갈등을 하게 된다”면서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유권자 개인의 주도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대선 후보가 얼마나 표를 받느냐는 문제는 단순히 ‘대통령이 되냐 안 되냐’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면서 “후보가 대통령 당선에 실패하더라도 향후 정치권에서 그가 추구한 정책이 어떻게 반영될지를 가늠하게 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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