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서거 8년, 다시 찾은 봉하마을

2017.05.20 13:33 입력 2017.05.20 13:37 수정

끊이지 않는 추모행렬…5월 한달 간 주말 사저도 공개

8년 전, 비극의 장소 부엉이바위로 올라가는 길. 추모객들이 돌탑을 쌓았다. / 정용인 기자

8년 전, 비극의 장소 부엉이바위로 올라가는 길. 추모객들이 돌탑을 쌓았다. / 정용인 기자

봉하마을 1.5㎞. 녹색표지판에 정식으로 적혀 있는 글자.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윽한 찔레꽃 향기 같은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을 노무현의 이름으로 축하드립니다.-김해 노사모 일동” 많은 상념이 스쳐지나간다. 벌써 8년이다.

8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다음 주 <주간경향>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해 ‘식지 않은 추모 열기’를 취재했다. ‘봉하마을’은 국가의 공식 도로안내판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0-6.’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어 갔다. 그에 앞선 주말. 덕수궁 앞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 국화꽃을 들고 추모하러 가는 시민의 발길을 경찰이 막았다. 뚫고 들어가려는 시민은 격리돼 끌려갔다. 국화를 든 가족을 병력으로 에워쌌다. 군복을 입고 가스총을 든 보수단체 인사들은 새벽에 몰려가 시민분향소를 부수고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전리품처럼 치켜들었다.

8년 전 봉하마을의 밤. 어둑해진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부엉이바위를 경찰의 서치라이트가 비추고 있었다. 만일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지만 후안무치한 풍경이었다.

민주주의 성지… 그 후 8년

대통령 서거 후 계속된 추모 열기를 다룬 <주간경향> (당시 제호 Weekly경향) 표지.

대통령 서거 후 계속된 추모 열기를 다룬 <주간경향> (당시 제호 Weekly경향) 표지.

서거 후에도 봉하마을을 찾는 추모객들의 발길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당시 <주간경향> 표지를 장식한 이 ‘현상’을 표현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봉하마을, 민주주의 성지 되나.” <주간경향>이 다시 봉하마을을 찾은 것은 5월 16일. 여전히 부엉이바위는 아무 말 없이 그곳을 찾은 추모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관광버스가 정차하던 텅빈 공터였던 자리에는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아주 작은 비석’이 마련돼 있다. 넓적한 비석 주변엔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금으로 마련한 박석이 박혀 있다. 비석에는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글자만 새겨져 있다. 다시 밑의 동판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 대통령의 생전 어록이 신영복 선생의 글씨로 새겨져 있다. 신영복 선생도 지난해 1월 타계했다.

평일 오후지만, 간간이 이어지는 추모객의 행렬은 계속됐다.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가신 게.” 경기도 안성에서 근처에 다른 업무차 왔다가 들렀다는 정명훈(33), 정유진(여·29) 부부의 말이다. 세 살배기 딸과 함께 왔다. 오늘 처음으로 온 것이라고 했다. 물었다. 안 돌아가셨다면, 좋은 일을 하셨을까. “그럼요, 그럼요.” 옆에 서 있던 부인 정유진씨가 적극적으로 말했다.

남편 정명훈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치에 무지해서 잘 몰랐는데, 뒤늦게 뉴스를 뒤져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돌이켜보니 괜찮은 분이었다는 것을요.” 어떤 영상이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에 그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 때 공무원들 앞에서 노 대통령이 자신이 다 책임질테니,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해복구를 해달라고 부탁하던 영상과 전시작전통제권을 두고 국방부 고위간부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날 방문객들 중에는 정씨 부부처럼 가족단위로 온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대구에 사는 최수정(여·42), 정한덕(41)씨 부부도 앞의 부부처럼 이번이 첫 방문이라고 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딸을 데리고 1시간30분 걸려 봉하마을에 왔다. 최씨가 말했다. “오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시간이 주말밖에 안나고, 또 주말에 오면 복잡하니 큰 결심하고 시간을 내게 되었어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한 번도 투표 한 적이 없던 최씨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TV에서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났다”고 회상했다.

“참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으로 노 전 대통령 관련 기사나 일화를 찾아보면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그냥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면서 가슴에 뭔가 남겨진 것이 있었습니다.” 최씨 부부가 사는 곳은 대구다. 지역정서상 그런 감정을 주변에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맞아요. 그래도 저 같은 사람도 많습니다. 말만 안하고 있지 가슴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 말이에요.” 최씨는 그 뒤로 정치에 대해 많이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눈물이 나오는데 주변에 민망해서 삼키고 있다’는 최씨에게 ‘남편보다 더 적극적인 것 같다’고 말을 건네니, 저만치 떨어져 있던 남편 정씨가 “끌려다닙니다”라면서 미소를 보였다. “아이들에게도 설명해주던 참이에요. 문재인 대통령은 아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군지도 잘 모르거든요.”

5월 16일,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을 찾은 추모객들이 고개 숙여 묵념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5월 16일,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을 찾은 추모객들이 고개 숙여 묵념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부엉이바위에 오르는 산길. 길 주위로 야생초를 설명하는 작은 팻말이 오밀조밀하게 꽂혀 있다. 서거 2년 뒤쯤 기자가 다시 방문했을 때는 부엉이바위 쪽으로 가는 길이 나무철책으로 막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철책은 철거되고 없다. 바위틈 동굴 속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암자가 생각나 들러보았지만 암자를 지키던 비구니스님은 출타했는지 빈 동굴 속에는 촛불만 밝혀져 있었다. 부엉이바위가 잘 보이는 길가에 자그마한 조약돌을 쌓아올린 돌탑이 만들어져 있다.

새로 조성된 생태문화공원

부엉이바위 아래도 달라져 있었다. 작은 연못이 만들어졌다. 안내설명판을 보니 ‘거울못’이라고 하여 ‘봉화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타원형 모양의 영지를 조성해 수면에 투영된 봉화산과 부엉이바위를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곳’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원래는 조용히 추모하는 공간인데, 이번 어린이날만 공간 성격을 바꿔 거기에 뗏목을 띄웠습니다. 온 분들이 봉하마을 어린이날 행사는 상업적으로 오염된 다른 어린이날 행사와는 다르다고 말해주던데요.” 노 대통령 사저 건너편, ‘추모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가건물 한편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원애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 팀장의 말이다.

부엉이바위 밑 작은 연못을 비롯, 김해시 근린공원 사업으로 ‘생태문화공원’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다. “원래 봉하가 시골 구석에 있다보니까 교통편이 좋지 않아 차가 없는 분들이 접근하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 방문은 별로 없었고 거제나 남해 같은 관광지를 가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나와 잠깐 들르는 단체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생태문화공원이 만들어진 뒤 젊은 가족단위 방문객이 대폭 늘었습니다. 듣기로는 인근 김해나 창원까지 포함해서 도심에 있는 대부분의 공원이 도로를 끼고 있어, 여기처럼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안심하고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원은 별로 없다고 해서….” 이 팀장이 개인적으로 ‘제일 아름답게 보는 풍경’은 할머니에서 유모차를 탄 손주까지 삼대(三代)가 놀러와 평화롭게 머물다 가는 것이다. “가족 나들이 나온 그런 분들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보면 정치색이 없진 않았거든요. 대통령이 바랐던 것은 사람들이 와서 시간을 보낼 만한, 거닐 만한 공간이 되는 것이지 않았을까요. 무슨 사상의 전쟁터가 아니라 생태문화공간으로. ‘전직 대통령을 기념하는 공간도 있고 친환경 마을이라 공기도 좋고 신뢰가 있는 공간이 되었구나’ 하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이 바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정치의 바람은 봉하를 비켜가지 않았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주요 후보 다섯 명 중 홍준표 후보를 제외하곤 모두 봉하마을을 다녀갔다. 나머지 후보들 중에서도 이재오 후보가 다녀갔다고 조호연 권양숙 여사 비서실장(44)이 말했다. 당선 뒤에는 아직 찾지 않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수락 연설을 한 다음 날 이곳을 찾아 참배한 뒤, 권양숙 여사와 면담을 하고 갔다. 권 여사는 현재 사저에 살지 않는다. “시민에게 돌려줄 집이라고 공언한 뒤 현재는 다른 곳을 구해서 옮기셨습니다. 한동안 새로 살 집 보러가는 데 흥미를 느끼셔셔 집 구경하러 돌아다니시곤 했는데….” 봉하마을을 자주 찾던 참여정부 사람들은 지금도 비공식적으로 자주 권 여사를 찾아와 만나고 돌아가곤 한다고 그는 귀띔했다. 기자가 방문하기 이틀 전에는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유시민 작가가 다녀갔다.

최근 연간 70여만명이 찾던 봉하마을 방문객이 지난해 80여만명으로 다시 증가추세다. 이 팀장의 말이다. “통상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5월에 찾는 사람이 제일 많지만, 특히 지난해 5월에는 20만여명이 다녀갔습니다. 아마 총선 결과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번 대선이 끝난 뒤 다시 추모객이 급증하고 있는데, 지난 토요일(5월 13일)이 1만1000여명, 일요일이 1만7500명이었습니다. 평일 방문도 늘었고요.”

대선 후 주말 2만5000여명 다녀가
재단 봉하사업본부가 입주해 있는 추모의 집 가건물 자리에는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의 ‘시민문화체험관’이 건립될 계획이다. 계획은 2015년부터 시작했는데 여러 모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비 신청 단계에서 3년째 계속 잘리고 있다. ‘이러다가 올해 착공되면 대통령이 바뀌니 특혜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겠다고 이 팀장에게 말을 건넸다. “맞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언론에서 그렇게 이야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 같아요. 지방재정투자심사도 2015년과 2016년 받았고, 지난해(2016년도)는 김해시로부터 토지매입비까지 확보한 사업인데….”

약 1000평 규모의 연면적 부지 위에 들어서는 시민문화체험전시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를 담고 추모하는 공간을 만드는 한편, ‘국정체험 교육프로그램’이나 ‘자연체험 교육공간’도 만들 계획이다. “이지원이라든가 수석회의나 장관회의 같은 것을 중·고등학생들이 직접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것인데, 생태복원이나 생태문화공원과 연계해서 자연체험 교육도 해보고 싶고요. 문화예술적 측면에서 보면 지역민을 위한 작은 야외공연 프로그램도 열어보고 싶습니다.”

내년 전면 공개를 앞두고 5월 한 달간 주말, 노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에게 공개된다. / 노무현재단 제공

내년 전면 공개를 앞두고 5월 한 달간 주말, 노 전 대통령 사저가 일반에게 공개된다. / 노무현재단 제공

권 여사가 떠난 빈 사저는 관련 정비작업을 거친 후 내년에 봉하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그에 앞서 올해는 5월 한 달간 주말,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생일(9월 1일) 전후에 인터넷과 현장 예약접수를 받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다시 봉하마을의 해가 진다. 땅거미가 질 무렵, 국화 한 송이를 들고 묘역을 찾은 중년의 남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에서 온 김정용씨(55·경영컨설턴트)다. 앞서 만난 추모객들이 이번이 첫 방문인 것과 달리, 김씨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그 후 4년 뒤, 그리고 다시 4년 뒤인 이 날이다. “뭐라고 할까요. 마음속에 항상 있죠. 안타깝죠. 이상하게 느낌이 올 때가 있어요. ‘가야겠다’라고. 서거 당시 왔을 때는 표현하기 힘든, 뭐랄까 가슴이 아리는 것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던 친구인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잖아요. 완전히 마음이 편하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은 ‘이제는 쉬십시오’ 하는 마음이랄까요.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뤄진 것은 아니잖아요. 문재인 대통령도 걸출한 인물이니 잘하실 겁니다. 제 마음도 위로받고 싶고…. 항상 응어리져 있는 건 모든 국민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마음 말입니다.” 회상하는 김씨의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봉하마을 방문 TIP


수도권에서 자가운전으로 방문하는 경우 막히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편도로 5시간 이상 걸린다. 요즘 내비게이션에는 대부분 ‘봉하마을’이 등록되어 있다. 제일 좋은 것은 KTX를 탄 후 진영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방문하는 방법이다. 진영역에서 약 10분 거리이며 택시비는 5000원에서 6000원이 나온다.

생가 옆 기념품가게에서는 티셔츠, 담요, 문구류, 엽서세트 등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지역특산품으로는 봉하쌀로 만든 막걸리와 봉하 찰보리빵 등이 유명하다. 영농법인 봉하(http://bongha.net)가 운영하는 ‘봉하장터’ 인터넷 사이트에서 친환경 봉하쌀, 우리밀 가공식품, 무농약 양파와 찰토마토 등 먹거리도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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