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홍준표'들

2017.06.11 15:52 입력 2017.06.11 21:22 수정

“바람 불면 촛불 꺼진다”던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벌금 200만원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해 20대 총선 당내 경선 당시, 선거구민 9만2000여명에게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약이행평가 강원도 3위’라는 허위 사실을 문자메시지로 발송했다. 명백한 증거가 있고 국민참여재판이었는데도, 그는 유죄 판결이 문재인 정부의 탓인 양 “세상이 바뀐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내 심경은 김진태씨와 정반대다. 세상이 바뀐 것을 빨리 체감했으면 좋겠다. 국회의원에겐 정권 교체의 의미가 크겠지만, 평범한 시민에겐 “새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느낌 외엔 큰 변화가 없다. 이 체감의 다름이 ‘난생처음’ 서러운 사람과 언제나 서러웠던 민초들의 차이가 아닐까.

[정희진의 낯선 사이]문재인 정부의 '홍준표'들

오랫동안 구조적 약자였던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를 합치면 전체 인구의 과반이다. ‘우리’는 소수가 아니다. ‘정상적인 국민국가’는 이들을 위한 정부여야 한다. 하지만 들려오는 뉴스는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다. 세상이 바뀌려면 멀었다는 새삼스러운 자각과 함께, 박근혜 정부와는 또 다른 성격의 ‘권력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절망감이 든다.

평소 “가슴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에 대한 테러다”라는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이 ‘리버럴 진보’를 자칭, 새 정부 주변에 어른대고 있다. 일반 공무원 채용 시에는 면접을 통해 걸러낼 수 있는데, ‘논공행상’ 인사는 권력자와 가까우면 된다. 대개 이런 이들은 약자에게는 함부로 한다. 성폭력 경력이 파란만장한 교수 출신 고위직 인사는 피해 여성들의 증언이 속출하자(‘품행 민원’) 알아서 물러났다. 앞으로도 ‘사고’가 예상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다.

청와대 부근만이 아니다. 최근 자기 집에서 아내를 침대에 눕히고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머리카락에 불을 붙여 머리와 목 부위에 3도 화상을 입힌 남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살인미수를 집행유예로 판결한 판사는 여성이었다. 다음은, 그 유명한 콘크리트 사건. 며칠 전 받은 어느 독자의 편지다.

“맨손으로 여자가 죽을 때까지 폭력을 행사하고 시체를 시멘트로 암매장한 것이, 치밀하게 계획한 살인이 아니라면 무엇인가요? 폭행치사죄로 기소한 검사는 대체 누구인가요? 주먹으로 사람을 때려죽인 것이 살인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대한민국은 여성을 때려죽인 후에 시멘트로 암매장하고 교도소에서 3년만 살다 나오면 되는 나라입니다. 형사 법정에서 합의가 웬 말입니까?”

물론,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은 인류 역사 내내 있었다. 현 정부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게 나라냐” “우리가 ‘이러려고’ 광장에서 밤을 새웠나”라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법 종사자들의 의식은 변하지 않았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은 동성애자 ‘색출’ 함정 수사를 지시하고, 수많은 인파가 보는 앞에서 민간인 기자의 손목을 잡고 비틀었다. 제압. 그 장면, 나는 정말 무서웠다. 지난 5월에는 직속 부하인 대위를 성폭행한 대령이 준강간 혐의로 체포되었고, 피해 여성은 자살했다. 해군 당국의 인식이 점입가경이다. “그런 일(강간)은 어디에나 있다. 아무리 교육해도 술 먹고 그러는 걸 어떻게 막나?” 이들은 성폭력을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모든 남성은 매 순간 성폭행 범행 의지를 참고 있단 말인가?

피살자가 여성인 경우, 범인의 60% 이상이 남편이나 이성 애인이다. 여성 폭력, 막을 수는 없어도 처벌할 수는 있다. 이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현실은 ‘법보다 주먹’이 아니라 ‘법보다 성차별 의식’이다. 사법 개혁의 첫 번째 과제여야 한다.

선거 후 며칠 만에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사회 구조와 사람의 인성이 그렇게 쉽게 바뀌겠는가. 이는 정권 차원의 이슈가 아니라 지난한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그 여정에 믿음직한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지금 정부는 국민의 절대적 희망이다. 해방 이후 이런 정부는 탄생한 적이 없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와 달리, DJP연합이나 이인제씨나 정몽준씨의 ‘도움’도 없었고 2위와의 표차도 압도적이었다. 무엇보다 상대 후보와의 정치적 역학보다 오롯이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다.

그러나 ‘홍준標(표) 돼지흥분제’는 이 정부에도 있다. 최근 문성근씨는 여성단체의 비판을 받은 탁현민씨에 대해 “뇌가 말랑말랑”하다고 칭찬하면서 “그가 흔들리지 않고 활동하도록 응원하자”고 덧붙였다. 남성연대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권력이다.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남성성들(masculinities)이 연대하고 있다. ‘반공주의 남성성’ ‘자본가 남성성’ ‘루저 남성성’ ‘지식인 남성성’ ‘조폭 남성성’ ‘진보 남성성’ ‘군사주의 남성성’…. 성격은 다르지만 남성 특권을 유지하는 데는 ‘대동(大同)’ 단결한다.

이 중에서 특히 진보 혹은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이중성을 가시화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문제 발생 시 대응도 힘들다. 부디,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망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수많은 여성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촛불’은 비폭력을 피하기도, 지속되기도 어려웠다. 꼭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아니어도 좋다. 여성도 ‘국민’이었으면 한다. 여성의 안전과 목숨이 사소하게 취급되지 않았으면 한다. 여성이 직장 일과 가사 노동의 이중 노동에 덜 시달리기를 바란다.

모든 권력의 위기는 내부에서 온다. ‘우리 안의 적폐’가 무엇인지부터 깨달아야 한다. 청문회 5대 점검 사항 중 왜 인권의식(=여성의식)은 포함되지 않는가. 이것이 가장 기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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